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genia Aug 07. 2024

06. 에스파스 루이비통 베이징 ESPACE文化艺术空间

무료로 향유하는 패션과 예술의 만남


Espace Louis Vuitton Beijing

ESPACE北京文化艺术空间

에스파스 루이비통 베이징 문화예술공간

주소 : 北京朝阳区建国门外大街1号国贸商城南区西楼

전화 : +86 4006588555



상하이에 사는 지인이 종종 올리는 SNS 소식이 자주 내 눈길을 끈다. 상하이 퐁피두 센터, 구사미술관 등에서 칸딘스키, 뭉크, 마르크 샤갈, 에르제 땡땡 등등 현대미술의 거장들 작품을 수시로 관람하는 모습에 부러움 반 & 배아픔 반이다. 2002년 출장으로 처음 가본 상해 - 푸동과 와이탄의 화려함, 진마오타워 까마득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그 세련된 풍경이 기억에 꽂힐만큼 놀라웠다.


이후 2008년 출장 와서 만나본 베이징은, 올림픽 개최 직전이라 도시는 온통 공사판에, 상하이에 비해 덜 세련된 듯한 모습, 게다가 천안문 앞에서 인력거꾼에게 사기까지 당해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되돌아 왔다. 그러나 삶은 예측불허, 내가 베이징에 와서 살게 될 줄이야. 이제는 베이징만이 가진 매력, 특히 후통과 환, 사라진 성벽과 중축선, 더불어 개성 있는 미술관에 흠뻑 빠져 살고 있다. 하지만 현대 미술 및 외국 브랜드, 글로벌 도시라는 차원에서는 여전히 상해와 같은 문화적 접근에 대한 목마름이 존재한다.


그러던 와중에 상해엔 없고 북경에 있는 것을 발견! 바로 에스파스 루이비통이었다. 에스파스 루이비통은 현대 예술분야 아티스트 활동 지원하고,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컬렉션 소장품을 대중에 선보이는 루이비통 브랜드의 문화예술공간이다.



전세계 4번째 전시 공간, 베이징


에스파스 루이비통 문화예술공간은 현재 도쿄, 뮌헨, 베네치아, 베이징, 서울, 오사카에 설립되었으며, 루이 비통 재단(Foundation Louis Vuitton)이 후원하고 소유한 작품들을 순회 전시한다. 이곳은 루이비통 기업 브랜드의 이상에 맞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를 지원하며, 동시대 예술 작품의 창작을 장려하는 전시 공간이다. 전세계 여섯 곳의 에스파스 문화공간 중에 반가운 도시 서울도 있다.

(좌) 뮌헨  (중) 베네치아  (우) 서울 - 루이비통 홈페이지 참조
(좌) 도쿄  (우) 오사카 - 루이비통 홈페이지 참조


에스파스 베이징은 시내 중심 고층건물들이 모여 있는 금융 및 상업지구 궈마오(国贸) 한복판, 거대한 루이비통 매장 옆에 위치하며, 총 800m² 규모의 전시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루이비통 손수건 한 장 가지고 있지 않지만, 루이비통이 문화예술 부문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공개하고 공유한 이런 장소와 기회는 십분 활용할 의의가 있다. 그야말로 땡큐! 유명 패션 브랜드 기업이 무료로 제공해주는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는 기쁨, 아주 기꺼이 누려보고자 한다.

패션을 잘 몰라도, 구매여력은 없어도, 예쁜 색감과 디자인에 눈길이 간다. 난해함도 그저 즐기면 그만~


루이비통 매장 끝 쪽에 위치한 에스파스 문화공간. 고층 빌딩 가득한 도심 한 복판에 살짝 여유가 느껴지는 한 귀퉁이에 조용하고 여유 있는 녹색 잔디밭을 품은 공간이 나타난다.

어디선가 사들고 온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곳


1층으로 입장하여 2층으로 올라간다. 전시공간 입장 전에 루이비통 문화재단 소개 공간
이 공간은 캐나다 출신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 (Frank O. Gehry)가 설계하였다.




알베르토 쟈코메티 Alberto Giacometti 전시 (2021)

스위스의 조각가이자 화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 (1901~1966). 스위스 100프랑 화폐의 주인공. 가늘고 긴 인체표현이 특징이며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어두운 전시 공간 속에서 만난 8점의 낯선 길쭉이 청동조각들이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고 있어서 감동이 오래가는 전시였다.


청동 조각 작품들 외에도 친구 사진작가인 로타르가 찍은 자코메티의 사진들이 전시장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데, 상당히 인상적이고 작가를 왠지 더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더불어 전시실 안쪽에서 상영되고 있는 20분 남짓의 작가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 조금 더 작가와 작품에 몰입해보았다.


신디 셔먼 Cindy Sherman <On Stage/亮相> (2021)

1954년 생. 미국 여성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 자기 자신을 피사체로 사진을 찍는 셀프 포트레이트(Self Portrait)로 유명하다. 스스로 파격적으로 분장하여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 창조해낸다.


