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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ia Oct 26. 2022

16.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과 ‘나올 때’의 나

에필로그




내 한낱 서생일 뿐이로구나. 머리가 희끗희끗해져서야 비소로 장성 밖을 나가게 되다니.


1780년, 조선의 연암 박지원 선생은 44세의 나이에 중국을 유람할 기회가 찾아왔다. 청나라 건륭황제의 70세 생일 축하사절단에 팔촌형 박명원이 가게 되면서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 옛날 걸어서 육로로 장장 6개월에 걸친 여정을 통해, 북학파였던 박지원의 실리적인 관점과 호기심, 낙천적이고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성격, 그리고 유머감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명작인 <열하일기>를 탄생시켰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지나갔던 만리장성인 고북구장성(古北口长城)


중국살이를 시작한지 10년 차가 되었으니, 나도 연암 박지원 선생처럼 인생사 여든의 절반이 지나서부터 대륙에 첫 발을 내딛은 셈이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삶, 다른 경험을 할 기회가 생겼다. 글쓰기의 원동력이 바로 호기심이라는 점에서 연암 선생과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미래보다 과거에 더 집착하는 성격 덕에,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사용해온 내 수첩은 계획을 세우는 플래너보다는 기록하는 다이어리의 역할이 컸다. 온라인이라는 장(場)으로 자연스럽게 넘어와서도 블로그를 통해 기록하는 것이 성격에 잘 맞았으며, 어지럽게 흩어진 기록들을 구슬로 꿰는 작업이 바로 브런치 글쓰기였다.


한국에서 미술과 전혀 상관없는 대학 전공과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순수히 비전공자의 눈으로 부담 없이 기록했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시절 처음 가본 미국에서의  미술관이었던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Art Institute of Chicago) 다녀온  자연스럽게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책을 구입했다.  모든 과정이 그저 자연스러웠다는 것이 돌이켜보면 놀랍다.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Art Institute of Chicago)  /  집에 다들 한 권 씩 있는 책 아닌가요? ^^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가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갔는데, 그 전시를 꼭 봐야겠다는 목적보다는 그 공간이 주는 힐링 포인트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아주 바쁜 일정 속에서도 평일 소중한 하루 휴가를 얻으면 미술관에 가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멀리 가지 않고도 여행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를 실천한 것이 아닐까?


최근 읽게 된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인 정명희님의 <멈춰서서 가만히>는 그 당시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구절들이 많아서 한 장 한 장 소중히 읽은 책이다.


“입안 가득 털어 넣은 비타민보다 아름다운 것을 같이 본 순간의 약효가 더 오래 가리니”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다. 마음 둘 곳이 없을 때 이곳만큼 적당한 곳이 없다."

“사람마다 느끼는 지점이 다르며, 각자에게 닿아 만들어질 이야기는 한 가지 뿐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낯선 것을 발견하고, 신기하게 느끼는 시선을 회복하며, 나다운 시간을 채워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박물관의 유물 관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걷다가 마주치는 미술관에서 느끼는 경험 및 감정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 미술을 몰라도 예술에 문외한이어도, 우연히 들어간 미술관에서 얻는 힘이 분명히 있다.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의 나와, 나올 때의 나가 미세하게 달라져있음을 느끼는 순간, 일상적인 나들이이면서도 활력을 주는 더할 나위없이 완벽한 장소를 찾은 것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는 시니컬 하면서도 직설적인 표현과 넘치는 지적 매력을 평범치 않은 문장으로 나타내는 매력이 있다. 그가 쓴 미술 및 미술가에 대한 에세이집인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이 이번 브런치 글쓰기의 제목에 영감을 주었다. 원제는 ‘Keeping an eye open’으로서 ‘눈을 크게 뜨고’라는 뜻인데, 이 제목도 마음에 들지만 한국어판 제목이 무엇보다 와 닿았다.


“나의 부모님은 문화를 주입하는 일도, 만류하는 일도 없었다... (중략) 예술이라는 관념은 우리집에서 존중 받는 무엇이었다.”


미술사가나 미술비평가가 아닌 순수한 미술 애호가인 작가 반스의 소설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책, 그러나 그는 어렸을 적부터 가정 내에서 자연스럽게 접해온 예술에 대해 전문가 못지 않은 지식을 토대로 한 사적인 의견을 펼치고 있다. 나의 브런치 글쓰기는 북경 관광객과 거주민 사이 어디쯤 위치한 기행문 같은 글이라 방어적이며 당당한 ‘사적’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끌렸다.




북경 생활에서 나에게 가장 활력이 되는 일은 걷기인데 걷기와 맞닿아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가볍고 부담 없이 충동적으로 방문이 가능한 미술관이어야 하기에, 수많은 미술관 중에 이런 관점으로 골라서 썼다. 물론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 ‘사적인’ 취향일테지만 말이다.


사전 예약과 계획이 필수인 미술관들 중에 북경의 핵심 미술관들이 있다. 북경의 핵심인 천안문광장 동쪽에 위치한 종합 국립박물관인 ‘중국국가박물관’ 중국 내 최대 규모 미술관 중 하나이며 중국 근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수집,연구,전시하는 ‘중국미술관’, 그리고 한국에 홍익대학교가 있다면 중국에서 최고 미술전문대학교 지위를 차지하는 ‘중앙미술학원’의 미술관과 5월 졸업전시회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이전보다 좀 더 까다로워진 이 미술관들의 방문 절차이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려 방문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중국국가박물관 (中国国家博物馆)

National Museum of China

주소 : 北京东城区东长安街16号(天安门广场东侧)

위챗 공식계정 : ichnmuseum

https://www.chnmuseum.cn/


중국미술관 (中国美术馆)

The National Art Museum of China (NAMOC)

주소 : 北京东城区五四大街1号

위챗 공식계정 : namoc2016

http://www.namoc.org/en/about/history/


중앙미술학원 미술관 (中央美术学院 美术馆)

CAFA Art Museum (Central Academy of Fine Arts)

주소 : 北京朝阳区花家地南街8号中央美术学院内

위챗 공식계정 : cafaartmuseum

www.cafamuseum.org




북경, 베이징, 北京, Beijing… 북경을 사랑한 외국인들이 있다.


북경의 일상을 아름다운 수채화로 담아내는 러시아 일러스트레이터 리우바(Liuba Draws), 북경의 역사와 옛 이야기를 연재하며, 도시 걷기 투어와 기념품을 선보이는 베이징포스트 카드(Beijing Postcards), 북경 도시 곳곳을 카메라에 담는 그리스 사진작가 조지 두파스 (George Doupas), 그리고 후통을 사랑해서 후통에서 거주하는 교사이자 자칭 ‘중국통’인 DJ인 카일 (Kyle Schaefer) 등에 대한 기사를 읽고 그들의 애정과 전문성에 감탄했었다.


 또한 북경을 사랑한 외국인으로서, 이들의 전문성과 영향력에 감히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북경 지하철 2호선 성문나들이> (링크) 더불어 <아주 사적인 북경 미술관 이야기> 북경에 대한  나름의 애정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씨란 인생 그 자체라고. 나는 아직 이런 글씨밖에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틀림없는 내 글씨입니다.

                   - 오가와 이토 <츠바키문구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 you for being my r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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