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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HSonG Aug 12. 2022

포스트 아포칼립스에도 살아남을(것만 같은) 조니워커

조니워커 블랙라벨은 그 참혹한 미래에도 살아 남을것인가?

조니워커 블랙라벨은 특이한 것이 하나 있다. 유독 이상하게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주제인 영화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영화 [반도] 에서 서대위(구교환씨가 배역을 맡은)가 마시는 술도 조니워커 블랙라벨이고, [블레이드러너 2049]에서 K와 데커드가 조우하던 장면에서 라이언 고슬링과 해리슨 포드가 들이키는 것은 역시 조니워커 블랙라벨이었다. 그러다 보니 진짜 조니워커 블랙라벨만은 “지구가 멸망상태로 가도 살아남을 것 같은” 특이한 인상을 주게 한다. (물론 그거야 디아지오사의 PPL 때문도 있겠지만) 그럴만도 한 근거는 있다. 스카치, 아이리시, 재패니즈, 아메리칸(버번-테네시) 위스키를 다 합쳤을때 여전히 판매량이나 소비량에서 조니워커는 압도적으로 판매량이 많다. 탱커레이 진 같은 인기 상품이 다른 주종에 있으나 디아지오라는 다국적 주류기업을 아직도 지탱하게 하는 것은 역시 조니워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조니워커 블랙을 시음하면서 PPL의 의미에서가 아닌 진지한 의미로 “조니워커는 인류 멸망 직전이 오는 때, 혹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가까운 상황이 와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는 부제를 붙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에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 변화와 기후 재난” 등과도 맞닿아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24도의 각도, 12년 숙성. 그래서 "쪼-니 워카, 블랙롸벨! (영화 "반도" 중에서)"

일단 본 주제로 들어가기 전에 조니워커 블랙라벨을 시음해보자. 조니워커, 너무 유명한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이다. 물론 조니워커라고 해서 이걸 만든 사람은 조니워커는 아니고, 그 후대인 알렉산더 워커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서 아들대인 알렉산더 워커 2세가 키운거긴 하지만, 더 정확하게 이 워커 가문을 일으킨 것이 알렉산더 워커의 아버지인 존 워커이고 그 존 워커를 기리기 위한 이름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물론 존 워커도 이거에 기여를 아예 안한 것은 아니고, 14살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물려주신 농장을 팔고 대신 스코틀랜드 칼마녹에 식료품점을 차려서 홍차와 위스키를 팔다가, 직접 섞어서 재가공한 블렌드 홍차를 만들어 팔다가, 아예 블렌드 위스키를 만들어 팔면서 기업을 일궜던 것이기 때문이다. (후에도 다시 다루긴 하지만) 당시 영국은 소위 “위스키 제재” 조치 중 하나로 (세금도 당연히 가혹하게 매겼지만) 몰트로 만든건 몰트끼리만, 그레인(보리 맥아 말고 다른 거로 양조한 것) 은 그레인끼리만 섞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섞어팔 수 있는 주종의 제한은 있었긴 하나, 그래도 그 제한된 주종으로도 잘 블렌딩을 했는지 존 워커의 가게는 영국에서 나름 잘 나갔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혹자들은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야 말로 스카치 위스키의 “근본” 이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에 다시 이야기한다.)

조니워커의 영국 왕실인증 마크가 붙은건 조지5세때, 1934년 이후라 한다.

우리가 아는 조니 워커가 나온 것은 결국 영국이 여러 이유로 위스키에 대한 제재를 거진 다 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각종 제재들이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원주 양조 기술의 발전과 증류 기술의 발전, 그리고 위스키의 고급화를 이끌어 냈다는 역설이 있다.) 드디어 몰트와 그레인을 섞을 수 있게 영국 의회가 칙령 발표를 한 이후였다. (1860년 증류주법) 물론 이렇게 해서 바로 최초의 블렌디드 스카치를 만든 것은 앤드류 어셔라는 사람이었으나, 이걸 본격적으로 대중화 시킨 것은 알렉산더 워커 부자였던 것이다. (간혹 위스키 관련 책에서 알렉산더 워커가 최초의 블렌디드 스카치를 만들었다는 서술이 있는 책이 있다면 그건 걸르라는 의미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24도 각도의 라벨링과 컬러 분류도 그 이후에 차근차근히 생겼으며, 직접 양조장을 사서 베이스를 자체 조달하는 (이게 싱글 몰트류를 취급하는 증류소가 주였던 지라, 이걸 보통 “키 몰트” 라고 부른다) 시스템도 후에 갖춰진 거라 보면 된다.

