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의 '감성' 다루기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났다. 겉모습은 비슷할지라도 우리 개개인은 가진 재능도 다르고 취향도 제각각이며 사고방식, 가치관 모두 다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산업혁명시대 이래로 우리는 각자가 가진 감정, 재능등을 인정하지 않은 채 모두가 공장 안의 부품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강요 받아왔다.
최근 이러한 현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언젠가부터 감성과 공감이라는 키워드가 우리 사회에 주요한 이슈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에 비해서는 여전히 기업과 단체에서 관리자들의 감성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은것 같다.
이 글에서는 회사에서 관리자로서 직원들의 '감성'을 다루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특히 Tech회사에서 관리자가 기술에만 집중한 나머지 직원들의 감성을 다루지 못해 발생되는 사회학적인 문제와 이에 따른 해결방안을 알아보고자 한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의 석상에서 논리와 이성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한다. 팩트에 기반한 논리야말로 타인이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무기처럼 보인다. 물론 맞는 말이다. 어떤 주장이라도 적절한 논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일을 추진해나갈 수 없으니까.
'팩폭'이라는 단어를 아는가?
누구나 납득할 수 밖에 없는 합리적 사실을 통해 타인을 설득하는 행위로, '팩트 폭력'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왜 '폭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일까? 타인의 주장이 강하게 부정당하는 당사자 입장에서
폭력과 같은 고통으로 받아들여지기에 팩트 폭력이라고 한다. 이처럼 감성적인 호소력 없는 이성만을 통한 설득은 Win-Win이 아닌 제로섬 게임에 가깝다.
훌륭한 관리자는 사람들을 설득할 때 이성적인 부분과 감성적인 부분을 동시에 고려한다. 드라마 '미생'에서 오과장은 이성적 논리를 가짐과 동시에 부하직원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따뜻함을 겸비한 인물로 묘사된다. 덕분에 소위 빽없고 불같은 성격으로 윗사람에게는 눈밖에 났지만, 누구보다도 부하직원의 신뢰를 받게 된다.
그가 원칙을 강조한다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사람들을 설득하는 행동은 이성의 영역이지만, 장그래에게 더할나위 없었다, YES!라는 글귀가 적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낸다거나, 그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은 감성의 영역에 가깝다.
'미생'의 오과장.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룰 줄 아는 상사로 묘사된다. / 출처 드라마 <미생>
'파워'라는 책에서 제프리 페퍼 교수는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이성보다는 감성을 섬세하게 다룰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링크)
사람들은 이성에 따라 설득된다. 그러나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파워, 제프리 페퍼>
이 짤막한 글은 이성적인 설득으로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는것을 잘 보여준다. 특히 유기적으로 협업해야할 부서가 많은 대기업에서는 유관부서의 협조가 정말로 중요한데, 특정 부서의 담당자의 반대로 일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우리 업무에서 주요 문제는 본질적으로
기술적인(이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학적인(감성적인) 문제다.
<피플웨어, 톰 드마르코, 티모시 리스터>
그렇다. 기술적인 문제는 생각보다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
DBMS에서 오류를 내뱉었다면 오류가 발생한 프로그램 담당자가 오류를 해결하도록 시간을 주고, 그래도 안된다면 인프라 담당자와 협업하면 된다. 그래도 어렵다면 해당 벤더사에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임시방편으로 해당 프로그램을 보완할 만한 어떤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어서 붙여줘도 된다.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기술적인' 문제는 근본적인 혁신을 만들어낸 첨단 기술업계에서만 해당된다. 예를들면 모바일용 신규 OS를 만들어야 한다거나, 빅데이터 처리를 위한 AI 연산 엔진을 만드는일 등 말이다. 나머지는 그들이 만들어 낸 성과를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물론 이 땅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개발자가 이에 해당하는데, 이 분들을 비하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단지 회사에서 존재하는 문제의 대부분이 커뮤니케이션과 협업 미스에서 발생하며, 특정 부서의 협조가 있다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 가능한 이슈더라도 어떤 사회학적인 문제로 인해 해결이 지연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성보다는 감성의 영역에 가깝다.
캔더의 공동창립자이자 구글 전 임원 킴 스콧이 나름 방안을 제시했다.
관계는 모든 일의 핵심이다.
강력한 관계 없이도 상사의 책임을 완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애플이든 지구상 어디에서든,
훌륭한 상사가 되기 위한 핵심은 바로 좋은 관계이다.
<실리콘밸리의 팀장들, 킴 스콧>
개인적 관심을 바탕으로 강력한 관계를 형성하고,
나아가 완전한 솔직함으로 다가갔을 때 조직의 결속력과 협업이 극대화되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개인적 관심이라 함은 함께 수다를 떨거나 저녁에 술자리를 같이 하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점심밥을 같이 먹는것도, 팀원들의 생일을 챙겨주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 관심은 대화를 나눌 시간을 마련하고, 인간적인 측면을 서로 이해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아가는 것이다.
아래 링크를 통해 킴 스콧이 정의한 '개인적 관심'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였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얼마전, 나는 데이터 3법 시행에 따른 오픈API 플랫폼 추진 프로젝트에 투입되었고 각 업무별 API 개발을 주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본업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신규 API가 추가되어 이를 맡아달라는 오더가 내려왔다.
나는 화가 났다. 그 상황에서는 '네 알겠습니다' 라고 하는것이 지당하다. 그다지 어려운 지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업무를 회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자신의 성과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를 계기로 상사와 많은 대화와 감정을 교류할 수 있었다.
만일 상사가 나의 반응에 화를 내는 등 일방적인 지시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일은 진행됐겠지만 생산성이 높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상황이 변한 것은 없지만 내 생각이 어떤지, 나의 감정이 어떤지를 솔직하게 끌어낸 일종의 상담사 역할을 해준 그 상사덕분에 나는 추가 할당된 업무를 곧바로 착수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본인의 성향에 따라 위기상황이 찾아왔을 경우 방어기제가 작용한다.
'이건 이런 문제때문에 안되는데요.'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이런 문제가 있는데 알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업무를 하다보면 수많은 피드백의 벽에 부딪히곤 한다. 물론 업무상의 지식이 불충분한 부분이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이를 배제하고 본다면 진정한 관리자로서 그 이면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테면 '이건 좀 어려운데요'가 '이런 문제는 해결 가능한 부분이지만 제 업무가 너무 과중되어서 지금 당장 할 수 없어요' 라는 의미일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감정을 지닌 인간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직장에서는 개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기계처럼 일하는것이 미덕으로 자리잡아왔다. 감정을 숨기는 것은 어느 경우에서든 정답이 아니다. 감정을 숨기는 행위는 마치 잠복기를 가진 바이러스처럼, 언젠가는 다른 부작용으로 상쇄되어진다. 직장 상사에게 혼날까봐 꼭꼭 숨겨두다가 나중에 더 큰일로 번지게 되는일 등 말이다. 감정을 모두 드러내라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업무에 어떤 어려움이 있고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싶은지 개인의 생각과 감정이 담긴 말들을 들어주라는 말이다.
해결책까지 제시해줄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아, 애초에 직원들을 그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을테니 말이다.
개인의 감정에 대해 공감해주고 격려해주는 것 만으로도 실무자는 충분히 용기를 얻을 것이며,
결국 어떤식으로든 일을 성취함으로써 여러분들에게 보답해 줄 것이다.
직원들에게 감정을 드러낼 권리를 주겠는가?
행동을 바꾸는 순간,
직원들의 생각도, 태도도 바꿀 수 있을것으로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