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세상 읽기 01> 러시아 인형처럼1 리셋음악

리셋음악을 통하여 드러난 음악적 내러티브와 줄거리 해석

by 서유진

- 리셋음악으로 등장한 해리 닐슨 Harry Nilsson의 Gotta Get Up, 베토벤 Beethoven 피아노 협주곡 4번 3악장 Piano concerto no.4 - 3. Vivace(Rondo)




러시아 인형처럼 시즌 1의 줄거리

2019년 방영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러시아 인형처럼 시즌 1에 대한 이야기.


주인공 나디아는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타임루프를 겪으며 매번 36살의 생일파티로 돌아온다. 다시 태어나는 이유도 모른 채. 그러다 우연히 또 다른 남자 주인공 앨런 역시 같은 시각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러한 끝없는 죽음과 힘든 삶 속에서 결국 둘은 합심하여 벗어나고, 함께 행진하며 시즌 1이 마무리된다.

죽음은 쉽다, 힘든 것은 삶이다.




러시아 인형처럼 시즌 1의 "리셋 음악"

드라마 속 삶과 죽음의 굴레 속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음악이 있다. 통상 극 장르에서 사용되는 음악의 반복은 제작자의 신중한 의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실제 본 시리즈의 제작자이자 주연 배우 나타샤 리온 Latasha Lyonne*은 주인공들이 다시 태어날 때마다 나오는 음악을 일명 "리셋 음악(Reset song)"으로 칭하며 의미를 부여했다.


반복되는 음악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읽을지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읽힐 수 있지만, 러시아 인형처럼에서는 매번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상황적 특성에 따라, 상반되어 나타나는 주인공의 캐릭터를 음악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주인공 나디아의 리셋 음악해리 닐슨 Harry Nilsson의 Gotta Get Up, 남자 주인공 앨런의 리셋 음악베토벤 Beethoven 피아노 협주곡 4번 3악장 Piano concerto no.4-III. Vivace에 집중해 볼 것이다.




나디아의 리셋 음악; 해리 닐슨 Harry Nilsson의 Gotta Get Up

먼저 극 중 주인공 나디아가 36번째 생일의 화장실로 다시 태어날 때마다**등장하는 해리 닐슨 Harry Nilsson의 Gotta Get Up이다.



가사의 리듬의 상징성: 반복 속의 자유분방

아침이 밝았으니 다시 일어나라는 가사부터도 나름의 은유를 담고 있다. 반복되는 아침이 오면 일어나게 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루틴을 담은 가사. 여기에 더하여 본곡은 자유분방한 리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리듬적으로 약박 자리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팝송이라는 것. 전통적으로 음악은 "강, 약, 중강, 약"과 같은 첫 박과 셋째 박에 주요한 박이 오는 일정한 펄스(맥박: pulse)를 가진다. 이러한 정형된 리듬적 패턴은 현재에 와서는 많은 대중음악에서 뒤집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곡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음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본래 약박 자리인 2, 4박에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강박이 아닌 부수적인 2, 4박에 강세를 주는 형태를 반복적으로 취한 형태는, 음악의 분위기를 더욱 활기차고 고조되는 효과를 자아낸다.


이러한 본 음악의 가사와 정형되지 않은 리듬적 특징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나디아의 모습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가사의 내용을 통해 죽음 이후 삶의 시작을 알리는 역설적인 활기참을 보여준다.





남주인공 앨런의 리셋 음악;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3악장
Beethoven - Piano Concerto no. 4 - 3. Vivace(Rondo)


한편 또 다른 남주인공 엘런은 첫 죽음의 이유도 모른 채 다시 태어난다. 첫 죽음의 기억이 있는 주인공 나디아와 다른 지점이다. 이유 모르게 매번 다시 태어나지만 분명한 것은 매 삶마다 앨런은 강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태어날 때마다 매번 양치를 하며, 날아다니는 파리를 죽이고***, 성공 확언을 듣고 나서는 집을 나서는 매일의 루틴을 반복한다. 엘런의 리셋 음악으로 등장하는 것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3악장 Beethoven Piano Concerto No.4-III. Vivace이다.


론도 형식의 음악이 주는 상징성: 엄격한 반복

본 음악은 들으면 알겠지만 클래식 음악이다. 그중에서도 대략 유럽 문화권의 18세기 즈음에 해당하는 고전시대 음악인데, 고전시대의 클래식 음악은 엄격한 법칙을 따르고, 정해진 음악 어법이 있다는 점에서 대중음악보다 통제적이다. 예컨대 본 음악은 론도 형식으로 되어있다는 점에서 통제적인 클래식 음악 장르의 특성을 더욱 여실히 보여준다. 론도형식은 A-B-A-C-A와 같은 알파벳을 통해서도 나타낼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이야기- B, C -로 갔다가도 다시금 처음의 음악적 주제 -A- 로 끊임없이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는 음악 형식 중 하나이다. 이러한 회귀하는 음악적 규칙은 끊임없이 나타나는 죽음과 삶이라는 극적인 내용을 강화함과 동시에 통제적이고 정돈된 남주인공 엘런의 성정을 잘 나타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견되는 변화: 베토벤의 음악이 가지는 상징성

