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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ia Mar 03. 2022

낯선 도시를 덜 낯설게 느끼는 방법

북경 도시 구조에 대한 이해


나는 무엇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편이었다.

                      -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이 될 때> 중






지도에 대한 집착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가든지, 나는 공항이나 기차역에서 제일 먼저 여행자센터의 지도를 잔뜩 집어 든다. 호텔에 체크인 하면서도 지도를 달라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었다. 한국에서도 관광지에 가면 가장 먼저 종이 지도를 찾거나 입구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안내도를 바라본다.


신혼 초 까지만 해도 자동차 보험 연간 갱신하면 주는 사은품이 바로 두툼하고 커다란 대한민국 전국지도! 남편과 둘이 지도책을 보며 올해는 어디 놀러갈까 표시해 두며 즐거운 상상의 순간을 만끽했었다. 이후 네비게이션이 보편화되면서 보험회사에서는 더이상 지도책을 주지 않게 되어서 조금은 서운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이 아닌 정착하기 위해 온 북경이라는 도시에서 조차 나의 습관은 이어졌다. 중국에 온 후 핸드폰 앱의 바이두지도(百度地图)가 큰 도움이 되어 종이지도를 볼 일이 점차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중국 전도를 구매하여 벽에 붙이고 종이 지도를 살피며 도시 모양을 눈에 익혔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정이 들어간다는 나의 모토에 따라.


 낯선 도시에서 내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한 눈에 보이면 낯설고두려운 마음이 조금 사라지고 자신감이 붙는 기분이다.  

북경 생활 초기 막막했던 나의 마음과 함께 했던 동반자들, photo by eugenia



현재를 살면서 과거에 관심을 갖는 나의 성향은 대학교 전공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전공은 지금의 이야기, 신문방송학이었지만 부전공으로는 옛 이야기, 사학을 선택했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에 대한 막연한 관심과 개인적 취향은 살아오면서 부지불식간에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36년 서양인 Frank Dorn이 그린 북경 (당시 명칭 페킹Peking) 풍속 지도를 보는 순간, 어머 꼭 사야해!를 외치며 뿌듯하게 ‘득템’하였다. (지도 설명 : https://blog.naver.com/yjseokim/222033676017)

북경풍속지도北京风俗地图, made by Frank Dorn, 1936







“난 누구, 여긴 어디?”

낯선 도시를 덜 낯설게 느끼는 방법


북경 도시 구조에 대한 기본 이해 : 키워드는 ‘성(城)’과 ‘환(环)’


성(城) – 과거를 이해하는 키워드


오랫동안 중국의 수도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 북경은, 황제가 거주하는 수도 답게 여러 겹의 방어 장치를 마련하였다. 도심 멀리에는 만리장성을 쌓았고 도심 내부는 황제의 성(고궁, 일명 자금성)을 중심으로 성벽이 둘러싸고 있었다.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자금성을 둘러싸고 있는 황성,

그리고 황성을 다시 둘러싸고 있는 내성.

내성 밖을 다시 한 번 둘러싸고자 했던 외성.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라인 (출처 : 베이징관광국 & 바이두지도)



원나라 때 대도(大都)라는 이름의 수도 시기부터, 그리고 명나라 영락제 때 천도 후 현재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북경의 성벽은 마치 키 높은 신사모와 같은 모양을 띄며 북경 도시를 상징하는 아주 대표적인 “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자 형상의 라인은 그야말로 북경 역사와 관광지 핵심이다.

designed by eugenia




환(环) – 현재를 이해하는 키워드


북경은 도심 한 가운데 고궁(자금성)을 중심으로 하여 환(环,Ring)이라는 도로가 여러 겹 둘러싸고 있는 구조이다. 고궁 성벽이 1환 (실제로는 이렇게 부르지는 않고 황성이라고 한다)에 해당하며, 이를 둘러싸고 있는 내성과 외성에 해당하는 2환(二环)부터 점차 퍼져 나가며 6환(六环)까지의 순환도로를 이루고 있다.

한국인들 주요 거주지인 왕징 望京은 북동쪽 4환과 5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lhr8282/220872846553



얼마전 왕징에 새로 오픈한 수제맥주집 京A(징에이)를 방문하니, 네온사인으로 북경 1환~6환 도로를 표현한 장식이 걸려있었다. 북경의 자동차 번호판 첫글자인 京에서 모티브를 따온 대표적인 북경 수제맥주 브랜드인 만큼, 실내 장식도 북경 도시구조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해서 흥미로웠다.

수제맥주집 京A  가게 내부



성의 의미 – 과거와 현재의 경계이자 연결 고리


지도를 보는 바와 같이 내성과 외성(2환) 안쪽이 옛날에는 일명 ‘서울’이었던 것이다. 고궁(자금성), 경산공원, 스차하이, 고루, 종루, 난뤄구샹, 왕푸징 천단공원 등 주요 역사적 관광지와 북경을 대표하는 옛 골목(후통)들은 대부분 2환 안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에서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던 나로서는, 나이든 어르신들이 ‘거긴 옛날에 뽕밭이었어!’라며 4대문 밖 지역들은 예전에 별 볼일 없던 곳임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자라왔다. 지금은 롯데월드타워와 올림픽공원 등으로 번화가의 정점을 찍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이기에 이 옛 이야기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북경에서도 한국인 거주지역인 왕징은 예전으로 따지만 별 볼일 없는 외곽 중 외곽이었을 터. 성문이 위치한 현재 2환 도로에서부터 따지자면 4환 밖에 위치한 시골이었다고나 할까… 십여 년 전에 왕징에 정착한 한국인들이 “아파트 창 밖을 내다보면 논밭이 보였어!”라고 하는 무용담을 종종 전해준다. 세계적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왕징소호(望京SOHO)가 2014년 완공된 이후, 지금은 땅값 비싸고 주요 중국 및 외국 회사들이 많이 입주한 화려한 지역이 되었다. 그리고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

왕징의 대표 랜드마크인 왕징소호의 낮과 밤. photo by eugenia



‘성’과 ‘환’의 교집합 – 지하철 2호선과 성문


1950년 대, 북경 도시계획에 따라 북경의 모든 성벽이 철거되었으며, 소련과의 관계악화로 지하철 건설이 바로 전쟁준비로 연결되는 상황이었다. 정양문과 덕승문 제외하고 대부분 북경 성벽들이 철거되었으며, 사라진 성문들은 현재 지하철 2호선에 역 이름으로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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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와 같이, 이름은 단순히 명사(名詞)가 아니라 의미와 역사를 지닌다. 왼쪽 지도의 내성 성문 이름들이, 오른쪽 지하철 2호선 역이름으로 고스란히 ‘안착’ 되어있다. 비록 지금 성문은 남아있지 않지만, 과거 각각의 성문이 담당하던 역할과 의미가 현재까지도 주변 관광지와 옛 골목(후통)에 남긴 흔적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을 찾는 것. 그리고 그 흔적들과 현재의 흥미로운 볼거리를 연결시키는 것이 나에게는 북경 살이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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