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제임스 터렐의 Gathered Sky

온 몸으로 느끼는 베이징의 밤하늘

by eugenia


제임스 터렐 <개더드 스카이>

James Turrell’s Gathered Sky

北京市东城区沙滩北街嵩祝院23号 (템플동징웬 Temple东景缘)

+86 (10) 8402 1350

events@templedjy.com

위챗 공식계정 및 예약 : thetemplehotelbj



북경에 산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여행자 모드로... 지도, 길찾기, 맛집, 볼거리, 기념품 쇼핑, 그리고 언제든 떠난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시간이 지나 이곳 삶이 익숙해져가는데도 나는 이 여행자 모드를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이미 너무 익숙해진 것 같다. 마치 3박 4일 여행 온 듯, 하나라도 더 새로운 것을 찾는데 집중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삶의 방식이 나에게 적합하기도 하고 일상의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점 때문에 만족하는 편이지만, 내 마음 저 밑바닥에는 무언가 2% 부족함을 느끼는 때가 종종 있다.

이 도시 북경을 완전히 새롭게 경험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the most unforgettable sunset trip of your life

(당신 생애 잊지 못할 일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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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하늘을 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바라본 적이 있던가?
그건 아마도 한국에서도 하지 못 했던 경험일테다. 떠가는 구름 본다고 한참 멍 때리던 것은 시간이 넘쳐나던 어린 시절 외에는 갖기 힘든 기회가 아닐까.


전시 광고에 나온 일몰 여행 (sunset trip)이라는 문구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최근 내가 기억하는 일몰은 1초 정도 흘낏 지나치듯 바라보는 대상인데, 자그마치 '여행'이라고 하니 무조건 해보고 싶어졌다.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은 1943년 미국 출생의 예술가이다. 빛과 공간 (Light and Space)을 이용한 설치 미술로 전세계 곳곳에 그의 작품이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1984년 맥아더 펠로우쉽을 수상하고, 2014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국가 예술 훈장을 수여받기도 한 명망있는 작가이다.

2012년, 제임스 터렐은 중국 베이징시 동성구(东城区)의 600년 된 고찰인 숭축사(嵩祝寺)를 개조하여 그의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 시리즈 중 하나인 ‘개더드스카이(Gathered Sky)’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1974년 시작한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 시리즈는, 천장을 원형이나 사각형 모양으로 뚫고 LED가 이를 감싸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베이징에 설치된 것은 중국에 설치된 유일한 스카이스페이스 시리즈이자, 전세계 80여개 스카이스페이스 시리즈 중 영구적으로 대중에게 오픈되고 도심에 위치한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라는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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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송축사 개조 메이킹 영상 中


그의 작품이 설치된 장소인 Temple东景缘(템플동징웬)은, 경산공원 동쪽이자 난뤄구샹 아래쪽 샤탄베이지에(沙滩北街) 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숨겨진 보물같은 장소이다. 갤러리, 식당, 찻집, 요가 스튜디오, 이벤트 공간, 문회 체험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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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 즐기기에 제격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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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일몰 시간을 확인하는 것 또한 흔치 않은 경험이다. 설치 작품인 "개더드 스카이"는 일몰 시간에 맞춰 1시간 가량 진행되며, 시작 20~30분 전부터 입장한다. 초가을 선선한 저녁, 17:49 pm 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내가 맞이하게 될 것은 무엇일까 기대 반, 설렘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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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간에 들어서니 옅은 간접 조명을 제외하고는 내부 장식이 거의 없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천정에는 사각형의 공간이 뚫려서 하늘이 보이며, 사람들이 매트를 집어들고 원하는 위치에 자리잡고 눕는다. 그대로 따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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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몸짓으로 자리 하나 골라 누웠다. 곧 시작이다.


