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감은 쉬워도 상생은 어렵다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

by 기록하는노동자

12월이 시작하면 현장은 어김없이 같은 이야기를 꺼낸다.
“내년부터 임금피크제 들어가시는 분들은 어떻게 하신다냐?”


겨울의 공기보다 먼저 찾아오는 단어 '임금피크제'
56세부터 매년 10%씩
60세가 되면 임금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구조.


하지만 임금이 줄어드는 만큼 노동강도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업무는 그대로다. 책임도 그대로다.
달라지는 건 통장에 찍히는 숫자뿐이다.


그래서 임금피크제를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마음은 언제나 춥다.
삶의 체온이 조금씩 내려가는 기분.
그 온도는 회사는 느끼지 못하지만 노동자는 뼛속으로 느낀다.

제도는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상생’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회사는 말한다.
“이미 정해진 제도이고 수년간 운영해 온 구조입니다.”


맞다. 임금피크제는 오래전부터 시행돼 온 제도다.
일부 공장에서는 공장장의 요청으로 삭감 중단 승인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절차가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지는지
노동자 누구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


제도는 있는데 절차는 없다.
승인은 있는데 기준은 없다.
가능성은 있는데 공정성은 없다.


이러다 보면 노동자들은 결국 그 말을 속으로 삼킨다.
“나는 왜 안 되는 거지?”
“나는 어떤 기준에서 불리한 걸까?”
“무엇을 잘하면 무엇을 바꾸면 나도 예외가 될 수 있을까?”


그 질문들이 쌓여 불안이 된다.
불안은 불신으로 불신은 갈등으로 이어진다.
삭감은 회사가 결정할 수 있지만
상생은 결코 일방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임금피크제의 원래 취지를 떠올려본다

애초에 임금피크제는 고령 노동자의 고용 유지를 위한 사회적 타협이었다.
임금을 줄이더라도 끝까지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


그러나 현실에서는 종종 반대로 작동한다.
“임금은 줄었지만 이전과 똑같이 일해야 한다.”
“경험 있는 인력이니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임금은 내려가고 노동강도는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건 제도의 원래 목표와 거꾸로 가는 구조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고용 유지’가 아니라
‘삶의 절벽’을 마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년연장이 논의되는 지금, 이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사회는 정년연장 논의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 감소, 국민연금 개편, 고령사회 진입.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정년이 늘어나면 임금피크제가 노동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지금보다 훨씬 길어진다.
그러면 회사의 비용 부담도 노동자의 생계 부담도 함께 늘어난다.


바로 지금이 노사가 함께 미래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반대하거나 밀어붙이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설계해야 할 문제.
생존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의 문제.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나는 임금피크제를 무조건 없애자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제도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상생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① 투명한 기준과 공정한 절차

- 어떤 기준에서 삭감이 중단될 수 있는지?

- 누구의 요청이 어떻게 승인되는지?

- 그 판단 기준이 노동자 간 차별을 만들지는 않는지?

이런 투명성이 없다면

동일한 상황의 노동자들이 전혀 다른 결과를 받게 되고

그 순간 제도는 신뢰를 잃는다.

② 임금이 줄면 노동강도도 재설계해야 한다

56세 이후 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이 반드시 예전과 같을 필요는 없다.

안전보건 중심 업무나 후배 육성, 점검이나 교육업무 등 역할 재설계와

근무시간 조정을 통한 자기계발의 시간을 부여해야 한다.

이런 역할 재설계는 회사의 안전에도 도움이 되고

노동자의 건강과 미래에 도움이 된다.

③ 정년연장 대비 노사 공동연구팀 구성

지금 하지 않으면 늦는다.
회사는 ‘비용 증가’라는 위기를 말할 것이고
노동자는 ‘생계 악화’라는 위기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두 문장은 결국 같은 문장이다.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모두가 어려워진다

나에게도 오래 남아 있는 질문 하나

복직을 하고 회사와 대화를 쌓기 시작한 시점에

노동조합이 갈등을 넘어서 상생의 길을 만들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한다.


삭감은 쉽다.
회사가 마음먹으면 제도는 바로 시행된다.
그러나 상생은 다르다.
상생은 말만으로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화가 있어야 하고
원칙이 있어야 하고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세 가지를 만드는 것이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적어본다

"임금은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신뢰는 낮출 수 없다."

임금피크제는 회사의 제도지만
그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는
노사 모두의 미래를 결정하는 문제다.


우리는 지금
제도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출발선에 서 있다.


그 출발선에서 나는 다시 한번 묻는다.

삭감 이후의 길을 누가 만들 것인가?

회사가 먼저일까? 노동조합이 먼저일까?

아니면 함께여야만 가능한 걸까?


나는 마지막 경우라고 믿는다.
상생은 혼자서 만들 수 있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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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조록은 상생을 위한 기록이며, 모든 연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
이 글은 노동존중사회로 가는 발자국이며, 함께 걸어줄 모든 손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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