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직장 발령으로 중국 남경(난징/南京)에 온가족이 첫발을 내딛고 산 지 3년 만에, 다시 북경(베이징/北京) 지사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만 겨우 마치고 온 큰 아이, 돌잔치만 겨우 하고 온 작은 아이를 데리고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눈물로 적응하며 시작한 생활이었지만, 3년은 어느새 나에게 남경에 대한 애정을 뿌리내리기 시작한 세월이었다. 적응을 위해 ‘애愛’와 ‘증憎’이 공존했던 시간은 오히려 끈끈한 정으로 남아서, 한 도시와의 이별이 참 어려웠었다.
같은 하늘 아래 다른 도시로 이사 가는 것이었지만, 워낙 땅덩이가 큰 나라이다 보니 한국으로 가는 것만큼 멀었고 또 달랐다. 처음 남경에 정착했을 때와 달리 중국생활과 중국어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아이들도 성장한 상태였지만, 북경 생활에 대한 적응은 의외로 쉽지 않았다.
우리가 북경에 왔던 시기는 1월이라 남쪽 도시였던 남경에 비해 북쪽의 겨울은 살벌하게 추웠고 매우 건조했다. 겨울에도 수목과 잔디가 초록색으로 남아있던 남경과 달리, 북경의 겨울은 무채색 그 자체였다. 북경 외곽에는 산과 호수가 있다고 했으나, 도심에 그것들을 품고 있는 남경과 비교가 되어 삭막하게만 느껴졌다. 대륙의 수도이니 물가가 상대적으로 더 높았으며 도시의 크기, 인구수, 한국인 거주지역 등 규모적인 면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많이 달랐다.
적응 기간 자체가 사치였던 직장인 남편, 학교와 친구들 속에서 적응에 유연한 아이들, 그러나 난 꽤나 오랫동안 남경과 ‘다름’만 찾아 좆고 있었다. 내 눈길과 마음이 다름만 좇다 보니 적응 속도도 더디었다. 그리고 그 다름의 여러가지 측면 중에 내 눈에 어색했던 것 중 하나는 가까이에 성벽과 성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지금은 많이 파괴되었다고는 하지만 10개 왕조의 도읍지 답게 남경 시내에는 여전히 성벽과 성문 흔적이 상당히 남아있다. 명 1386년에 완공된 남경의 도시 성벽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길고 크게 남아있는 문화유산이어서, 서안(西安)과 더불어 도심 관광의 필수코스로서 성벽을 꼽는다. 남경 거주 당시 우리집 가까이에도 성문이 있어서 오고 가며 항상 마주치는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리움은 호기심이 되었으며, 호기심은 우연한 기회를 포착하는 순간적인 능력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북경 시내를 지나가던 길, 우연히 차장으로 본 성벽의 흔적을 마주하고는 어찌나 반갑던지! 지금 생각해도 빠르게 지나가는 차 안에서 멀리 쌓여 있는 돌덩이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는 게 참 신기하다. 어라, 여기도 성벽이 남아있네?? 저건 뭘까, 뭘까, 뭘까...?
이제는 남경과 비교하여 ‘없는 것’ 보다는 북경에만 ‘있는 것’을 찾으며 살아가는 중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정이 생긴다는 간단하고 핵심적인 사실이 내 모토가 되었다. 여전히 중국 살이는 롤러코스터처럼 좋은 시기와 힘든 시기를 번갈아 가며 나에게 끊임없는 도전을 주지만, 정이 생기는 만큼 일상이 흥미진진해지고 나의 마음은 단단하고 평온해 지며, 나의 평온함은 우리 가정에 에너지가 된다는 사실을 마법 주문처럼 되뇌인다.
그동안 내 눈에 포착되어 나를 끌어당긴 북경의 매력들을 찾아왔고 이를 찾아가는 과정을 일상 기록으로 담아오고 있다. (https://blog.naver.com/yjseokim) 이제부터는 그 매력들 중 나의 마음을 가장 빼앗은 사라진 성문의 이야기에 조금 욕심을 내보려 한다. 블로그에 의식의 흐름대로 자유롭게 기록했던 나의 일상이었다면, 브런치라는 ‘쓰기’의 정교한 틀 속에서 타인에게도 즐거운 ‘읽기’가 되도록 업그레이드 해보고자 한다.
북경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내가 다녀왔던 모든 성문의 사라진 흔적들을 다시 한 번 방문하는 것이 그 도전의 첫 걸음이다. 쓰기의 시작은 걷기라고 생각한다. 대중교통과 걷기를 통해 주변을 살피는 여유 속에서 익숙함도 신선함이 되는 순간을 자주 경험했다.
행동은 모든 성공의 가장 기초적인 핵심이다.
- 파블로 피카소
2022년 초봄, 쓰기 위해 두 발로 걷는다.
행동으로 옮긴 나의 발걸음으로, 북경에 있는 우리들과 북경을 그리워하는 그들과 공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