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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농경사회의 사냥꾼

사냥꾼이 생존하는 법

by 김의선

고백할 게 하나 있다. 나는 ADHD 증후군을 앓고 있다.


검사를 딱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동안 나름대로 연구해 본 뒤 내린 나만의 결론이다. 스스로 어렴풋이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낀 적은 오래되었지만, 이런저런 책도 보고 연구도 하며 이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ADHD의 특성과 겹치는,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나의 특이한 행동양식은 아래와 같다.


1. 성취감 부족 - 작은 성취에 만족하지 못한다.

2. 정리정돈의 어려움 - 정리정돈을 잘하지 못하고 집안이 매우 지저분하다.

3. 불필요하게 끝없이 걱정하는 경향 - 이런 불안함 때문에 손을 물어뜯는 버릇이 생겼고 여전히 고치지 못하고 있다.

4. 쉽게 지루해하는 경향 - 작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루함을 쉽게 느낀다.

5. 주의력 결핍 - 한번 얘기한 것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왜 나는 그렇게 태어난 것일까? 그냥 내 행동양식을 스스로 수정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일까?

다행히도, 시간이 흘러 나이가 먹으면서 ADHD의 기질은 점점 완화되어 갔다. 아직도 기질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특유의 인내심으로 인해(내 기질 중 ADHD와 가장 상반되는 기질이다) 많이 극복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최근 ADHD의 많은 연구결과와 책을 접하게 되면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ADHD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어쩌면 사회에 필요한 기질이라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고 싶었고, 사회생활에 문제가 없도록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계발해나가야 하는지 더 세밀하게 알기 원했다.



ADHD, 나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고대 유럽에서는 아이들의 산만한 행동을 억제하고 규율을 따르게 하기 위해 강한 훈육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18세기 독일의 교육학자 요한 프리드리히 헤르바르트(Johann Friedrich Herbart)는 주의 집중과 반복 훈련을 통한 행동 수정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아이가 가만히 있지 못하면 엄격한 체벌과 반복 학습을 통해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중반(1950~1980년대)에도 ADHD를 훈육이 부족한 아이들의 문제 행동으로 여겼다. 아이가 산만하거나 가만히 있지 못하면 강한 훈육이나 체벌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또한, ADHD를 질병으로 간주하여 약물 치료와 행동 교정을 강제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ADHD가 전두엽 기능 저하 및 신경학적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뇌 영상 연구(fMRI)와 유전자 연구를 통해 ADHD는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구조적·기능적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확인되었다.


ADHD는 전두엽 기능과 관련이 있다


ADHD 환자의 전두엽(Frontal Lobe)은 일반인보다 발달이 늦거나 기능이 저하된 경우가 많았다. 전두엽은 집중력, 자기 조절, 계획 수립, 충동 억제 등을 담당한다. 이 부분이 약할 경우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났다.


쉽게 산만해지고 집중 유지가 어려웠다.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즉흥적인 결정을 내렸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다가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을 어려워했다.


과거에는 이러한 특성을 훈육 부족이나 버릇없음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현대 연구에서는 ADHD가 신경학적 차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특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ADHD의 유전적 강점: 사냥꾼형 기질


ADHD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특정한 환경에서는 강점이 될 수 있는 기질이었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ADHD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과거 사냥꾼(Hunter) 생활에서 매우 유리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순간적인 관찰력과 빠른 반응 속도를 가졌다.

새로운 자극을 빠르게 탐색하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즐기는 성향을 보였다.

여러 가지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농경 사회(Farmer’s World)로 접어들면서, 사회는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생활을 요구했다. ADHD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점점 사회적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 간주되었다.

즉, ADHD는 현대의 교육 시스템이나 사무직 환경에서는 불리할 수 있었다. 사무직 환경은 일정한 구조와 절차를 따르는 것이 기본이다. 하루 일정이 정해져 있고, 주어진 업무를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수행해야 하며,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장기적인 집중이 어렵고, 반복적인 작업에서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 사냥꾼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질 때 더 높은 동기부여를 얻지만, 사무직 업무는 짧은 시간 내에 보상이 주어지는 일이 많지 않다. 예를 들어, 한 달 동안 문서를 정리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업무는 ADHD를 가진 사람들에게 매우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결과물이 나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업무에 대한 흥미도 급격히 떨어진다.


그러나 창의적인 분야, 문제 해결이 필요한 직군, 혁신적인 사고가 필요한 영역에서는 강점이 될 수 있었다. ADHD를 가진 사람은 집중력이 쉽게 흐트러질 수도 있지만,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높은 몰입력을 발휘하는 ‘하이퍼포커스(hyperfocus)’ 능력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사냥 중 목표물을 포착하고 이를 끝까지 추적하는 데 유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ADHD는 ‘문제’가 아니라 ‘다름’이었다


과거에는 ADHD를 ‘고쳐야 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현대 연구에서는 이를 ‘이해하고 조절할 것’으로 보는 패러다임이 변화했다.


약물과 행동 치료를 통해 부족한 전두엽 기능을 보완할 수 있었다.

강점(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 추진력)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경쟁력이 될 수 있었다.

전통적인 기준(공부, 집중력, 규칙적인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존재했다.


따라서 ADHD는 나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고, 이를 이해하고 강점을 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또한 ADHD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기질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과 지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ADHD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가 봐도 ADHD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할 수도 없거니와 안다고 해도 이를 이해해 줄 사람도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를 극복해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ADHD를 어떻게 극복하고 내가 속한 엔지니어링 분야의 조직 리더로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내 장점을 극대화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 싶다. 그리고 성공하고 싶다.


“ADHD는 장애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농부의 방식’과 다른, ‘사냥꾼의 방식’ 일뿐이다. “ - Thom Hartmann




Reference.


1. Hartmann, T. (2005). The Edison gene: ADHD and the gift of the hunter child. Rochester, VT: Park Street Press.

2. Hartmann, T. (2024). ADHD 농경사회의 사냥꾼: 장애에서 진화적 적응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현대의 고전 제3판 (백지선, 역). 또 다른 우주. (원저 출판 2019).

3. 한국연구재단. (n.d.). ADHD 아동의 실행 기능 연구. KCI 학술논문. Retrieved from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261444

4.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n.d.). ADHD 아동의 신경심리학적 평가 연구. Journal of the Korean Academy of Child and Adolescent Psychiatry. Retrieved from https://www.jkacap.org/journal/download_pdf.php?number=2&spage=217&volume=8

5. KAIST 뉴스룸. (2024). ADHD의 유전적 요인과 신경학적 기전. KAIST Times. Retrieved from https://times.kaist.ac.kr/news/articleView.html?idxno=21937

6. DBpia. (n.d.). ADHD 아동의 실행 기능과 화용 능력 연구. DBpia 학술논문. Retrieved from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2369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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