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알량한 인류애
“애 둘이랑 와이프랑 한 달에 한 번씩 외제차 끌고 레스토랑 가서 외식하고 사는 거, 그게 내 꿈이야. 이왕이면 범선 레스토랑이면 좋겠어.”
내가 스무살 때 스물한 살이던 A선배는 저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처음에는 나 좋다는 고백을 돌려 말한 건 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순수하게 그냥 자기 꿈 얘기였다. 평범하게 돈 많은 가장으로 살고 싶다던 그는 정말 열심히 취직하고 이직하고 주식하고 상속받으며 돈을 불렸다. 월급 많이 주는 직장에서 와이프를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A선배는 날 만나면 내가 무슨 가방을 들었는지가 최고 관심사다. 내가 돈을 얼마나 버는지, 내 남편은 얼마나 버는지, 집은 얼마짜리인지 이런 게 궁금하다는 걸 전혀 감추지 않는다. 내가 아는 가장 솔직한 속물인데 그래서 엄청 편하다.
“후배가 일을 너무 못 해서 고민이야.” “신경 꺼. 니 상사한테 책임지라고 해.” “회사를 옮길지 말지 고민이야.” “지금 회사에서 돈 모으면서 이력서 써.” “사는 게 좀 지루해.” “주식해.” “이사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부모님한테 매달려.”
모든 고민에 대한 답이 명료하다. “내 이익”이라는 확실한 목표가 있으니 답이 쉽다. 알량한 인류애에 시달리는 시기에 만나면 특히 A선배는 거의 신이 된다. 대체 그런 고민을 왜 하냐는 식의 말투와 표정으로 착착착 답을 내려주고,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틀림없다) 잘도 듣는다. 웃기게도 그런 것들이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 시커멓게 꽉 차 있던 뭔가가 해소가 된다.
작년에는 어설프게 누굴 위하려다가 이도저도 못한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내 이익을 확실하게 챙겼으면 차라리 여러 사람 덜 괴로웠겠다 싶은 상황들. 쟤는 이 도움을 필요로 할 거야, 넘겨짚고 실행했다가 망한 상황들. A선배에게 말했으면 내내 혀를 찼겠지. 모두 자기가 최우선이고 자기 목표가 있는 법인데 그걸 인정 못하고 까불었다. 올해는 까불지 말고 내 바둑이나 잘 챙겨야지. 정직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