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초과 근무는 대개 좋은 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1970~80년대 한국의 극적인 경제 성장은 초과근무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시대가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근무시간이 성과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강제 초과근무의 폐해가 부각되면서 52시간 근무제등 제도도 생겨났다. 초과근무는 반드시 나쁜 것일까? 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고 한다. (업계마다 상황이 다르니 내가 속한 IT업계에 대해서만 언급하려고 한다.)
초과근무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독자들은 일반적으로 IT업계에 만연한 초과근무의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피플웨어에 나오는 초과근무의 부작용에 대한 글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직장인에게 초과 근무란 순진무구한 관리자의 허황된 망상이다. 물론 월요일 기한을 맞추려 토요일 몇 시간 정도 더 일하는 경우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초과 근무 뒤에는 뒤쳐진 일상을 따라잡으려 그만큼 '업무와 무관한 활동'으로 보내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이득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다.
초과 근무는 전력질주와 같다. 마라톤에서 몇백 미터를 남겨두고 조금이라도 기력이 남은 선수들에게는 말이 되지만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선수에게는 시간 낭비다. 팀원들이 전력 질주하게 너무 밀어붙이면 관리자는 오히려 신뢰를 잃는다. 유능한 팀원들은 이미 다 겪어봤다. 4월까지 끝내야 한다고 열창하는 동안 그들은 입 다물고 조용히 앉아 속으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초과 근무 시간만큼 보상으로 적절히 쉬며 결과적으로는 매주 40시간을 일한다. 유능한 사람은 이렇게 한다. 나머지는 일중독자들이다. - 피플 웨어 中-
초과근무의 긍정적인 요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주류를 이뤄왔던 사람들의 생각이기에 별다른 근거가 있지 않아도 합리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여져 왔을 것이다. 대개 586세대들의 생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요즘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 다른 편이다. 하지만 IT업계, 특히 개발자들은 자신의 실력을 키움으로써 몸값을 올리기 쉬운 직업에 속한다. 그런 점에서는 일종의 운동선수에 비유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젊은 나이에 초과근무를 함으로써 성장 커브를 더 가파르게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본인의 체력이나 나이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예전에 운동 관련 채널을 시청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이론에 대해 알게 되었다. 헬스 트레이닝 업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로 과부하의 원리라는 것이 있다. 과부하의 원리란 '계속 동일한 육체적 일을 한다고 하여도 더 이상의 근육 발달이나 체력 증진은 없으며 이미 신체에 적응된 부하(load 보다 많은 양의 부하(과부하, overload)가 새로이 주어져야 한다는 이론이다.
트레이닝이 아닌 일반 사무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아무런 스트레스를 받지 못한다면 스스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충분한 부하를 주어야만 물론 초과근무 자체가 부작용을 일으킬 수는 있겠다. 육체, 정신적인 피로로 인해 번아웃이 올 수도 있고, 질병에 걸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정규 근무시간에 집중해서 일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초과근무이건 아니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에게 어려움을 주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개 초과근무가 발생하기도 할 것이다.
UCLA의 로버트 비요크 교수는 새로운 스킬을 배우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실제로 바람직한 어려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가지의 타격 방식을 생각해보자. 첫 번째 방식은 패스트볼 25개, 커브볼 25개로 예측할 수 있는 리듬으로 타격을 한다. 연습이 끝나고 타자는 몰입을 느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방식은 구종을 무작위로 섞는다. 타자는 좌절을 느꼈고, 만족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실제로 무작위 방식이 첫 번째 방식보다 실제로 선수들의 스킬이 향상되었다고 말했다.
배움에는 거의 무능함이 따른다. 바람직한 어려움을 의도적으로 피하면 프랙티스에 문제가 생긴다. 발전 없이 쉽게만 굴러가듯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더 프랙티스 中-
나는 여기에 '자발성'이라는 요소를 추가하고 싶다. 자발적인 근무냐 아니냐에 따라 생산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발적인 초과근무에 한해 직원들의 생산성과 개인의 만족도도 달라질 수 있다는 논문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입증이 어려운 관계로 현재는 자발적이든 아니든 법적으로는 불법에 해당하는 상황이다. 그간 노동자의 권리보다는 기업의 의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당분간은 이런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노동유연성 필요한 일부 스타트업이나 선도적 기업을 중심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점은 반길 일인 것 같다.
초과근무에 대한 나만의 정리를 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초과근무 그 자체는 분명 부정적인 영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초과근무 없이는 일반적으로 경쟁 사회에서 자신의 더 큰 성장을 도모하기 어렵다.
초과근무는 비자발적 근무인 경우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지만, 자발적 근무인 경우 긍정적인 면도 존재한다.
회사의 발전만을 위한 초과근무보다는 회사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 두 가지를 같이 도모할 수 있는 초과근무는 자발적인 초과 근무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는 개인의 성장 지원을 통해 회사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며 근무시간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보장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