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와 하는 차 이야기는 “홍차” 이다. 아무래도 우롱차 이야기로 차 이야기를 먼저 했기 때문에 바로 그 다음 차 이야기는 역시 홍차 이야기로 이어져 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홍차와 우롱차는 차의 역사에 있어서 떼어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식 분류로는 우롱차는 “Wolong” 이라 하고, 홍차는 “Black Tea” 라 하긴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는 그 구분이 희미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가 홍차 종류 중에서도 가끔씩 들을 수 있는 “랍상 소총” 때문인데, 이 랍상 소총의 기원은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보통 중국에서는 정산소총, 입산소총이라 한다.) 홍차의 여러 기원설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랍상 소총이 생긴 설화와 관련이 있는 것인데,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청나라의 군인들이 (어떤 설화에는 지역 군벌 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어느날 차 농사를 짓던 동목촌이라는 마을을 습격했다. 군인들이 마을에 쳐들어 왔다는 소식에 놀란 사람들은 찻잎들을 놓고 산으로 도망을 쳤는데, 군인들이 마을을 떠난 며칠 후, 사람들이 돌아와 찻잎을 보니 다 산화가 되었는지 갈변되고 거뭇한 찻잎만 있다 했다. 버릴려고 했으나 버리기는 웬지 아까워 그냥 한번 더 덖을까? 란 생각에 소나무에서 솔잎을 따다 훈연하여 덖은 것이 이 정산소총이 되었다고 하는 설이다.
찻잎의 산화, 그렇다. 찻잎의 산화는 지난 우롱차 이야기에서 언급했듯, 우롱차와 홍차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단, 우롱차는 완전히 산화가 안된 것을 쇄청하여 효소를 다 날려버린 반 발효상태를 의미하고, 홍차는 여기서 완전 산화 상태를 쇄청하여 덖으면 된다. 이때, 홍차는 산화 상태에서 최대한 공기중의 효모나 잡균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공기 중의 효모나 잡균이 들어간 순간 그 시점부터는 흑차와 보이차의 단계로 가게 된다.) “이게 구분이 됩니까?” 라는 질문에 간단한 답을 하자면, 구분이 된다라는 것이 놀라운 점이다. 우롱차를 포함한 반발효차는 황토색과 갈색 사이의 색을 내주며, 홍차는 적갈색 내지 고동색의 색을, 발효가 충분히 된 보이차, 흑차류는 커피의 고동색보다도 더 어두운 느낌의 고동색을 내며, 쓴향 사이에 살짝 신 향이 풍겨 오는 것이 포인트기 때문이다.
홍차 이야기에 대해 어느정도 한 입장에서 첫번째 홍차를 어떤 것으로 할 지 좀 고민이 컸다. 다행히도 지인분께서 홍차 리뷰를 할거라면 이거를 몇개 가져가라며 몇개 추천해주신 것도 있었다. 그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리뷰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풀기 좋은 브랜드를 골라서 이야기하는 것 + 한국에서 구하기 쉬운 것으로 리뷰를 시작하는게 좋을 거 같아서 고른 브랜드는, 아마드 (AHMAD) 이다.
아마드, 홍차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트와이닝, 립톤과 함께 익숙한 영국 홍차 브랜드이지만 이상한 느낌이 들 것이다. “브랜드 이름이 영국보다는 무슨 아랍 브랜드 같다” 라는 것인데, 정확히 본 것이다. 실제로 아마드는 “아흐마드” 라는 아랍식 이름에서 따왔고, 어원상으로는 “무하마드”와 그 어원은 같다. 그렇다. 이 아마드를 만든 사람은 아랍쪽 사람이다. 라힘 아프샤르, 아마드 티의 창립자이지만 원래 그는 이란에서 차 무역을 했던 사람이다. 그의 집안인 아프샤르 가문이 대대로 홍차나 녹차를 블렌딩하는 가문이라 하니 말 그대로 가업을 (이 가업은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있다.) 이어서 일을 하게 된 것인데,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사건이 그에게 터져버린다. 1979년의 2월, 입헌군주제였던 팔라비 왕조의 이란에서 이슬람 신정주의 반란이 발생했다. 반란은 2달만에 성공하여 혁명이 되었고,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과도정부가 세워진 그 해 12월, 우리가 아는 그 “호메이니 신정주의 이슬람 공화국” 이라는 형태로 이란의 국가 체계가 바뀌어버린다.
