2026년 02월 09일 ~ 02월 15일 주간기록
2월 둘째 주는 감정의 고도가 유난히 넓게 흔들린 시간이었다.
격려금 지급 결정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가
승진 인사 발표로 다시 마음이 내려앉았고
노루페인트 노동조합 워크숍에서는 뜻밖에 벅찬 순간을 맞았다.
복직 후 다시 맡은 영업업무.
계속 이어지는 노동조합 현안.
그리고 “과정 없이 결과만 통보되는 구조”에 대한 아쉬움까지.
이번 주는 노동조합 위원장으로서의 책임과
회사원으로서의 현실이 가장 선명하게 교차한 한 주였다.
2월 9일, 네비 없이 출발했다가 격려금 소식으로 도착하다
아침에 괜히 오기가 생겼다.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 현장을 다녀보려 했다.
길을 너무 익숙하게 다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번 더 빠지는 길이 있는 줄 알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인천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결국 서둘러 네비를 켜고 방향을 다시 잡았다.
현장으로 향하는 동안 HR팀장에게 카카오톡이 왔는데 볼 정신이 없었다.
지난주 목요일 이슈였던 계열사 격려금 지급 건 때문이었다.
현장에 도착해 주차를 하려는 순간 HR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도 내일 같은 날짜, 같은 조건으로 격려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서둘러 간부들에게 공유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HR팀 공지메일이 돌았다.
사무실 분위기가 단번에 달라졌다.
하지만 한 직원이 툭 던진 말이 오래 남았다.
“이왕 줄 거면 다 같이 기분 좋게 주지.
왜 욕을 하고 나니까 그제야 주는 거야?
우리가 메인 회사인데 항상 이런 식이야.”
계열사가 먼저 준다는 소식이 들린 뒤에야 우리 회사도 결정이 났다.
왜 우리는 먼저 자신 있게 결정하지 못할까?
왜 이런 사안은 사전에 노사가 함께 논의하지 못할까?
경영진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2025년 실적은 오너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결단을 받기까지 많은 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노동조합 위원장으로서는 성과급 대신 격려금을 2년 연속받았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고 조금은 자존심이 상한다.
물론 그 시기 나는 회사 밖에서 복직 투쟁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다르다.
2026년은 현장에서 함께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해다.
노동조합 위원장이 현장에서 땀 흘리며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달성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방해요소가 없는지 이동사무실을 더 자주 더 깊게 돌아야겠다.
2월 10일, 명절 전 물량과 명절 전 입금
명절 전에는 레미콘 물량이 늘 몰린다.
공정도를 조금이라도 더 진행하려는 현장들 때문이다.
바쁜 와중에 격려금이 입금됐다.
명절 전이라 체감 효과는 더 컸다.
경영진에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
2월부터 사업장에 개인·중소 건설사 현장이 다시 배정됐다.
부당해고 이후 2년 4개월 만의 복귀,
영업팀원들도 해당 업무에서 손을 놓은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업무 프로세스가 선명히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어 서류를 정리했다.
어찌어찌 마무리하고 몇 안 되는 내 현장을 돌며 명절 인사를 했다.
내일부터는 3일간 근로시간면제로 조합 업무다.
장거리 출장이 이틀이다.
명절 전은 늘 정신이 없다.
2월 11일, 밀린 일과 밀린 발표
조합 사무실로 출근했다.
1월 결산과 밀린 행정 업무를 정리하니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격려금 이슈는 마무리됐지만 이번엔 승진 인사 발표 지연 문제가 터졌다.
관련 민원 전화가 이어졌다.
회사 관계자와의 통화도 길어졌다.
금요일 노루페인트 노동조합 워크숍에서
우리 노동조합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었지만
자료 준비는 아직 미완성 상태였다.
내일은 군산 이동사무실 이후 태안으로 이동해야 한다.
퇴근 후 집에서 늦은 밤까지 발표 자료를 다듬었다.
업무와 노동조합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또 한 번 체감했다.
2월 12일, 군산의 민원, 태안의 부러움
새벽에 일어나 군산으로 향했다.
4시간 가까이 걸렸다.
간식을 전달하고 작업환경을 점검했다.
