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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上)

조합원과 비조합원, 우리 안의 거리

by 기록하는노동자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

우리는 같은 현장에서 일한다.
같은 기계, 같은 먼지, 같은 야간근무.
하지만 한쪽은 ‘조합원’, 다른 쪽은 ‘비조합원’이다.
그 단어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운다.


비조합원은 말한다.
“노조가 뭐 해주는 게 있나요?”
조합원은 속으로 답한다.
“우리가 안 하면 당신이 지금 받는 그 임금도 없었을 걸요.”


이 대화는 늘 평행선을 탄다.
서로의 말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자리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이 쏟아내는 피로와 불만

“우리만 나서서 싸우고, 비조합원은 그 혜택만 가져간다.”
이건 조합원이라면 한 번쯤 내뱉었을 말이다.


조합원은 늘 앞장선다.
공문을 쓰고 회의에 참석하고 기자의 전화를 받고
때론 회사의 눈총을 감수한다.
하지만 교섭이 끝나면 임금인상과 복지혜택은
노조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돌아간다.


“우리가 대신 싸워줬는데, 그들은 조용히 그늘에서 쉬잖아요.”
그 말엔 피로와 허무가 섞여 있다.
이 구조는 마치 몇 사람이 배를 젓고,
다수는 그 배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 같다.

비조합원의 아이러니, 참여하지 않지만 요구는 한다

비조합원은 이렇게 말한다.
“노조가 일 좀 해야지.”
“복지 개선은 왜 안 돼요?”

"임금인상 어떻게 되는거야? 강경하게 대응해야 하는거 아냐?"
그 말 속엔 무심한 비판과 은근한 의존이 함께 있다.


조합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노조가 해주길 바라는 아이러니.
그건 어쩌면 노조가 존재한다는 이유 자체를
너무 당연하게 여긴 결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싸워야만 ‘조용한 일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잘 모른다.

아니 잘 모르려고 한다.

노동조합의 희생구조

현장의 현실은 단순하다.
조합원은 싸운다.
비조합원은 눈치를 본다.
회사는 그 틈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결국 노동조합은 회사와 싸우는 동시에
현장의 무관심과도 싸워야 한다.
조합원의 헌신이 구조화되고
그 헌신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질 때
조합은 피로해진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 대부분의 신생노조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싸움보다 어려운 건 ‘같은 편 설득하기’

회사를 설득하는 일보다
사실 더 어려운 건 비조합원을 설득하는 일이다.
같은 현장에서 일하지만
노조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순간
서로의 말이 낯설어진다.


“노조가 있으면 회사가 변하나요?”
그 질문에 단번에 답할 수는 없지만,
노조가 없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간부들이 다가가면 비조합원은 자리를 피한다.

설득당하지 못하도록 스스로의 방어기제가 발동하는 것일까?

아니면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미안함일까?

같은 편이지만 스스로 같은 편이길 거부하는 비조합원의 설득은

3년간 요구해온 노사관계 정상화 보다 어렵다.

내부의 거울을 직시하며

노사관계의 갈등보다 더 깊은 건 노동자 내부의 거리다.
우리가 서로를 적으로 두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설득할 수 있을까?


이건 노동조합이 풀어야 할 다음 과제다.
조합원에게는 ‘왜 싸워야 하는가?’를
비조합원에게는 ‘왜 함께해야 하는가’를
다시 말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부의 거울을 바라보고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리고 비조합원의 모습이 어떤지

상세히 살피고 명확히 알아야 한다.



희생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이제 노동조합도 변해야 한다.

조합원과 비조합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생의 모델이 필요하다.

상생하고픈노동자들의노조록09.jpg 우리 노동조합 홍보물 맨 앞장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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