문제는… 이놈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샤리아 율법을 헌법으로 채택한 탓에 소위 “자본가”는 일종의 “이자를 받지 말라는 꾸란과 샤리아의 계율을 어기는 놈들”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라힘 아프샤르를 포함한 아프샤르 가문은 망명을 택한다. 더 큰 문제는 망명은 해야 하는데, 미국으로 가기엔 이미 이란이 호메이니 체제로 바뀌면서 “반미-친소련”을 내세우며 (물론 이란-이라크 간 전쟁 때 소련이 이라크 편을 들어버려 그거때문에 잠시 틀어진 적은 있었지만) 미국과의 단교를 선언해버린 터라, 이란에서 미국으로 망명을 가기로 한 사람들에게도 미국은 그 문을 잘 열어주지 않았다는 문제가 발생해버렸다. 라힘은 결국 미국이 아닌 그나마 망명이 쉬웠던, 영국으로 망명한다.
영국, 런던으로 도망쳐서 와보니 런던은 다행히도 본인의 원래 가업이었던 홍차를 다루기가 테헤란보다도 더 좋았던 곳이었다. 영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홍차는 일종의 “필수 요소”와도 같은 것이 아닌가. 그는 1986년 런던에 본격적인 홍차 사업을 시작했다. 그래도 아랍계라는 자신의 뿌리를 버리기는 싫었는지, 처음엔 회사 이름을 ”카비르”라 지었다가, 후에 “아흐마드” 에서 딴 “AHMAD”로 지었다. 그리고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 아마드 홍차다.
개인적으로 아마드 티는 여러 종류의 블렌딩 티나 홍차 배리에이션을 팔고 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좋아하는 편이다. 뭐 그렇다고 얼그레이를 안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드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는 트와이닝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만큼이나 홍차의 기본에 굉장히 충실하면서도 인도네시아산 홍차잎과 스리랑카산 실론 티의 비중이 높아서 (정확하게는 인도네시아-스리랑카 베이스에 케냐산 찻잎이 살짝 섞여있다 한다.) 우리가 생각한 그 “홍차향”을 굉장히 직접적으로 내준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거, 트와이닝보다 아마드가 더 싸다.)
개인적으로 나는 홍차는 그냥 스트레이트로 3번 우려서만 먹는편이지만, 어떻게 홍차를 마시건 자신만의 방법이 있는 법이다.
홍차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서 우유를 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밀크티) 얼음과 설탕시럽등을 넣어서 아이스티로 만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스트레이트로 먹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스트레이트로 2번 내지 3번 정도만 우려서 마시는 사람이라서 이걸 굉장히 쓰게 먹는 편이다. 물론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보다는 얼그레이가 밀크티나 아이스티를 내는 데 좀 더 편한 것은 맞다. 블렌딩 할 때 베르가못 향유를 살짝 넣기 때문에 설탕, 우유와의 호환성이 괜찮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도 뭔가 한국 사람들에게는 브렉퍼스트 밀크티도 괜찮다고 필자가 과감하게 권하는 이유는 얼그레이보다 브렉퍼스트의 장점이 “구수한 맛”이 좀 더 강하기 때문인데, 우유에 섞으면 얼그레이의 베르가못 향에서 나는 그 튀는 신향이 나지 않고 굉장히 고소하면서도 홍차 향 사이에 크리미한 향이 입혀지는 정도이기 때문에, 신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브렉퍼스트 밀크티도 추천을 하는 편이다.
동유럽권에 오리온 초코파이가 수출되는데, 이쪽 사람들은 초코파이에 홍차를 마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초코파이 대신 카스타드인게 아쉽다.
아마드는 물론 영국 홍차이긴 하지만 이 아마드 홍차를 유독 좋아하는 나라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중앙아시아 권이긴 하다. 아무래도 아랍계 사람이 만들어서인지 몰라도 블렌딩의 무게감이 그쪽 사람들 취향에 잘 맞게 블렌딩을 한 감이 있고, 특히 브렉퍼스트나 얼그레이나 소위 “바디가 강한” 편이기 때문에 반대로 단 간식류와 함께 먹을 때 시너지가 굉장히 좋은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것은 이태원 터키음식점에서 파는 로쿰 포함 터키식 과자류를 추천한다. 그냥 먹기엔 상당히 달아서 너무 단 음식에 과민반응이 오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홍차나 에스프레소가 굉장한 중화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들의 고향을 경제적인 자유때문에 버리고 떠나 타향살이를 해야 했던 아프샤르 가문의 한(?)이 아랍쪽 간식과 묘한 궁합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살짝 해본다.
<Tasting Note> 감미 - 없음 /산미 - 없음 /쓴맛 - 강함 /바디 - 강함 노트 키워드 - 홍차 (정말 홍차향과 강한 탄닌기) 페어링 - 로쿰을 포함한 터키식 과자, 설탕이 많이 들어간 파이류 및 쿠키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