평소에 넓고 크고 무한한 하늘만 바라보다가, 사방 흰 벽 속에 작게 뚫린 네모 천정 안에 집약된 하늘을 바라보는 경험은 참으로 신비했다. 문법적으로 이상하지만 의미적으로 찰떡인 'Gathered Sky'라는 표현이,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며 나는 서서히 제임스 터렐이 의도한 공간과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작할 때 하늘색 옅은 하늘 색의 맑은 하늘이 일몰과 함께 점점 어두워지며 결국 까맣게 될 때까지, 한 시간 정도 다들 조용히 누워있었다. 프레임 속 가짜 하늘인듯 보이지만 곧 날아가는 새와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현실'임을 퍼뜩 깨달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두워지는 하늘의 색 변화와 더불어 주변 흰 벽에 비치는 조명의 색깔이 달라지는데, 단순한 이 설계가 엄청난 몰입감과 환상을 가져다주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인지의 과정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느껴졌다.


실은 집중과 명상의 시간이 될거라 지레짐작했었다. 그러나 막상 누워보니 이것저것 잡다한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채웠다. 내 눈이 보는 것과 뇌가 받아들이는 것 사이의 간격을 낯설지만 기분좋게, 천천히 음미해보기도 하고, 내가 보는 것이 과연 내가 느끼고 기억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일까라는 질문도 마구 떠올랐다. 아이들 생각도 물론 퐁퐁 샘솟았고, 같은 공간에 누워있는 낯선 주변사람들은 또 누구일까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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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살짝살짝 찍어본 하늘. 그러나 곧 핸드폰을 내려놓고 내 눈의 기록에 의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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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석양은 사라지고 조용한 밤하늘로 바뀌며 음악이 멈췄다. 어른이 되고 난 후 진지하게 일몰을 감상해본, 실로 최초의 경험이었다. 처음 파랗게 시작한 하늘이 까맣게 되는 어느 순간, 직원이 살짝 문 열고 들어오며 结束了 (끝났어) 라고 작게 얘기한다.

베이징의 하늘,

떠가는 구름,

날아가는 새들,

오래된 후통 안 하얀 방,

명상음악,

벽 너머 간간히 들리던 골목 안 전동차의 “请注意倒车 (후진주의)” 소리가 이곳이 중국임을 일깨워주었다. 시끄럽기보다는 정겨웠다.


매트 위에서 몸을 일으키고 옷가지와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고 차가워진 밤공기 속으로 걸어나오니 꿈인듯 생시인듯 몽롱하다. 핸드폰을 펼쳐보니 사진첩에 남은 형형색색 모자이크 사진들이 내 경험의 실존을 증명해주었다.


My work is more about your seeing than it is about my seeing, although it is a product of my seeing.”— James Turrell

(내 작품은 내가 보는 것에 대한 산물이지만, 나보다는 당신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임스 터렐이 말한대로 그가 의도한 전시 공간 속이지만 각자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은 제각각일 것이다. 그가 의도한 조명 색깔 조차 각자 다르게 인식했을 것이다. 그는 독실한 퀘이터 교도로서 베트남 전쟁 징병제 당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하며, 교도소에서 몇 년을 보내기도 했다 하고, 16세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비행사로서 항공지도 만드는 일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다. 미술 공부를 하기 이전에 인지심리학 학사를 취득하는 등 그의 다채로운 인생 경험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하늘과 우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토대로, 보이는 것과 인지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사이의 차이를 꿰뚫는 그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추분이 지나 해가 짧아진 어느 가을 밤. 전시라고 하기에도 체험이라고 하기에도 어떤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 그저 북경을 경험하는 색다른 방식이었고 방해받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한 시간이었다. 덕분에 핸드폰으로 집중되어 구부러진 고개가 하늘을 향해 쭉 펴진 시간이었음을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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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터렐은 알고보면 우리나라에도 친근한 작가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담당한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Museum SAN)에는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무려 5개가 전시 중인 상설 전시관이 있으며, 이곳에도 또하나의 스카이스페이스 시리즈(2012)가 있다.


베이징의 하늘이나 원주의 하늘이나 지구의 같은 하늘이지만, 1시간의 시차를 두고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 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장소 특정적 미술 (Site-specific Art)은 특정한 장소에 존재하기 위해 제작되었으며 그 장소가 작품의 일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조화를 이루는 예술 형태를 일컫는다. 베이징 어느 골목 안 고찰을 개조한 '개더드 스카이'는 전세계 수십개 스카이스페이스 시리즈와 차별되는, 이 도시만의 정서를 가득 담고 있는 그런 작품이며 그런 체험을 선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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