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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는가?

개인의 삶과 노동조합 사이에서

by 기록하는노동자
나 자신을 알고 싶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지키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요즘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1982년에 태어나
한국나이 마흔넷이 끝나가는 2025년 11월을 살고 있다.


기혼자이며 아내와 아들을 구성원으로 둔 가정의 가장이고
2022년 9월부터 유진기업 노동조합 위원장으로서
동지들의 목소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이 길을 선택했다.


2023년 9월 부당해고를 당했고
2년 2개월 22일의 시간을 버텨내며
2025년 12월 1일 복직을 앞두고 있다.


월세를 살고 있고 해고 기간 동안
‘부채도 자산’이라는 자조 속에 부채만 꾸역꾸역 늘려나갔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문장을 적고 있는 단 한 사람.
본질적 질문 앞에 선 ‘나 자신’이다.

개인의 삶과 노동조합 사이에서 흔들리다

노동조합 일을 하다 보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있다.
바로 ‘나의 삶’이다.


2022년 9월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다른 색이 되었다.
노조 위원장이 되는 순간부터
개인의 감정과 선택은 언제나 뒤로 밀렸다.


나는 원래 조금 손해보더라도 모두가 편하면 그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남도 하기 싫은 일은 그냥 내가 해버리는 성향이고
조금 손해 봐도 분란이 없으면 마음이 편한 성향이다.


하지만 노동조합 위원장이 되고 나서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손해를 봐도 되지만 조합은 손해를 보면 안 됐다.

그렇게 개인의 삶을 밀어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삶은 무너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지지해준 아내에게 생활비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외동아들에게 충분히 해주지 못했다.

나만을 위한 휴식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양가 부모님을 뵐 때면 부당해고 사실을 알지 못하는 부모님 앞에서 죄송함이 가슴을 찢었다.


밖에서도 집에서도 괜찮은 척 했지만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4시간도 안 됐고
체중은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심박수와 혈압은 높아져 약을 먹기 시작했고
글을 쓰며 겨우 마음의 무게를 견뎠다.


이건 사실이며 외면할 수 없는 나의 기록이다.

‘왜 그만두지 않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조합원이 힘들어하면 나는 더 크게 흔들렸고
비조합원의 비난에는 더 깊이 상처받았다.
회사가 나를 몰아세우면 숨 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나 그 감정을 밖으로 보일 수는 없었다.
나는 맨 앞에서 깃발을 들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다.


총의가 모이면 내 의사보다 먼저 총의를 우선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달려가다 나는 해고됐다.
그리고 지난 2년 2개월 동안

불안은 그림자처럼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판결이 불리할까 불안했고 조합원이 지쳐 떠날까 두려웠고
회사가 상생의 태도를 보이지 않을 때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내가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먼저 포기한다면

믿고 모여준 동지들은 어떻게 되는가?


누군가는 말했다.
“너만 생각해라.”

하지만 나만 생각했다면 노동조합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나는 그 시간들 속에서 도덕·윤리·사회·경제·법을 배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덕목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늘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라는 말을 마음의 나침반으로 삼아왔다.

그래서 행했고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는 해본 사람만 안다.

복직을 앞두고, 내가 잃은 것과 얻은 것

12월 1일이 다가오면서 나는 두 개의 마음 사이에서 흔들린다.


잃은 것들

자존감, 재정적 안정, 가족의 평온 그리고 나 자신이 구겨지는 느낌들.


노조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직업을 잃었고
수입을 잃었고
미래 계획도 잃었다.


그러나 얻은 것들

회사의 일방적 결정 앞에서
우리는 “노동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진실을 세상에 증명해냈다.

아들에게 “아빠는 부당해도 참고 조용히 있지만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위원장, 고생 많았다” 라고 말해줄 때
그 한마디는 지난 시간을 버티게 해준 보상이었다.


나는 많이 잃었지만 그 잃음 속에서 더 단단한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질문, 나는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나는 노동조합 위원장으로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조직의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사람이다.

동시에 한 명의 가장으로서 가족의 평온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두 가지는 늘 충돌한다. 때로는 서로를 파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둘을 동시에 지키기 위해 흔들리는 사람이다.”


흔들린다는 건 약한 게 아니다.
흔들린다는 건 무게를 견디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노동조합뿐 아니라 회사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건전한 노사관계를 그려내고 회사의 발전을 도모해야
조합원의 삶도, 내 삶도 지켜질 수 있다.


지난 3년 동안 비싸게 배운 값진 교훈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며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노동자의 권리가 짓밟히지 않고 존중받도록
작은 목소리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다시 일터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나는 부당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버틴 사람이다.


나는 노동조합 위원장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고 아버지이고 남편이다.


그리고 나는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앞으로 계속 걸어갈 것이다.

작년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이 남긴 말

최근에야 들었다.

아들은 아빠가 해고된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모른 척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이가 그 마음을 혼자 감당했다는 사실이 가슴을 찢는다.

아들아!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한다.


상생하고픈노동자들의노조록14.jpg 아들의 선물...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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