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인사평가인가?
겨울이 되면 노동조합은 어김없이 인사평가라는 찬바람 앞에서 흔들린다.
인사평가는 누구에게나 불편하지만 노동자에게는 훨씬 더 깊게 파고든다.
그 점수 하나가 승진의 척도이고
임금 인상의 기준이며
한 가정의 생계를 직접적으로 건드리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흔들리는 이유
인사평가 시즌만 되면 조합원들이 술렁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평가가 공정하지 않다는 경험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기준은 모호했고 설명은 부족했으며 이의 제기는 형식적 절차처럼 느껴졌다.
어떤 공장에서는 상급자의 기분이 평가가 된다고 말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조합 활동이 감점 사유가 되었다는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평가제도 하나가 현장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조합원들은 그 찬바람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불안해했다.
회사의 답변은 늘 명확하다
회사는 말한다.
“명확한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인사권과 경영권은 회사의 고유 권한이므로 세부 기준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
노동조합의 문제 제기는 결국
“회사 고유 권한을 침해한다”는 말로 되돌아왔다.
지난 3년이 그랬다.
인사평가가 노동자에게 주는 의미
인사평가는 한 노동자의 경력, 명예, 생계, 업무 만족도, 조직 내 위치까지 결정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주관에만 의존하는 구조라면
그 과정만큼은 최소한 투명해야 한다.
이상적인 인사평가란
성과·협업·역량 등을 정량화하고
절차가 예측 가능하며
결과에 대한 설명이 제공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자는 평가자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래서 조합원들은 겨울만 되면 더 초조해진다.
지난 1년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순간
괴로움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지난 3년, 질문만 던져온 노동조
3년 동안 노동조합은 묻고 또 물었다.
왜 기준이 비공개인가?
감점 사유는 무엇인가?
동일 업무인데 공장마다 점수가 다른 이유는?
이의 제기는 왜 실효성이 없는가?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늘 같았다.
“회사 고유 권한입니다.”
질문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고
회사의 문장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지난 3년,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회사
회사에게 노동조합의 요구는 ‘기준 공개’였지만
회사는 이를 곧바로 ‘경영권 침해’로 받아들였다.
그 말은 곧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같은 질문을 반복했고
회사는 같은 답변을 반복했다.
3년 동안 서로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의 입장을 좁힐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요즘 이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물러 있다.
평가 제도는 회사의 권한이 맞다.
하지만 그 평가의 결과를 가장 크게 떠안는 건 노동자다.
그렇다면 어느 지점에서 양쪽의 권한과 권리가 만날 수 있을까?
노동조합이 평가권을 가져오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준은 공개되어야 하고
근거 있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 최소한의 설명은 제공되어야 한다.
그뿐이다.
그 단순한 요구가 왜 이토록 먼 길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설립 3년 된 노동조합의 한계
노동조합이 설립된 지 이제 3년.
경험도 관행도 없는 상태에서 평가제도를 건드린다는 건
거대한 벽을 손으로 미는 것과 비슷했다.
특히 인사권은 회사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영역이었다.
노조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는 분위기가 따라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벽을 정확히 마주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해법
우리가 원하는 건 모든 것을 공개하라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가 알고자 하는 건 ‘전부’가 아니라 ‘기준’이다.
어떤 항목이 있고
어떤 비율로 반영되며
어떤 행동이 감점 사유가 되는지
피드백은 언제·어떻게 제공되는지
이 정도의 투명성만 갖춰져도 현장은 훨씬 안정된다.
나는 이것이 노사상생의 첫 단계라고 생각한다.
평가가 공정해야 상생이 가능하다.
불신 위에 상생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예시가 던지는 질문들
예를 들어보자.
공장 내 매출 1등 김과장은 B 매출 10등 이대리는 A를 받는 경우.
업무량이 절대적으로 많은 박계장은 C를 받는 경우.
공장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오차장은 D를 받는 경우.
혹한기·혹서기마다 설비를 붙잡던 윤사원이 B를 받는 경우.
평가자들은 이유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당사자는 자신의 평가를 이해하지 못한다.
설명이 없으면 불신이 자라고
이의제기를 해도 변하지 않는다면 절망이 쌓인다.
하지만 이렇게 해석하면 어떨까?
매출 1등 김과장은 근태가 좋지 않았다.
매출 10등 이대리는 영업업무 자동화 서식을 만들어냈다.
박계장의 많은 업무는 동시에 많은 클레임을 의미했다.
오차장은 공장장뿐만 아니라 동료들과의 분쟁도 잦았다.
윤사원의 설비 유지보수업무는 업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준이 계량화되지 않으면
이 설명들은 결국 ‘누군가의 해석’에 머무른다.
그래서 문제는 다시 기준으로 돌아온다.
노동과 임금의 관점에
회사는 말한다.
“여기는 돈을 받고 일하는 곳이다.
사후관리나 정서관리는 의무가 아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입장은 다르다.
우리는 노동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것이다.
임금이 먼저가 아니라
노동이 먼저다.
이 인식이 우리 사회에 분명히 자리 잡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앞으로 과제는 무엇일까?
우리가 이 벽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꾸준히 밀어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투명한 평가 기준
공정한 절차
노동자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
그 작은 변화들이 쌓여야
노동조합도 회사도 조직문화도 함께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 노동조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역할은 바로 그 지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