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로 향유하는 패션과 예술의 만남
Espace Louis Vuitton Beijing
ESPACE北京文化艺术空间
에스파스 루이비통 베이징 문화예술공간
주소 : 北京朝阳区建国门外大街1号国贸商城南区西楼
전화 : +86 4006588555
상해에 사는 지인이 종종 올리는 SNS 소식이 자주 내 눈길을 끈다. 상해 퐁피두 센터, 구사미술관 등에서 칸딘스키, 뭉크, 마르크 샤갈, 에르제 땡땡 등등 현대미술의 거장들 작품을 수시로 관람하는 모습에 부러움 반 & 배아픔 반이다. 2001년 출장으로 처음 가본 상해 - 푸동과 와이탄의 화려함, 진마오타워 까마득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그 세련된 풍경이 기억에 꽂힐만큼 놀라웠다.
이후 2008년 출장 와서 만나본 북경은, 올림픽 개최 직전이라 도시는 온통 공사판에, 상해에 비해 덜 세련된 듯한 모습, 게다가 천안문 앞에서 인력거꾼에게 사기까지 당해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되돌아 왔다. 그러나 삶은 예측불허, 내가 북경에 와서 살게 될 줄이야. 이제는 북경만이 가진 매력, 특히 후통과 환, 사라진 성벽과 중축선, 더불어 개성 있는 미술관에 흠뻑 빠져 살고 있다. 하지만 현대 미술 및 외국 브랜드, 글로벌 도시라는 차원에서는 여전히 상해와 같은 문화적 접근에 대한 목마름이 존재한다.
그러던 와중에 상해엔 없고 북경에 있는 것을 발견! 바로 에스파스 루이비통이었다. 에스파스 루이비통은 현대 예술분야 아티스트 활동 지원하고,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컬렉션 소장품을 대중에 선보이는 루이비통 브랜드의 문화예술공간이다.
에스파스 루이비통 문화예술공간은 현재 도쿄, 뮌헨, 베네치아, 베이징, 서울, 오사카에 설립되었으며, 루이 비통 재단(Foundation Louis Vuitton)이 후원하고 소유한 작품들을 순회 전시한다. 이곳은 루이비통 기업 브랜드의 이상에 맞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지원하며, 동시대 예술 작품의 창작을 장려하는 전시 공간이다. 전세계 여섯 곳의 에스파스 문화공간 중에 반가운 도시 서울도 있다.
에스파스 베이징은 시내 중심 고층건물들이 모여 있는 금융 및 상업지구 궈마오(国贸) 한복판, 거대한 루이비통 매장 옆에 위치하며, 총 800m² 규모의 전시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루이비통 손수건 한 장 가지고 있지 않지만, 루이비통이 문화예술 부문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공개하고 공유한 이런 장소와 기회는 십분 활용할 의의가 있다. 그야말로 땡큐! 유명 패션 브랜드 기업이 무료로 제공해주는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는 기쁨, 아주 기꺼이 누려보고자 한다.
루이비통 매장 끝 쪽에 위치한 에스파스 문화공간. 고층 빌딩 가득한 도심 한 복판에 살짝 여유가 느껴지는 한 귀퉁이에 조용하고 여유 있는 녹색 잔디밭을 품은 공간이 나타난다.
내가 경험한 에스파스 문화공간의 전시들.
2021.4.7~9.26 알베르토 쟈코메티/Alberto Giacometti 전시
스위스의 조각가이자 화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 (1901~1966). 스위스 100프랑 화폐의 주인공. 가늘고 긴 인체표현이 특징이며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선보인 6점의 연작 중 하나인 <베네치아의 여인> (1956)
(우) 인간의 나약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쓰러지는 남자> (1950)
무려 277m에 달하며 자코메티 작품 중 가장 큰 <키가 큰 여인> (1960)
자코메티의 작업 모습을 촬영하던 친구이자 사진작가 엘리 로타르를 모델 한 작품 - <남자 두상 (Lotar I,II,III)> (1964~65)
<장대 위의 두상> (1947) - 친구인 피터 반 뫼흐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표현한 작품으로 숨을 거두기 직전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평생 지인들의 죽음을 가까이서 목격하며 죽음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던 자코메티의 삶을 보여준다.
