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약과 두레가 말하는 노동조합의 길
최근 노동계에서 하나의 이슈가 화제가 되었다.
어느 대기업 노동조합에서 파업 참여를 둘러싼 강경한 발언이 나왔다는 보도였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해고 우선순위에 둘 수 있다는 식의 표현이었다.
현장의 절박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노동조합이 파업을 결의하는 순간은 대부분 마지막 선택에 가깝다.
그만큼 조직 내부의 결속을 요구하게 되고 때로는 강한 언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사를 읽으며 나는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단결은 정말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단결권에는 ‘참여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노동자의 기본권 중 하나는 단결권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참여할 권리다.
하지만 이 권리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참여하지 않을 자유다.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뿐 아니라
특정 행동에 참여하지 않을 자유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자유 영역이다.
그래서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행위는 법적으로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조합원 혹은 노동자의 주저함일 뿐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어떻게 단결을 만들어야 할까?
나는 이 질문을 법의 문제보다 조금 더 오래된 공동체의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싶다.
향약이 말하는 공동체의 질서
우리 전통 공동체에는 향약이라는 자치 규범이 있었다.
향약에는 네 가지 원리가 있다.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 환난상휼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 잘못은 서로 바로잡으며
예의를 지키고 어려울 때 서로 돕는다는 의미다.
이 네 가지 원칙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이 보인다.
향약은 사람을 처벌하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약속이었다는 점이다.
향약은 국가 권력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규범이었다.
그래서 향약의 목적은 누군가를 내쫓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노동조합도 비슷하다.
노동조합은 법적으로는 단체이지만 실제로는 공동체다.
그래서 단결의 방식 역시 공동체의 방식이어야 한다.
두레가 유지된 이유
두레는 공동 노동 조직이었다.
농번기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논과 밭을 돌며 일을 했다.
하지만 두레의 핵심은 노동력이 아니라 신뢰였다.
누군가 오늘 참여하지 못해도 다음에 참여할 것이라는 믿음.
누군가 힘들 때는 공동체가 대신 일을 해줄 것이라는 확신.
그래서 두레는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만약 두레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됐다면 어땠을까?
“오늘 나오지 않으면 마을에서 쫓아낸다.”
그 공동체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공동체는 공포로 유지되지 않는다.
신뢰로 유지된다.
강요된 단결은 오래가지 않는다
노동조합도 마찬가지다.
강요된 단결은 잠깐 숫자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공포로 묶인 조직은 갈등이 끝나는 순간 빠르게 흩어진다.
조직 심리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이 의견을 내거나 선택을 할 때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
그 상태가 있어야 조직은 오래 유지된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에게 또 다른 권력처럼 보이는 순간
그 조직은 이미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가야 할 길
나는 이동사무실을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탈퇴한 사람, 자격정지자 그리고 아직 가입하지 않은 사람.
그들의 심리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두려움이다.
그래서 나는 강요 대신 설명을 택한다.
동원 대신 설득을 택한다.
시간은 더 걸린다.
그러나 그 방식이 조직을 오래 버티게 한다.
대동(大同)
우리 전통 공동체가 꿈꾸었던 이상은 대동이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는 상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선택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체를 유지하는 상태.
노동조합도 결국 그 지점을 향해 가야 한다.
향약이 규칙을 만들고 두레가 참여를 만들고
그 위에서 공동체가 만들어질 때
노동조합은 단순한 투쟁 조직이 아니라 일터의 공동체가 된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오래 지속된다.
브런치북 「상생하고픈 노동자들의 노조록」을 마치며
이 글을 끝으로 브런치북 「상생하고픈 노동자들의 노조록」을 마무리하려 한다.
처음 이 기록을 시작할 때의 취지는 분명했다.
노조록은 사건과 쟁점을 정리하는 기록이다.
주간일지가 한 주의 일기라면 노조록은 한 걸음 물러나 현장을 분석하고 의미를 되짚는다.
교섭, 법정, 현장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 사회와 다음 세대가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길 바랐다.
갈등을 드러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진짜 상생의 길을 모색하려 했다.
그러나 솔직히 돌아보면 이 기록은 그 취지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사건을 정리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감정이 먼저 나왔고
때로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끄적이듯 적은 글도 있었다.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고 처음 위원장을 맡은 사람이 현장에서 부딪히며 고민했던 기록.
어쩌면 이 글들은 노동조합의 기록이라기보다 한 초보 노조위원장의 고민 기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기록하지 않으면 많은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잊힌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기록이 아니라 남겨지는 기록을 택했다.
부족한 글이었음에도 꾸준히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노동조합의 길은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는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세대가 조금 덜 헤매며 조금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기록이 그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디에서든 모든 연대를 환영한다.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