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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아니라 방향이다

위기에 몰린 회사 그렇기에 대화를 믿는다

by 기록하는노동자


매번 말하는 위기가 아닌 진짜 위기

우리 회사는 2024년까지 영업이익이 흑자였다.
매출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이익은 꾸준히 유지됐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영업이익마저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회사는 매년 “위기”를 말해왔지만
올해는 구성원 모두가 피부로 느낄 만큼 진짜 위기가 찾아왔다.


노동조합은 이 상황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다.
우리 역시 이 회사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다만 ‘위기’라는 단어가
늘 노동자의 양보와 희생으로만 해결되어 온 역사를 기억하기에
이번만큼은 다른 길을 찾고 싶다.


회사의 어려움을 이해하되
그 위기를 함께 이겨내는 방식이 존중의 회복이어야 한다는 것.
그 고민이 지금 우리를 더욱 깊게 만든다.

투쟁의 본질은 싸움이 아니라 균형이다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투쟁하는 조직’이라 부른다.
상급단체 행사에서도 인사말이 끝나면 늘 “투쟁!”이라는 구호가 울린다.


‘투쟁’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1. 어떤 대상을 이기거나 극복하기 위한 싸움.

2. 사회 운동, 노동 운동 따위에서 무엇인가를 쟁취하고자 견해가 다른 사람이나 집단 간에 싸우는 일.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투쟁’은 그 뜻과 조금 다르다.
우리는 누군가를 꺾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
우리의 투쟁은 균형을 되찾는 과정이다.


회사가 성장할 때
그 이익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노동의 존엄이 함께 자라야 한다는 믿음.

그 믿음이 깨졌을 때 우리는 목소리를 냈다.


이제는 다시 그 균형을 세워야 한다.
갈등과 대립이 아닌 말을 걸고 설득하며 길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투쟁.


이건 타협이 아니다.
회사의 위기와 노동의 자존을 동시에 지키기 위한 노동조합의 철학이다.

신뢰는 공존의 최소한의 약속이다

회사는 “노조가 경영권을 침해한다”고 말하고

노동조합은 “회사가 대화를 회피한다”고 말한다.

서로의 언어가 다른 만큼 서로의 불신도 깊어진다.


하지만 신뢰란 권한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존중을 인정하는 일이다.
회사가 노동조합을 협력의 주체로 인정하고
노동조합이 회사의 현실을 냉정히 바라볼 때
비로소 신뢰는 싹튼다.


노조는 회사를 감시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회사를 지탱하기 위한 또 하나의 축이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투명한 대화의 기회다.


신뢰는 그 대화의 결과가 아니라
대화를 시도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대화의 방식은 바뀔 수 있다

대화는 협상 테이블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공장의 한켠에서도
출근길의 짧은 인사 속에서도
때론 조용한 제안서 한 장에서도
진심은 전해질 수 있다.


우리는 매번 공문으로만 싸워왔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절차’가 아니라 ‘관계’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이제는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고자 한다.
교섭보다 간담회

항의보다 제안
주장보다 경청으로 나아가는 길.


그게 상생의 시작이며 지속 가능한 관계의 복원이다.

현실을 인정하되, 존중은 포기하지 않는다

회사가 어렵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건설경기가 꺾이고 수주가 줄었다.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건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


노동조합은 이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동의 존중이 희생으로 대체되는 방식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임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노동자의 삶과 가족, 책임이 걸린 최소한의 기반이다.


회사가 진짜 위기라면 그 위기를 함께 버틸 수 있는 방식 또한 공정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회사의 어려움을 핑계로 삼지 않고
노동자의 요구를 무리라 단정하지 않으며
공존을 위한 해법을 찾고자 한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상생의 의미다.

우리의 철학, 다섯 줄로 정리하면

- 우리는 회사를 적으로 보지 않고 회사를 바로 세우는 균형의 축으로 선다.

- 우리는 비난이 아닌 대안으로 설득한다.

- 우리는 감정보다 이성으로 판단한다.

- 우리는 통제보다 신뢰를 택한다.

- 우리는 싸움보다 대화를 믿는다.


이 다섯 문장은 구호가 아니라 유진기업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다.
회사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가 중심을 잃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멀리 가기 위해 잠시 멈출 수도 있다

노조의 길은 언제나 외롭다.
싸워야 할 때 싸우고 버텨야 할 때 버텼다.


하지만 이제는 묻고 싶다.
“이 싸움의 끝에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있는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사람이 중심이 되는 회사.
그 꿈은 아직 멀지만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남는다.


우리는 싸움을 멈춘 것이 아니다.
더 멀리 가기 위해 잠시 멈춘 것이다.
대화로 길을 찾고 균형으로 회사를 세우는 일
그것이 우리의 다음 투쟁이다.

다시, 대화의 자리로

진짜 위기는 숫자로 오지 않는다.
회사가 적자를 낼 수도 있고 노동자가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대화가 끊기는 순간 그게 진짜 위기다.

노동조합은 그 위기를 막기 위해 존재한다.

싸움을 멈추는 게 아니라 다시 말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그게 우리가 믿는 노동의 길이며

노동존중사회로 나아가는 유진기업 노동조합의 방향이다.

상생하고픈노동자들의노조록12.jpg 노동조합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는 회의시간은 언제나 치열하다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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