전시 공간이 크지는 않지만 작품에 어울리는 분위기로 탈바꿈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시는 어두운 조명에 짙은 오렌지 벽면이었다면, 신디 셔먼 전시는 녹색와 버건디의 대비되는 벽면으로 변신했다. 짧은 시간 동안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비현실의 세계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몽환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모두 다른 사람들같지만 놀랍게도 신디 셔먼 작가 본인이라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전시였다. 패션 모델, 영화의 한 장면, 태피스트리, 광대, 역사 속 인물 등으로 다양하게 변신할 뿐 아니라, 인물에 어울리는 촬영기법들도 다채로워서 '사진도 예술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보는 즐거움 뿐 아니라 제작 과정을 보며 지적 즐거움도 채울 수 있는 전시였다. 


프랑수와 모를레 & 헤수스 라파엘 소토 François Morellet & Jesús Rafael Soto <Optical and Movement> (2023)

1926년 생 프랑스 출생 네온아트와 기하학적 추상의 대가 프랑수와 모를레와, 1923년 생 베네수엘라 출신의 옵 & 키네틱 조각의 대가 헤수스 라파엘 소토의 전시. 두 예술가는 1956년에 만났으며 그들의 창조적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으로 기하학을 생각했다. 이들은 기하학, 빛, 움직임, 그리고 광학적 특성에 대한 추상적인 실험을 통해 전후 예술을 독특하게 구현하였으며, 점, 선, 면으로 단순화된 시각요소가 관람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상호작용하는지 탐구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고민과 탐구의 결과물을 감상하며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이 바로 동시대 미술의 핵심이 아닐까 한다. 영화나 드라마, 책을 통해 동시대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작품을 통해서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공감하려 노력하는 전시 관람의 30분 내지는 한 시간의 시간이 베이징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일부분이 되었다.


옵티컬(광학) 아트답게 특별한 시각 장치를 하지 않았지만 소재와 질감, 설치의 특성을 이용하여 관람자의 눈과 위치의 움직임에 따라 상당한 시각적 효과를 주었다.


특히, 36개의 블루 네온 튜브로 이루어진 L'avalanche (눈사태, 2006)와 파란색 PVC와 메탈로 촘촘히 이루어진 Penetrable BBL Bleu (통과할 수 있는 파랑, 1999-2007)이 전시장 한 가운데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평면에 유화로 그린 씨실 날실 무늬와 단순한 나무와 금속틀로 표현된 입체감에 눈을 자극한다.


알버트 올렌 Albert Oehlen  <Malerei 绘画> (2024)

1954년 생 독일 추상의 거장 알버트 올렌의 전시. 구상회화의 모든 규칙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제약을 벗어난 추상 회화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그의 색상과 물감 터치를 보면 마치 음악 떠올랐으며, 한 공간에 전시된 그림들 전체를 바라보면 경쾌한 느낌도 들었다. 




에스파스 루이비통 전시 공간에서 진행된 정식 전시는 아니었지만, 시선을 강탈했던 인상적인 광경이 있었다. 1929년 일본 설치미술가이며 땡땡이 문양 호박으로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 Kusama Yayoi와 루이비통의 콜라보 (2023)홍보하는 목적으로 루이비통 건물 앞쪽을 그녀의 디자인으로 전부 래핑해놓았다. 베이징의 경제 중심부인 궈마오国贸를 뒤덮은 거대한 땡땡이들은 그냥 길가던 사람들도 멈추게 하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패션 브랜드가 마련한 예술 공간을 즐긴 후, 그 여운을 조금 더 느끼고 싶어서 바로 옆 루이비통 매장과 연결되어 있는 2층 출구로 가보았다. 바로 연결된 통로 앞에 패션잡지로 유명한 보그로 꾸며진 테마 까페(Vogue Café)가 나타난다. 럭셔리한 전시를 무료로 감상했으니, 조금 비싼 커피를 마셔도 죄책감이 덜하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에스파스 루이비통도 방문해서 전시를 관람해본 적이 있는데, 사전 예약제로 이루어지는데다가 명품 매장을 통과해서 올라가야하고 공간도 협소했다. 멋진 전시를 만나는 즐거움에는 차이가 없었지만, 서울에 비하면 베이징의 에스파스 루이비통은 예약도 필요없이 지나다가 그냥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또한 한국 같으면 이런 시내 중심가 쇼핑센터 옆이라 엄청 붐빌텐데, 베이징에서는 주중 주말 상관없이 여유롭게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대륙의 인파도 아직까지는 이곳의 매력을 모르는 것 같다.


패션과 문화와 예술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조화이든지 상관없다. 하루쯤 잘 차려 입고 집 근처를 벗어나서 색다름을 느껴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편하게 다가오는 예술이 좋고 그런 미술관 또는 전시공간이 감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05. 민생현대미술관 民生现代美术馆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