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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 (下)

싸움만 하는 노조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노조로

by 기록하는노동자
“노조는 희생만 하는 곳”이라는 오해

사람들은 말한다.
“노조는 늘 싸우기만 한다.”
“조합원들은 회사에 불만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진짜 노동조합은 싸움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싸움은 수단이고, 존중받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 늘 ‘희생’으로만 비춰진다는 것이다.
조합원은 시간과 비용, 심지어 평판까지 감수한다.
그러나 그 희생이 반복될수록
노조는 약해지고, 내부는 지친다.

우리가 원하는 건 ‘대립의 지속’이 아니라 ‘대화의 복원’이다.
회사를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가 더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견제하고 제안하는 것.
그게 진짜 노조의 역할이다.

싸움의 다음 단계, 대안을 제시하는 힘

노조가 싸우는 이유는 단순하다.
회사가 틀려서가 아니디.
함께 더 나은 길을 찾자는 말이 무시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싸움의 방향을 바꾼다.
공문과 성명만이 아니라 제안서와 근거자료로 싸운다.


임금교섭 때 회사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대신 지속 가능한 인상모델을 제시하고

복지 확대를 요구할 때

현장 만족도·이직률·생산성 지표를 함께 내고

평가제도에 반발할 때 공정성 확보 매뉴얼을 직접 만들어낸다.


이런 방식의 싸움은 회사를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회사를 설득한다.
그게 바로 “대안을 가진 노조”의 힘이다.


하지만 아직 이런 단계를 가지기 힘든 노사관계이기에

대화로 기초를 만들고 대안으로 골조를 세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희생의 구조를 참여의 구조로

조합원이 지치지 않으려면
희생을 제도화하지 말고 참여를 시스템화해야 한다.


교섭참여자와 현장활동가를 위한 인정제도와 포상제도를 만들고

조합 내 ‘이달의 활동자’를 공개 소개하는 공로 공유 프로그램도 있어야 한다.

각 지역별 활동성과를 모아보는 노조 내 인사이트 리포트 발간도 필요하다.

바쁘고 힘들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시스템이다.


노조는 ‘싸움의 집합체’가 아니라 ‘참여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참여가 늘면 책임이 분산되고 책임이 분산되면 희생은 줄어든다.

비조합원의 논리적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비조합원은 말한다.
“노조가 있어도 달라지는 게 없어요.”
그런데 변화가 생기면
“노조가 했대요? 그럼 잘됐네요.” 한다.


참여하지 않으면서 기대하고
동참하지 않으면서 불만을 말한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구조’가 만든 모순이다.


노조는 그 구조를 깨야 한다.
그리고 비조합원이 ‘참여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비조합원 가입을 늘리기 위한 다섯 가지 생각

① 비조합원 참여 프로그램 제도화

비조합원도 의견을 낼 수 있는 ‘열린 간담회’

노사협의 전 ‘사전 의견수렴회’를 통해

“조합이 내 이야기를 듣는다”는 경험을 먼저 제공한다.

참여 경험이 곧 가입 동기로 바뀐다.


② ‘조합이 바꾼 것들’ 가시화

비조합원은 결과만 본다.

그래서 노조가 개선한 제도, 복리후생, 안전조치 등을

‘조합의 성과 카드뉴스’ 형태로 공유한다.

성과가 보이면 신뢰가 생긴다.


③ 초기 가입자 보호제

노조가입 후 첫 6개월간

개인정보 보호, 이름 비공개, 설문형 의견참여만 가능하게 한다.

‘가입해도 불이익 없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④ 소액 조합비·프로젝트형 가입제

정식가입이 부담스러운 사람을 위해

특정 캠페인(예: ‘복지개선 프로젝트’)에만

일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 조합원제’를 도입한다.

참여가 익숙해지면 정식가입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⑤ 가입의 이득을 명확히

조합원 전용 교육, 법률상담, 차량대여, 복지할인, 문화행사 등 실질적 혜택을 구조화한다.

“조합비 = 보험료”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위기 때 조합이 대신 싸워주는 보호의 장치라는 메시지다.


이 다섯 가지는 ‘강요’가 아니라 ‘설계’다.

노조가 문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이 그 문 안으로 들어올 길을 만들어야 한다.

상생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다

상생은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복지·안전·교육 등 주제를 함께 논의하는 노사공동 TF를 운영한다면?

대화의 시간을 정례화해서 근무시간 내 간담회를 제도화 한다면?

노동조합의 제안이 반영된 성과공유제가 만들어져 노사가 함께 보상받는다면?

'함께 바꾼 일터'라는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노사공동 워크숍을 한다면?


이런 구조가 쌓인다면

노동조합은 더 이상 싸움의 상징이 아니라

회사와 함께 일터를 발전시키는 동반자로서의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가 이런 구조를 노동조합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게 하는 방안

그것이 앞으로 우리 노동조합이 놓인 숙제다.

우리가 남겨야 할 노사관계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회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회사가 우리를 존중하며
우리가 회사를 지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조합원은 희생자가 아니라 제안자이고,
비조합원은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이며,
회사는 적이 아니라 공동의 책임자다.


이 세 가지 인식이 정착될 때 노조는 더 이상 방어조직이 아니라
대화와 혁신의 중심이 된다.

싸움보다 단단한 대화

우리는 싸움을 통해 대화의 자리를 되찾았다.
이제 그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한다.

노동조합은 회사를 떠나려는 조직이 아니다.

오히려 회사가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서 있기를 바란다.
그 마음이 없었다면 우린 진작 떠났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싸움은 계속되지만 그 싸움의 언어는 달라졌다.
이제 우리는 말한다.


“우리는 대안을 가진 노조다.

싸움의 끝에서 대화를 열고 대화의 끝에서 변화를 만든다.”

상생하고픈노동자들의노조록10.jpg 우리 노동조합 홍보물 맨 뒷장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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