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념을 지키면서도 살아남는 방법이 있을까?
최근에 읽은 책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꼽으라 하면 "권력의 기술"을 꼽을 수 있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도 있고 경제/경영 서적도 꽤 많은 양의 책을 읽어 온 나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책이다.
이 책의 첫 시작부터가 남다르다. "뛰어난 실적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성과가 돋보이도록 하라", "권력자들의 자존심을 살려주어라" 등의 문구만 보면.. 이건 뭐 대놓고 아첨하고 정치하라는 소리가 아닌가?
맞다. 이 책은 일반적인 리더십 이론을 장애물로 정의하고 구태의연한 이론은 경계하라고 우리에게 충고한다. 심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경영학 서적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마저도 비판하다. 그런 위대한 기업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저자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치, 아첨 등의 처세술은 필수라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개인이 조직을 상대로 하는 행동의 영향을 걱정해야 하는 문제라면 나도 확실한 해답을 제시하기가 어렵다. 조직이 개인에게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가 많기 때문이다...... 교훈은 분명하다. 항상 등 뒤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가 침체했을 때는 특히 경각심을 높이고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그 순간이 바로 정치적 동요가 극에 달하고 권력이 가장 무자비해질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력으로 가는 길을 닦기 위해 들이는 당신의 노력이 당신을 고용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당신 자신만 걱정하라. 그렇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만 취하면 된다. 그것이 수년에 걸쳐 기업과 경영 전문가들이 주는 메시지다.
저자는 대놓고 조직을 생각하지도 말고 개인만 생각하고 개인이 살아남을 생각만 하라고 이야기한다. 참 냉정한 책이다. 계속 생각하니 기분이 나빠지기까지 하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세상은 공정하지 않고 정글에 가까우니 최대한 권력자의 비위를 맞춰가며, 자신만 생각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과 네트위킹하고, 주변 형세를 살피고 처세하라는 이야기인가?
생각해 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패자와 승자를 나눠야 하는 잔혹한 상황 때문에 게임의 '룰'에 불공정한 면 이 생기고, 결국 조직의 부정적인 측면(정치 등)이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필자가 예전에 한참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 있다. TFT라는 게임인데 카드 게임과 유사하다.
이 게임에는 몇 가지 룰이 있는데, 그 룰은 아래와 같다.
1. 매 턴마다 5장의 카드를 주고 동일한 카드 3장을 모으면 2성으로 유닛이 업그레이드된다.
2. 10원을 모을 때마다 1원씩 이자를 준다.
3. 2원을 주고 새로고침 하면 다른 5장의 카드가 등장한다.
4. 일정량의 돈을 주고 레벨업을 하게 되면 전장의 유닛 수가 늘어나고 더 고급유닛을 얻을 수 있다.
5. 매 턴마다 랜덤으로 매칭된 상대와 전투를 벌이게 되고 지게 되면 HP가 감소한다.
6. HP가 0이 되면 탈락하고 최후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승자가 된다.
모든 플레이어는 이러한 룰 안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게임을 시작하게 되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순간 승자의 기쁨과 함께 보상이 주어진다. 패자는 점수가 하락하게 되고 등급도 떨어지게 된다.
점수를 올리고 승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철저하게 게임의 룰에 맞춰 플레이하면 된다.
"이 유닛은 정말 강력해. 이 유닛만으로 승부를 봐야겠다"라거나 "난 이런이런 조합의 구성이 참 좋더라. 맞추기도 쉽고 재밌어"라는 개인의 취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게임을 이기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금은 지루하더라도 최고의 조합을 최종 조합으로 구상한 뒤 위의 6가지 룰을 최대한 활용해 중간중간 맞춰가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 개인적 취향이나 감정이 조금이라도 반영되어선 안 된다. 물론 가치관이나 신념 같은 것도 배제되어야 한다. 철저하게 기계적으로 맞춰가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
TFT게임에서의 예와 같이 대부분 조직에는 그 조직이 자생해 온 암묵적 룰이 있을 것이고, 그에 맞춰 게임을 플레이해나간다면 더 좋은 결과를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아무리 조직의 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해도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도 있을 것이고 이에 따라 때로는 조직에서 생각하는 방향에 위배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이 실수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일까? 아무런 감정 없이 철저히 조직의 룰에 따라 맞춰가며 살 것인가, 아니면 '마이웨이'를 외치며 조금은 불이익을 받더라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나도 아직 어떤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 룰 자체가 문제라면, 권력자의 눈치를 보는 일 없이 조직에 도움이 되고 유능한 사람이 승진하는 것이 최고의 룰로 인정받는 조직은 없는 것일까? 정말로 그냥 이런 생각은 의미 없고 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 자신만 걱정하면 그걸로 끝인 것일까?
골치가 아픈 주제이지만 한편으로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상상 속에 사는 나에게 또 참교육을 시전해 준 제프리 페퍼 교수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언젠가 스스로 결론을 내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