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의 CDP는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어렸을 때, 그러니까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넘어갈 즈음 디아블로2라는 게임이 한창 유행했었다. 아마 그즈음엔 PC방 광풍이 있었으므로 거의 모든 학생들이 밤을 새워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14년 차 40대 직장인이 되어 게임은 거의 할 시간이 없는 상황이지만, 가끔은 게임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POE2"라고 새로 나온 게임인데, 너 디아블로 해봤지? 비슷한 거니까 금방 적응할 거야. 같이하자”
”그래, 뭐 게임을 할만한 학생 때만큼의 열정이 있진 않은데, 오랜만에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
그런데 문득, 뜬금없게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디아블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말이다.
살다 보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잘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마다 장단점이 존재한다. 마치 디아블로의 직업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바바리안은 칼을 잘 쓰고 근접 전투에 능하다. 아마존은 활을 잘 쏴 원거리 전투에 최적화되어있고, 닌자(어쌔신)는 빠른 속도로 함정을 유도해 적을 암살한다. 아마 아마존에게 칼을 쥐어주고 근접 전투를 해보라고 하면 아무리 레벨이 높은 캐릭터라고 해도 전투력을 반도 발휘할 수 없으리라.
현실 세계에서도 이러한 법칙은 너무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당장 축구선수 손흥민에게 수비수가 되라고 한다거나, 메시에게 “너는 축구를 잘하니 감독도 잘할 거야”라며 매니저를 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어렵지 않게 예상해 볼 수 있다.
회사에서도 스타트업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이 인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CDP라고 하는 커리어 개발 및 육성에 대하여 HR부서를 중심으로 많은 고민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IT분야에서 일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는 인재를 육성한다기보다는 벌크로 선발한 뒤 관련 직무에 배치하는 행태가 만연하다. IT기업이라면 분명 다를 수 있겠지만, 여타 산업군에 속한 엔지니어에는 여전히 Engineering Expert가 아닌 Engineering Manager가 되라고 종용받는다.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탁월한 전문 엔지니어를 해고하고 초보 매니저를 신규 선발하는 행위나 다름없는데도 이 기조는 여전히 유지된다.
많은 미국의 실리콘밸리 기업을 중심으로 엔지니어 CDP는 스태프플러스/엔지니어링 매니지먼트 2가지로 분류되는 것이 스탠더드가 되었다. 시니어 엔지니어가 되면 전문가 집단인 스태프 플러스, 관리 직군인 엔지니어링 매니지먼트 두 가지 길 중 선택할 수 있다. 스태프 플러스가 되면 그 분야의 장인으로서 인정받게 되며, 관리 직군이 되면 기술 리더로 성장하게 된다. 어느 하나의 진로가 더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은 없다. 그냥 다를 뿐이다. 디아블로의 직업군처럼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전통적인 관리자라는 개념도 기존과 달리 빠르게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오히려 반대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매니저 직군 기피현상이다.
관리자가 되면 IT분야의 필수적인 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고 그것이 직업군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리스크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도 충분히 이해가 되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분위기에 휩쓸려 진로를 결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자신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는가? 기술적으로 깊게 파고들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흥미를 느끼는가? 그렇다면 장인으로서의 길이 적합하다.
여러 사람들을 모아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싶은가?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럴만한 내재적 동기를 보유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매니지먼트 직군이 정답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과 진로에 있어 정답은 없으며 중요한 것은 회사와 HR이 그들의 장점과 재능을 살려 적합한 길을 안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아블로의 아마존에게 칼을 쥐어준다거나 바바리안에게 활을 쥐어주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