<걸어가는 세 남자> (1948) - 각기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세 남자들의 형상. 전후 재건 시기 바쁘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을 표현하였다.
총 8점의 작품 외에도 친구 사진작가인 로타르가 찍은 자코메티의 사진들이 전시장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데, 상당히 인상적이고 작가를 왠지 더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어두운 전시 공간 속에서 만난 낯선 길쭉이 청동조각들에 당황했지만, 전시실 안쪽에서 상영되고 있는 20분 남짓의 작가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 조금이나마 작품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2021.10.30~ 신디 셔먼/Cindy Sherman <On Stage/亮相> 전시
1954년 생. 미국 여성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 자기 자신을 피사체로 사진을 찍는 셀프 포트레이트(Self Portrait)로 유명하다. 스스로 파격적으로 분장하여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 창조해낸다.
Line-Up 1983년 Dianne B의 의뢰로 장 폴 고티에, 꼼데 가르송 패션을 이용하여 잡지 인터뷰를 위한 작품을 찍었다.
Untitled Film Stills - 필름 스틸은 영화 촬영 중 홍보 목적으로 제작된 이미지이다. 신디 셔먼은 어떤 영화인지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몽환적인 촬영법을 사용하였다.
Rear Screen Projections - 후방 투영(rear screen)은 세트 대신 사용되는 특별한 영화 효과로서, 움직이는 장면이 뒤에서 투영되는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촬영하였다.
History Portraits - 벼룩시장에서 산 옷과 보철, 가발, 각종 장신구 등을 한데 모은 의상을 입고, 르네상스부터 19세기까지 귀부인, 귀족, 부르주아 등을 표현하였다. 전통적인 스타일과 포즈, 시선, 헤어스타일, 옷 등을 유머러스하게 패러디하였다.
Clowns - 화려한 가발과 모자를 쓴 그녀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큰 입과 과장된 눈과 코를 가진 채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신디 셔먼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한 시작이었다. 캐릭터들은 아날로그 카메라를 사용하여 촬영되었지만, 배경의 단색 또는 다양한 색상의 패턴들은 컴퓨터로 만들어졌다.
Tapestry - 전형적인 매체인 인화지 대신 태피스트리(직물) 소재에 사진을 인화한 실험적인 작품이다. 전통적인 매체인 태피스트리에, 사진 보정 앱 등으로 피사체를 기형적인 실루엣으로 공상적이고 괴상한 모습으로 변형시켜 인쇄하였다. 가로세로 2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크기 뿐 아니라, 분장이 너무 인상적이라 가장 눈길이 가는 작품이었다.
(좌) Balenciaga - 발렌시아가, 하퍼스 바자 등과 협업한 작품. 21세기에 SNS 흐름에 발맞추어 블로거와 인플루언서를 연상시키는 일련의 스트리트 스타일 사진을 만들었다.
(우) Men - 2020년 루이비통 재단에서 처음 선보인 ‘Men 남자’ 연작 시리즈 중 하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남성복을 입고 각계 각층의 남자로 분장하였다.
전시 공간이 크지는 않지만 작품에 어울리는 분위기로 탈바꿈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시는 어두운 조명에 짙은 오렌지 벽면, 신디 셔먼 전시는 녹색와 버건디의 대비되는 벽면. 짧은 시간 동안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비현실의 세계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몽환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패션 브랜드가 마련한 예술 공간을 즐긴 후, 그 여운을 조금 더 느끼고 싶어서 바로 옆 루이비통 매장과 연결되어 있는 2층 출구로 가보았다. 바로 연결된 통로 앞에 패션잡지로 유명한 보그로 꾸며진 테마 까페(Vogue Café)가 나타난다. 럭셔리한 전시를 무료로 감상했으니, 조금 비싼 커피를 마셔도 죄책감이 덜하다.
패션과 문화와 예술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조화이든지 상관없다. 하루쯤 잘 차려 입고 집 근처를 벗어나서 색다름을 느껴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편하게 다가오는 예술이 좋고 그런 미술관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