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사무실에서 마주한 얼굴들 그리고 나의 마음
이동사무실을 다니다 보면 노동조합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이미 탈퇴한 사람.
조합비를 내지 않아 자격정지 상태인 사람.
그리고 한 번도 가입하지 않은 사람.
겉으로는 선택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그 밑에는 공통된 심리가 있다.
두려움.
자기 보호.
그리고 계산.
탈퇴한 사람들, 인지부조화와 자기 합리화
탈퇴한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상황이 그랬다.”
“응원은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이를 인지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으로 설명했다.
사람은 자신의 선택과 신념이 충돌할 때
그 긴장을 줄이기 위해 기억과 해석을 조정한다.
탈퇴는 단순한 행정적 절차가 아니다.
그 시점에서의 ‘최선의 자기 보호’였다.
그 선택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순간 자존감이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한다.
“그때는 불가피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한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보직을 맡아야 했고
가족의 눈치를 봐야 했던 사람들.
그 선택을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돌아오는 일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판단일 수 있다.
탈퇴자에게 필요한 건 질책이 아니라 귀환의 명분이다.
#인지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은 1957년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제시한 개념으로 인간은 자신의 신념·태도·행동이 불일치할 때 심리적 불편을 느끼며 이를 줄이기 위해 해석을 수정하거나 기억을 재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자격정지자, 회피 방어기제와 책임 회피
자격정지자들은 더 복잡하다.
탈퇴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합비는 내지 않는다.
문자는 받았고 본인도 안다.
점심시간에 말을 걸면 바쁘다며 자리를 피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중 하나가 ‘회피(avoidance)’다.
불편한 결정을 미루는 방식이다.
탈퇴는 관계를 끊는 일이고 복귀는 책임을 다시 지는 일이다.
그 사이에 머무는 상태는 심리적으로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조직 심리학자 크리스 아지리스(Chris Argyris)는
책임 회피가 지속되면 조직은 ‘방어적 루틴(defensive routine)’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겉으로는 유지되지만 실질적 참여는 사라지는 상태다.
노동조합은 보험이 아니다.
의무 없는 권리는 공동체를 유지하지 못한다.
이 부분만큼은 단호해야 한다.
선택은 존중하지만 애매함은 조직을 약하게 만든다.
#회피(avoidance)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안나 프로이트가 체계화한 방어기제 중 하나로 불안이나 죄책감을 유발하는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피하려는 심리적 반응이다.
#방어적 루틴(defensive routine)은 조직학습 이론가 크리스 아지리스(Chris Argyris)가 제시한 개념으로 조직 구성원들이 위협이나 당혹감을 피하기 위해 핵심 논의를 회피하며 겉으로만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집단적 행동 패턴을 의미한다.
한 번도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 손실회피와 방관자 효과
한 번도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은 의외로 가장 따뜻하다.
“고생 많다.”
“응원한다.”
하지만 가입은 주저한다.
행동경제학자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손실회피(loss aversion) 개념을 통해 사람은 이익보다 손실을 더 크게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노조 가입의 이익은 추상적이다.
그러나 혹시 모를 불이익은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여기에 더해 라타네(Latané)와 달리(Darley)가 제시한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도 작동한다.
“누군가는 하겠지.”
“내가 아니어도 되겠지.”
집단이 존재할수록 개인은 책임을 분산시킨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의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다.
과거에 말해도 바뀌지 않았던 경험
문제를 제기했다가 불이익을 경험한 기억.
이 경험은 현재의 선택을 위축시킨다.
사람은 제도보다 경험을 신뢰한다.
그래서 노사가 상생을 말하는 지금도 마음은 쉽게 따라오지 않는다.
#손실회피(loss aversion)는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제시한 행동경제학 개념으로 인간은 동일한 크기의 이익보다 손실을 약 2배 이상 크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는 비브 라타네(Bibb Latané)와 존 달리(John Darley)가 1968년 연구를 통해 제시한 개념으로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의 책임감이 분산되어 행동이 감소하는 현상을 말한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은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이 제시한 개념으로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반복 경험하면 이후 변화 가능성이 있어도 시도하지 않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데 나는 괜찮은가?
그렇다면 나는 괜찮은가.
나는 부당해고를 겪었다.
법정과 노동위원회를 오갔다.
생계의 불안을 직접 경험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동사무실을 나간다.
탈퇴자에게 말을 건네고 자격정지자에게 설명하고
미가입자에게 손을 내민다.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가볍지 않을 때가 많다.
조직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는
번아웃(burnout)을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오는 정서적 소진’이라 정의했다.
나는 그 간극을 매일 체감한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혼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번아웃(burnout)은 허버트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1974년 제시한 개념으로 헌신적 역할 수행 과정에서 누적되는 정서적·신체적 소진 상태를 의미한다.
노동조합은 왜 심리적으로 필요한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은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있는 조직이 혁신과 문제 해결 능력이 높다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은 그 안전감을 집단적으로 형성하는 장치다.
또한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집단 효능감(collective efficacy)이 높은 집단이
위기에 강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함께하면 바꿀 수 있다”는 믿음.
노동조합은 그 믿음을 만들어내는 구조다.
보험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 인프라다.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은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이 체계화한 개념으로 구성원이 보복이나 조롱에 대한 두려움 없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집단적 신뢰 상태를 의미한다.
#집단 효능감(collective efficacy)은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정립한 개념으로 집단이 공동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공유된 믿음이 행동 지속성과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나는 강철이 아니다.
앞에 서 있지만 속은 늘 단단하지 않다.
그래도 또 나간다.
이동사무실로.
현장으로.
내가 닳아 없어지기 전에 조금만 힘을 보태달라 이야기한다.
두레는 구경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향약은 참여 없이 지속되지 않는다.
돌아올 사람은 돌아오고 망설이는 사람은 한 걸음만 내디뎌주고
애매한 사람은 선택해 주길 바란다.
그 한 걸음이 집단 효능감을 만들고 심리적 안전을 만든다.
그리고 그때 나는 조금 덜 닳을 것이다.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