신기하게도 조니 워커는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위스키”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디아지오에서 조니워커 증류소 방문자 투어 등을 하면서 전시하는 것 중에 “영국 상선 화물 선적 기록”이 있는데, 당연히 정식 수출은 아니고 1920년에 (인천항이나 군산항에 조니워커 박스를 보낸)선적 기록이 있는 거로 봐서는 일본제국의 한일합방 전후에 영국의 조차지와 당시 경성의 호텔 바 내지 명동과 충무로 등지에 있던 일본식 “모던-빠”에 공급되었거나 (일제강점기 명동과 충무로는 일본인들이 주로 살던 동네였다.) 당시 영국 외교관 내지 유럽 외교관들에게 공급된 것으로 보이는 기록이다. 그리고 이것을 당시 구한말때는 “유사길”이라는 특이한 독주라 불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당시 경성의 모던-보이들도 조니워커의 존재는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시인 박인환 선생은 유독 유사길을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위스키가 조니 워커 블랙라벨이었으며, 2차대전이 끝난 후에는 미군정을 통해 직접수입이 되는데, 그 때도 박인환 선생은 조니 워커를 쌓아놓고 마셨다는 설이 있고, 그의 목숨을 앗아가게 한 사건마저 “이상의 기일을 기념한다” 라면서 위스키를 폭음하고 술병으로 앓다가 사망한 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인환 선생의 장례때는 염을 할때 조니 워커 블랙 라벨을 입에 넣어주고, 조니워커 병을 같이 관에 넣고 묻어줬다 하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시인 박인환 선생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 아무리 위스키를 좋아해도 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반도에서도 익숙한 위스키가 되어버린 조니워커 블랙 라벨. 왜, 사람들이 이걸 유독 좋아하는 걸까? 라는 호기심에 동네 편의점에서 구하게 된 조니워커 블랙 200ml 병을 과감하게 열었을 때, 느껴오는 향은 나에게는 신기한 향이었다. “엥? 왜 구두냄새가 나는 거지?” 소위 이걸 “피트향” 이라고 하는데, 보통 보리에 맥아를 틔우고 말릴 때, 좀 더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 피트, 즉 토탄이라는 흙을 사용한다. 즉 퇴적이 아직 되지 않아 석탄이 되기 전의 상태에 가깝다 하면 쉬운 설명이 될 것 같은데, 석탄이 되기 전의 상태라서 당연히 석탄 비슷하게 쓸 수 있다. 문제는 이걸 써서 훈연을 하는 건 좋지만 이 토탄 특유의 냄새가 그대로 맥아에 배면서 사람에 따라서는 역한 향 내지 가죽향 비스무리한 향을 안겨주게 되는데, 이게 바로 그 “피트감” 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했던 것은 처음에는 이게 “당혹감”으로 다가오다가도, 니트나 온더락으로 시음을 하는 순간 이 피트향을 이겨내게 되면서 뒤에 깔리는 향기의 감미로움이 기분이 좋았다는 사실이다. 당귀나 황기 등의 약초향, 그리고 아주 뒤에 남는 곡물이나 과일의 향기등이 위스키는 “향기를 먹는 것” 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체감시켜주게 하기 때문이다.

토닉워터 내지 레몬 피즈(슈웹스 등의 영국식 탄산음료는 피즈라 한다), 조니워커를 넣으면 철저히 브리티시 하이볼이 된다.

