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을 택한 나의 선택은 신념의 후퇴인가? 더 멀리 가기 위한 우회인가?
복직을 1주일여 앞둔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가장 잔인한 질문을 되묻고 있다.
"최근 내가 내리는 결정들이 노동조합을 위한 선택인가?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인가?"
이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최근의 중요한 결정들 앞에서 나는 적잖이 흔들렸다.
회사와의 갈등을 줄이려는 선택,
임금교섭 위임이라는 결단,
특별근로감독 청원 철회,
강경한 언어 대신 신뢰의 언어를 택했던 순간들.
그 모든 지점에서 내 안의 두 목소리가 싸웠다.
하나는 신념이었다.
"노동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절대 굽히지 마라!"
또 하나는 현실이었다.
"조합의 생존과 회사의 위기 그리고 복직을 앞둔 나의 삶을 함께 생각해라!"
나는 이 두 세계의 문턱에서 매번 선택해야 했다.
나를 위한 선택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특히 지난 10월 임금교섭 위임 결정은 고통스러웠다.
조합원 설문에서 다수가 ‘조건부 위임 가능’이라 했지만
막상 위임장에 도장을 찍는 순간 이런 마음이 올라왔다.
“복직을 앞두고 현실과 타협하는 건 아닐까?”
“회사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건 아닐까?”
그리고 이 오해가 조합원에게 이렇게 비칠까 두려웠다.
“위원장이 자기 살길 찾으려고 물러서는 거 아니야?”
“우리가 지켜온 원칙을 위원장 안위를 위해 포기하는 거 아니야?”
내 스스로도 그럴까 봐 가장 무서웠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였다.
나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방식을 바꾼 것이었다.
투쟁은 ‘칼’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그리고 칼을 내려놔야 보이는 길이 분명히 존재했다.
지난 3년간 동지들과 함께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책상머리 노동조합’이 아닌 살아남는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배워왔다.
그 현실이 나를 바꿨고, 이제야 그 의미를 조금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신념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성장한 신념'이 시작됐다
신념은 돌기둥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다.
상황에 따라 모양이 바뀌고, 휘어질 듯 흔들리다가도
어느 순간 더 단단해진 형태로 다시 선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맞서는 것이 곧 정의”였던 시기를 살았다.
부당해고, 왜곡된 교섭구조, 배제와 압박 속에서
싸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 노동조합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복직을 앞두고 나는 새로운 질문을 만났다.
“이제는 싸움을 넘어 노사관계의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건 아닐까?”
3년의 경험이 나에게 가르친 것은
대립이 아닌 균형, 승리가 아닌 존중이었다.
상생은 내가 약해진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배운 만큼 자연스럽게 도달한 다음 단계였다.
그렇지만 동지들의 시선이 가장 무섭다
조합원 동지들은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다.
내가 매일 밤 어떤 고민을 하는지...
가족에게 어떤 죄책감을 느끼는지....
복직 앞에서 어떤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지....
누구도 볼 수 없다. 보여줘도 알 수 없다.
보이는 건 ‘결과’뿐이다.
그래서 두려웠다.
"위원장이 약해졌다."
"위원장이 바뀌었다."
"위원장이 본인 안위만 챙긴다."
그런 오해가 생길까봐.
하지만 나는 약해진 것이 아니고
내가 바뀐 것이 아니라 현실이 바뀐 것이다.
지금까지는 살아남기 위해 싸웠다면
이제는 살려내기 위해 대화를 선택하는 시기다.
이것은 후퇴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진화다.
내가 상생을 고민하는 건 나를 위한 일이 아니다
회사에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노동조합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승진이나 보직에 욕심이 없다.
이미 그 길은 버렸기 때문이다.
상생을 고민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노동조합이 살아남아야 노동이 존중받는 구조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회사는 현재 위기에 놓여 있다.
수년간 흑자를 내던 회사가 2024년에는 적자를 걱정해야 한다.
이 현실을 무시하고 과거 방식 그대로 싸우는 건
조합도 회사도 현장도 망하게 하는 길이다.
싸움만으로 유지되는 노동조합은
금방 외롭게 낡아버린다.
대화와 상생으로 지속되는 노동조합만이
다음 세대에게 이어진다.
나는 아직도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이 나를 지켜왔다
복직을 앞두고
나는 나 자신을 의심했고
실망했고
내 신념도 흔들렸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흔들렸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흔들림은 약함이 아니다.
흔들린다는 건 무게를 견디고 있다는 증거다.
흔들려도 멈추지 않는 사람만이
앞으로 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나아갈 것이다
복직을 앞두고 나는 다시 다짐한다.
조합원에게 부끄럽지 않은 방향을 선택하겠다.
회사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노사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선택하겠다.
상생은 회유도 굴복도 아니다.
노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설계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합원이 모르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이 ‘안심할 수 있도록’
내가 더 많이 설명하고 더 많이 기록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마음 깊이 깨달았다.
그게 위원장인 나의 몫이다.
복직을 일주일 앞둔 지금
나는 지금 울산 안전보건공단 교육원에서
2박 3일간의 산업안전보건 교육을 받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안전에 대해 서툴다.
지난 3년 동안 투쟁과 교섭, 조직방어에 집중하느라
‘안전’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으로만 이해했지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야 한다.
회사와 조합 모두가 지쳐 있는 이 시기에
진짜 상생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나부터 현장의 기본을 다시 배워야 한다.
내가 모르는 분야라서 더 공부해야 하고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갖춰야
앞으로 조합원들과 함께 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
이번 교육이
우리 노동조합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작지만 반드시 필요한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