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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경 Sep 08. 2021

첫 만남, 뭔가 잘못됐다  #2

무지의 대가는 컸다, 고차원 반성일기


단지 친구가 필요할 것 같아서



찬바람이 불던 어느 날 밤 유독 퇴근이 늦던 동생이 네모 난상자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호기심에 열어보니 너무나 회색빛의 작은 새끼 강아지가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당장이라도 품에 안고 쓰다듬고 싶었지만, 가슴 한 켠에는 걱정스러운 감정이 동시에 생겼습니다.


이미 저지른 일. 우리는 이 강아지의 이름을 '뚜뚜'라 짓고 모든 사랑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행복한 시간이 오래지 않아 끝났습니다. 이 조그만 강아지는 때때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며 희한한 소리를 내었습니다. 이른바 '똥꼬 스키'에도 놀라 병원 응급실을 찾았던 우리 자매는 뚜렷한 병명을 알 수 없는 상황이 견딜 수 없이 초조하고 불안한 한편, 강남 동물병원의 후들후들한 병원비에 탈탈 털리는 주머니 사정에 시름도 함께 깊어졌습니다.


훗날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식도와 나란히 위치한 숨구멍이 매우 좁아 '쿠싱증후군'처럼 증상을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더 예쁘고, 더 예쁜 강아지를 원하는 나를 비롯한 인간의 욕심이 만든 유전병이었던 셈이지요.




우리의 첫 만남은 매우 비정상적이었습니다.


단순하게도 뚜뚜의 친구를 만들어줘야겠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입양을 일사천리로 진행했습니다. 동생이 데려온 펫 샵에서 보내준 여러 장의 사진 중에 한 마리를 지목했고, 곧바로 봉고차로 배달받는 괴이한 만남이었습니다. 뚱이에게 시선이 갔던 것은 단지 불쌍한 눈이 밟혀서일 뿐, 평생 가족을 만나기 위한 일말의 고민도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답답한 펫 샵 케이지에서 새 주인을 만나 함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이동해도 낯설었을 판에 난데없이 봉고차에 실려 처음 본 사람과 동거를 시작한 뚱이의 충격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컸을 테죠. 여기에 엄마 품에 하루 종일 안겨있어도 모자랄 어린 새끼가 적막한 원룸에 홀로 남겨졌으니 얼마나 두려웠을지 짐작하기도 힘듭니다.


이 때문인지 뚱이와의 동거 생활은 전쟁과도 같았습니다. 문제 하나를 겨우 해결했다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해결됐다 싶은 문제들이 다시 터지는 무한 반복이었죠.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TV에서 보던 동물 예능에선 똑똑한 강아지들이 수두룩 하던데 우린 왜 이렇게 처절한 것일까. 배변 실수, 분리불안, 대낮 산책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습니다. ‘이만큼 살았으면 알아들을 때도 되지 않았니?’ 원망스럽기만 하지만 잔뜩 기죽은 모습에 또다시 사르르 녹습니다.


어찌 보면 우린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릅니다. 프리랜서 3년 차,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입니다. 강아지들이 가장 좋아하는 주인은 백수라던데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습니다.  날 슬프게도, 웃게도 만드는 소중한 존재. 뚱이의 대답을 한 번만 들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나를, 그래도 사랑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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