군산공장은 규모는 작지만 개소 당시 사보 촬영을 왔던 곳이라 개인적 애착이 있다.
점심시간 동안 민원과 고충을 들었다.
이 기록들은 추후 회사와 협의해 풀어갈 것이다.
이후 태안으로 이동해 노루페인트 노동조합 워크숍에 참석했다.
홍순철 위원장과 여러 계열사 위원장들과 인사를 나눴다.
저녁 자리에는 그룹 사장과 임원들이 함께했다.
격의 없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노루페인트 노사관계는 오너의 결단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노동조합과 잘 지내라는 명확한 메시지.
40년에 가까운 단단한 관계.
그 모습을 보며 부러움이 컸다.
그 와중에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일 승진 인사를 발표한다는 안내였다.
왜 늦어졌는지 설명을 들었다.
또 사후 설명이었다.
과정에 노동조합이 조금이라도 참여했다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노루페인트의 단단한 노사관계를 보고 난 직후라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2월 13일, 강연의 벅참, 승진의 씁쓸함
나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꿈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그저 돈 많이 버는 직업을 막연히 떠올렸고
군대 가기 전까지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앞에 서서 설명하고 무언가를 알려주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이야기를 전하고
신생노조가 겪는 현실과 법의 한계를 설명하는 자리에 서게 될 줄은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
노루페인트 노동조합 워크숍에서
우리 노동조합의 설립 과정과 투쟁, 부당해고와 복직, 그리고 제도적 한계를 이야기했다.
1시간이 길 줄 알았는데 막상 시작하니 짧았다.
강의를 준비하며 정리한 생각이 있다.
향약과 두레의 정신을 현대 노동조합의 이념으로 확장해 볼 수 있겠다는 구상이다.
마을의 자치 규범을 세웠던 향약처럼
노동조합의 규약과 단체협약을 질서의 기초로 삼고
덕업상권은 전문성을 권장하는 방향으로 과실상규는 스스로를 바로잡는 자정 능력으로
예속상교는 수평적 존중과 예의로 환난상휼은 어려움에 처한 동지를 함께 돕는 체계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질서를 실천으로 움직이는 힘을 두레의 연대와 공동 노동의 가치에서 찾고 싶었다.
아직은 이론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실행계획도 현대화된 구조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 방향을 동지들 앞에서 말로 꺼내놓았다는 것만으로 나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강연을 마치자 연대의 박수가 이어졌다.
조금 부끄러웠고 많이 벅찼다.
아내와 아들이 “잘할 거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서는 것부터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감정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승진 인사 발표가 났다.
장기 승진 누락자들은 여전히 누락됐다.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 역시 부당해고 후 복직해 보니 과장 9년 차다.
동기들은 이미 차장이 되었고 2~3년 후배들도 차장 승진을 했다.
노동조합을 시작하며 승진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았다고 스스로 말해왔지만
마음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도 이 정도인데 장기 승진 누락자들은 어떤 심정일까?
오전에는 동지들의 박수를 받으며 노동조합의 미래를 이야기했고
오후에는 조직의 현실을 다시 확인했다.
감정은 급상승했다가 급격히 하강했다.
하루 안에 벅참과 씁쓸함을 모두 경험했다.
그게 아마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의 온도일 것이다
2월 14일, 설 세신과 초콜릿 실종 사건
연휴 첫날.
몸이 먼저 늘어졌다.
문득 목욕탕을 간 지 오래된 걸 깨닫고 설맞이 세신을 했다.
밤에 누워 있는데 뭔가 허전했다.
오늘이 밸런타인데이였다.
초콜릿이 없었다.
이제 그러려니 해야 하는 나이인가 보다.
2월 15일, 그러려니의 공식
와이프에게 말했다.
어제 밸런타인데이였다고.
몰랐다고 한다.
그러려니 하는 게 맞았다.
이번 주는
격려금으로 안도했고
강연으로 벅찼고
승진 인사로 씁쓸했고
결국 일상으로 돌아왔다.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사는 일은
늘 감정의 고도를 오르내리는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간다.
이 기록은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노동자의 기록이며, 모든 연대를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