유독 디아지오 코리아는 조니 워커 시리즈를 판촉할 때 “하이볼”을 강조한다. 아무래도 산토리빔코리아가 짐빔이나 메이커스 마크 등의 버번 위스키를 하이볼로 섞어 팔게해서 재미를 본 것을 벤치마킹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아메리칸 하이볼보다도 더 “근본”이 있는 하이볼이 브리티시 하이볼이기 때문이다. (인공 탄산수가 처음 등장한 곳은 영국이기 때문) 솔직히 섞는 음료는 어떤 탄산수, 탄산음료라도 상관이 없다. 영국 사람들 기준으로는 조니워커에 스프라이트 내지 세븐업, 슈웹스 레몬피즈를 섞는 것이 기본으로 치기 때문에 굳이 비싼 탄산수나 탄산음료를 섞을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기본 레시피가 제일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그냥 조니워커 블랙 라벨에 스프라이트 내지 세븐업 레몬만 섞어도 굉장히 고급스러우면서 위스키의 향과 소다의 레몬향이 충돌하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평론가들은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를 일컬어 "스코틀랜드의 모든 것을 몸에 넣는 것" 이라 한다. 그만큼 물, 곡류, 토탄과 참나무가 다 중요하다는 것이라는 의미.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조니워커가 과연 “인류 멸망 전후, 혹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도 살아남을 것인가?” 라는 명제에 관한 이야기로 시음기를 마치려 한다. 바로 최근에 일어난 영국의 최악의 폭염 때문이다. 런던에만 무려 40도의 폭염을 자랑했다는 영국 폭염으로 인해 난리가 난 것은 주류업체들이었다. 오죽하면 영국 정부와 의회 내에서도 위스키 증류소에도 탄소 중립이 필요하다​ 라고 몇 년 전부터 이야기하던 주제가 올해 폭염을 기점으로 아예 “뜨거운 감자”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왜냐면, 올해 기록적인 폭염은 스코틀랜드 지역에도 영향을 주긴 주었기 때문이고 (일단 스코틀랜드쪽과 위도가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보다 아래인데, 스코틀랜드보다 위쪽인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의 만년설과 동토가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는 관측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위스키의 증발량, 즉 엔젤스 셰어가 증가하면서” 벌어지는 생산량의 감소와 갑작스러운 증발량 변화로 인한 맛 변화 등을 우려하게 되었다는 ​이다. 게다가 영국의 증류소들은 아직도 “전통 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증류기 가열 내지 토탄 훈제에 천연가스가 아닌 아직도 석탄이나 등유 등의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곳이 다소 있다는 것이 영국 정부에게도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그런 환경문제 때문인지 글렌피딕,발베니를 만드는 윌리엄그랜트앤선즈가 아예 대놓고 “증류소 탄소감축”을 이야기하면서 친환경 (수소연료전지 기반의) 운반 트럭 설비 시설 내지 위스키 주조후 폐기 매쉬 (곡물 찌꺼기) 를 이용한 바이오가스 정제 시설개발에 영국쪽 공과대학들과 협력을 하는 ​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디아지오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포장” 을 선언하면서 별도의 주류 종이 박스 포장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일본의 팩 사케 마냥 종이재질로 된 멸균팩을 쓴 “플라스틱을 전혀 안 쓴” 팩 위스키를 실험차 개발​했다는 발표도 했고.)

의외로 최고의 페어링이었던 프링글스. 그러나 이 프링글스야말로 처치곤란 쓰레기 no.1이다. 켈로그에서 이 프링글스 포장을 쉽게 폐기가능하게 바꾸겠다는데, 언제 될지는...

오래 전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위스키를 “생명의 물” 이라 하는 “uisge beatha” 라 불렀다 한다. 술에 그런 표현을 부르는게 지금 와서는 쌩뚱맞지만, 진짜 기절한 사람에게 독주를 먹이는 게 고대 응급처치 방법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유독 스코틀랜드 위스키는 “물의 깨끗함” 을 강조하는 것이 크기 때문이다. (이거때문에 주류업체들 내지 증류소들끼리 싸워버린 에피소드가 왕왕 나왔을 정도이다.) 물과 땅의 소산물들 (보리, 토탄, 참나무, 밀과 호밀 등) 이 온전하게 있어야 좋은 위스키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사실이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주류업계들의 이런 고민은 기후 재난이 (가뜩이나 서울도 몇일 전 강남 홍수로 인해) 현실로 체감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중요한 고민거리가 될 듯 하다.


<Tasting Note>

감미 - 약간 / 산미 - 약간 / 쓴맛 - 강함 / 바디 - 강함 (탄닌감과 피트향)

노트 키워드 : 자두 (내지는 푸룬), 가죽 (진짜 구두냄새 같은 무언가), 감잎 (혹은 보이차 같이 탄닌기가 센)

페어링 - 의외로 감자튀김, 감자칩 등의 감자과자, 혹은 프링글스, 특히 프링글스 오리지날과 무조건 먹어볼 것. 감자의 향을 더 폭발시키면서 피트-스모키향이 섞이면서 바베큐 내지 스테이크 향 같은 향이 실제로 먹으면서 풍겨옴. 자가비나 레이즈, 농심 포테토칩 등으로도 어느정도 가능.


<Information>

제품명 - 조니워커 블랙라벨 / 제조사 - 디아지오 (디아지오코리아) / 분류 -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 (최소 12년 숙성 이상)

주재료 : 몰트+그레인 위스키 (혼합비 미공개, 보리맥아만 카듀 증류소 외) / 부수재료 : 토탄 (훈연가향용)

알콜 함량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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