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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뉴 Nov 28. 2024

잃어버린 아니, 잊어버린 거였다

잃기 전에 잊지 말자






 잊어버린 것을 잃어버린 것으로 착각하는 순간이 있다. '잃어버리다'는 영영 내게서 떠나간 듯 느껴진다면, '잊어버리다'는 곁에 있었지만 알아채지 못한 느낌이다. 때문에 '잊어버리다'는 '잃어버리다'보다 안도감을 준다.




 통화를 하면서 '내 휴대폰 어디 갔지' 하는 사소한 것부터 언젠가 사두고 창고에 깊숙이 넣어놨던 똑같은 물건을 구매하는 일까지 그 형태와 경중도 다양하다.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나는 정도면 다행이지만, 내 안 깊숙이 파고드는 사건이라면 꽤나 곤란해진다.




 가장 최근에 이런 경험을 한 건 찍어뒀던 사진을 정리했을 때다. 나는 보통 휴대폰 앨범에 사진이 어느 정도 쌓이면 노트북으로 사진을 옮기며 정리한다. 언제 이렇게 사진이 쌓였지 툴툴대다가도, 보던 사진과 함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 웃기도 울기도 하며 감상에 젖곤 한다. 




 사진 속에는 현재의 나는 인지하지 못하던, 잊고 지내던 내가 있었다. 그토록 스스로를 잘 안다고 자부하던 내가 겸손해지는 순간이다. '내가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도 있던 사람이었지', '새해 일출을 보며 이런 다짐을 했었지', '인상적인 하루엔 어설프게라도 사진으로 남기곤 했었지' 하는 잃어버린 줄로 착각하던 나를 깨닫고, 잊어버렸던 나를 발견했다. 때론 낯설고 때론 반가운 내 모습을 타인의 위치에서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조금 더 눈을 돌려보면 그 속에 나만 있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익숙해져 당연시 여겼던 친구와 가족이 있었고, 희망을 품게 하고 밝은 미래를 다짐했던 풍경이 있었으며, 공간과 여행을 더 잊지 못하게 만들었던 음식이 있었고, 사진으로 남길 만큼 인상적이었던 그때의 습도와 온도,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들에 그리 무심하게 살아왔을까, 나를 탓하다가 이렇게 만든 세상을 탓하기도 했다. 그러다 마음이 좀 진정되면 생각은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향했다. 다시금 인생의 방향을 설정했다.




 사진이 아니더라도 잊고 지내던 것을 상기할 만한 무언가가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자주 쉽게 보고 접할 수 있는 형태라면 더더욱 좋겠다고. 이런 도구와 행동은 나를 다시 되찾고 어떤 위치에 서있는지 알 수 있으며,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선사한다. 그리고 현재의 나를 만들었던 과거처럼, 미래의 나를 만들 현재를 쌓아가게 해 준다.  




물론 이런 생각도, 현재도 또 잃어버린 것처럼 잊어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아주 잊어버리지는 않겠다는 강한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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