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2025. 6. 5., 서른한살의 기록
영화 "킹덤 오브 헤븐"(2005, 디렉터스컷)에서 주인공 발리앙의 작중행적은 전형적인 클리셰에 가깝다. 평범한 주인공이 하루 아침에 영주가 되고, 죄를 짓고 도망치다가 어떠한 부름에 의해 민족을 해방시키는, 모세의 이야기(영화에서도 실제로 나무에 불꽃이 일고 신의 메세지를 받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의 메세지는 주인공이 아닌 다른 두 인물, 볼드윈 4세와 살라딘에 있다. 인간을 해방시키는 그 "부름"은 다름이 아닌 자신의 선택이며, 이는 신마저도 강요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옳기 때문에 행하는" 그 선택이 하늘의 왕국을 만들고, 심판의 날이 찾아올 때 누군가의 입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신에게 죄를 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종교와 가치관은 다르지만 두 인물은 그 자체로 성인(聖人)처럼 묘사된다. 옳은 것을 행하는 자의 존엄을 흐르는 강물처럼 고요하고 장엄하게 나타낸다. 이 강렬한 메세지와 인상은 영화 전체를 대서사시 또는 신화처럼 그려낸 연출에서도 오지만, 배우들의 연기에서 가장 크게 비롯된다. 살라딘 역의 가산 마수드 또한 강인하고 유려한 지도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지만, 볼드윈 4세 역의 에드워드 노튼은 손에 꼽는 연기를 보여준다. 예루살렘의 왕이지만 동시에 죽음을 눈앞에 둔 나약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둘 수 있는 최선의 수를 두는 모습을, 목소리와 몸짓 만으로.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분명한 도덕적 가치를 전달하는 데 이렇게 큰 인상을 남긴 것은 개인적으로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2) 이후 매우 오랜만인 듯 하다. 두 영화 모두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공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둘의 화법이 이렇게 다른 것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다시 한 번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가 잊혀지지를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