그러나 본 음악이 철저히 반복의 메시지만을 투영하는가? 에 대하여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하겠다. 이유는 바로 음악사에서 작곡가 베토벤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 베토벤이라는 작곡가는 음악사적으로 18세기 주류를 차지한 고전주의의 음악적 특징을 담은 하이든, 모차르트와는 분명히 다른 측면을 보인다. 엄격한 형식과 어법을 강조한 이들의 고전주의와는 달리, 베토벤은 분명한 형식과 어법 속에서도 변화의 특성을 보였던 상징적인 작곡가로서, 형식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낭만 화성의 어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여는 인물이다. 이러한 베토벤의 음악사적 위치를 통하여, 본 넷플릭스 시리즈의 론도는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도 앨런이 어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것인가, 하는 기대감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감은 엄격한 형식적 특성을 지키는 동시대 작곡가 모차르트의 작품이라면 일으키지 못했을 상징성이다.




음악적 특징을 통하여 강화되는 주인공의 캐릭터


맥을 뒤집는 자유분방함의 나디아와 론도 형식의 통제성을 가진 앨런

두 음악을 비교해 본다면, 모두 반복과 변화라는 양면을 가지고 있지만, 나디아의 리셋음악은 반복의 전복을 초점으로 한 음악을 주제로 하는 한 면, 앨런의 리셋음악은 엄격한 반복이 형식이 되는 음악을 선정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다. 이러한 두 음악의 다름은 주인공의 다른 특성과도 부합한다는 점에서, 캐릭터성을 강화시켜주고 있다.



요컨대 리셋음악은 본질적으로, 죽음과 삶을 경계 짓는 음악인 동시에, 극 속 캐릭터의 속성을 강화시켜 주는 장치이다. 본 넷플릭스 드라마 <러시아 인형처럼>의 리셋음악은 약박이 강조되는 리듬적 속성, 그리고 론도라는 클래식 음악의 형식을 통하여 강화되는 캐릭터성을 보여준다. 이렇게나 다른 두 주인공이 어떻게 삶과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는지를 보는 것 또한 작품의 묘미이다.





러시아 인형처럼 시즌 1 결말과 의미


나디아와 앨런, 자신들이 타임루프를 겪는 이유에 대하여 사족을 붙이며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를 반복한다. 그러다 답은 그들이 서로를 돕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타임루프를 멈출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타임루프를 멈춘 후 주인공들은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함께 행진한다.


함께 홀로 서는 연대, 그리고 치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온전한 자신을 찾은 둘의 모습을 보면, 마지막 장면의 행진을 단순한 환호가 아닌, 사랑과 연대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두 인물의 리셋음악이 질적으로 다른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며 만나는 우리는 아주 많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고통과 트라우마를 만나고, 자신의 본질을 끝없이 묻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속의 수많은 인형이 합쳐 하나의 큰 인형이 되듯, 셀 수 없이 많고 작으면서도 거대한 절망을 맞이하더라도, 서로를 살펴보고 각자의 아픔을 나누는 과정을 통하여 진정한 자아를 들여다보고 치유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함께 홀로 서기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타인과 연대가 이 작품이 내보이고자 하는 메시지 아니었을까?


온전한 홀로 서기 과정 속에서, 함께 걷는 타인과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 더불어 타인을 통해 나를 보고, 나를 통해 타인을 보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치유된 과거를 놓아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시즌 2의 결말이 궁금하다면?”

: 리스트 사랑의 꿈과 장면을 통해 보는 <러시아 인형처럼 2> 결말 해석

https://brunch.co.kr/@eugeniaa/90



“시즌 1 엔딩 크레딧 음악과 그에 담긴 상징적 의미가 궁금하다면?”

http://brunch.co.kr/@eugeniaa/62






* 나타샤 라온은 극 중 나디아 역의 배우이자 제작자이다. 실제 어린 시절 마약 중독으로 인해 수술을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경험이 있던 나타샤 라온에게, 죽음의 의미는 사뭇 다를 것이다. 실제 임사경험을 한 사람이 삶을 완전히 새로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정말 흔하니까.
** 나디아가 매번 다시 태어나는 화장실의 문고리가 총으로 되어있고, 방아쇠를 당기면 리셋되는 힘든 삶이 기다린다.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장치.
*** 학부시절 단기 교환 학생을 다녀와 다른 국적의 친구들을 사귄 적이 있는데, 그때 타국적 학생들이 벌레를 대하는 태도가 충격이었다. 한국 학생이 날파리를 잡았는데, 그는 그런 한국 학생의 모습을 보며 “Let it be, Let it in, Let it go” 읊조렸다. 옆에 있던 체코 학생도 그에 동조했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한국 학생들 뿐이었다. 파리 같은 미물도 생명이니 그냥 두라는 것이었다. 그런 점을 비추어 보아 그들의 문화권에서는 앨런이 파리를 잡는 행동은 그의 강박적이고 통제된 성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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