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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나 Sep 24. 2018

저 는 원 래 아 침 밥 안 먹어 요

매거진 나이이즘 VOL.1


얼마 전 시가 식구들과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일하는 시어머니 덕분에 무료로 묵을 수 있는 숙소가 생겨 추진된 여행이었다. 간사이공항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아마가사키역에 위치한 숙소는 퀴퀴한 다다미향이 풍기는 작고 예쁜 복층 구조의 전통 가옥으로, 살림살이에 필요한 모든 게 갖춰져 있었다. 여행 직전까지 일에 시달렸던 우리 부부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든 것까지는 참 좋았는데,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번쩍 눈이 떠졌다. 1층으로 내려가 보니 어머니가 주방에서 홀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지난밤까지만 해도 존재조차 몰랐던 밥솥의 추가 요란하게 돌아갔다. 나는 프로그래밍 된 로봇처럼 자연스레 상을 닦고 수저를 놓았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했다. 하루도 참선을 빼먹지 않는 수도승처럼, 바다 건너 타지에서도 쌀을 씻고 반찬을 만들었다. 식사 후 설거지는 줄곧 남편과 그의 동생이 번갈아 했는데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싱크대 앞에 선 어머니가 씻고 나오는 나를 향해 결심한 듯 말을 건넸다. “얘야, 이 버튼 누르면 뜨거운 물로 설거지할 수 있단다. 좋지?” 어머니 얼굴에 핀 환한 미소의 의미를 충분히 짐작했지만, 나는 여행지에서까지 설거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네, 좋네요.” 대답과 동시에 2층 방으로 올라가는 등 뒤가 서늘했다. 고작 설거지 하나 안 했다는 이유로 느껴지는 이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은 왜 항상 나의 몫인가.



나는 이십 대 후반에 결혼했다. 고약하고 못된 성미의 시어머니를 모시며 온갖 시집살이를 당하는 엄마를 보고 자랐기에 한 번도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비교적 일찍 결혼한 것은 취향과 가치관이 꼭 맞는 남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7년을 만났는데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어 그와의 결혼은 인생의 당연한 순리처럼 느껴졌다. 당당하게 한집에서 살려면, 평생 헤어지지 않으려면 결혼을 하는 게 여러모로 우리 관계에 더 이득일 것 같았다. 내게 결혼은 오직 그런 의미였다. 우리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둘의 힘으로 미약한 살림을 꾸렸고, 그것으로 가정 내에서 나와 남편의 위치는 동등할 것이라 믿었다. 적어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남다를 것 같았던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남들처럼 시가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날이 시작이다. 전에 없던 불합리와 죄책감이 내 삶을 좀먹기 시작한 것이. 최근 몇 년간 내게 나이 드는 것은 한국 사회가 결혼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편협한지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시어머니는 왜 나의 전화를 받지 못하면 섭섭한지, 얼굴도 모르는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왜 내가 일을 빼야 하는지, 홀로 제 앞가림 잘하는 성인 남성의 식사 여부를 왜 나에게 묻는지, 나는 먹지도 않을 과일을 왜 깎아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왜?’라는 물음이 가득한 신혼. 야근이 적은 남편보다 밥 먹듯 밤을 새우는 내가 훨씬 더 바쁜 직업인임에도 불구하고 살림을, 가족의 식사를,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일은 자꾸 내 쪽으로 기울었다. 어느새 일하고, 마음껏 노는 데 사용했던 에너지는 조금씩 처지를 한탄하는 데 사용됐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을 뿐인데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나의 삶은 계속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렀다.


집 바깥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나누던 친구들은 나의 꿈보다 출산 계획을 더 자주 물었고 취재가 늦어질 때면 동행한 동료들이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를 걱정했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가는 날엔 “결혼한 여자가 옷을 이렇게 입어도 돼요?”라는 성희롱을 농담처럼 들어야 했다.그리고 대화에 공백이 생길 때면 사람들은 내게 공통적인 질문을 던졌다. “요리 잘해요? 남편 아침밥은 얼마나 차려 줘요?”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16세기에 태어난 위대한 재능을 가진 여성은 틀림없이 미치거나 총으로 자살하거나 또는 마을 변두리의 외딴 오두막에서 절반은 마녀, 절반은 요술쟁이로 공포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 일생을 끝마쳤을 것’이라 했다. 조선시대를 필두로 근현대사회를 지나는 동안 한국에서 태어난 여성은 틀림없이 식구들의 밥을 짓다가 일생을 끝마쳤을 것이다. 부엌에서 사그라들어간 그녀들의 위대한 재능이 떠올라 분하다.


오사카에서 귀국한 며칠 뒤에 생일을 맞았다. 미역국 재료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 마음이 분주한 남편에게 일찍 취재가 있으니 아침 식사는 생략하자고 했다. 얼마 후 엄마와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말했다. “생일 축하한다. 미역국도 못 먹어서 어쩌니.” 두 어머니의 확신과 달리 남편은 결혼 후 한 번도 빠짐없이 생일상을 차려줬다. 엄마이기 이전에, 사회인으로서 인정받는 두 여성을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나는 앞으로 이 허울뿐인 죄책감과 책임감에서 벗어나 아내와 며느리가 아닌 나로 나이 들어가려 한다. 지금껏 오조오억 번 들었던 그 질문들을 누군가 또 다시 내게 한다면, 이제 우물쭈물하지 않고 당당히 말해야지. 

저기요, 저는 원래 아침밥 안 먹고요. 살림은 남편이 더 잘해요.


text 나이이즘 에디터 성31 

illustration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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