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인생의 철학자
재작년 여름, 남편의 큰어머님 댁을 갔다. 칠순이 넘으신 큰어머님은 큰아버님과 둘이 벼농사를 지으며 양평 시골에 사신다. 하우스에 사는 닭 최소 스물다섯 마리와 마당에 사는 닭 최소 스무 마리, 묶여 있는 개 두 마리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개 네 마리, 말씀이 별로 없고 막국수를 좋아하시는 큰아버님이 큰어머님의 벗이다.
마당에 사는 그 집 닭들은 밤이면 나무에 올라가 잠을 잔다고 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태풍이 불든 상관없이 꼭 나무에 올라 잠을 자고(눈이 온 날 아침에 보면 닭 위로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고) 매일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누구든 한 놈이 울어 재끼면 나머지 놈들이 따라 울며 귀청을 찢어놓는다 했다. 하우스에 사는 닭들이 가끔 탈출해 마당으로 오는 일이 있는데, 그러면 낯선 곳에서 어리둥절해 있는 그 닭을 마당의 개들이 합심해 잡아먹는다고 했다. 두 마리는 닭 맛을 보더니 시도 때도 없이 닭을 공격해서 묶어 두셨다고.
앵두가 잘 익었다 해 큰어머님과 앵두나무 가지를 나란히 붙잡고 앵두를 따 모았다. 아직 한참 더 자라야 하는 호박도 구경하고 오므라지지 못한 양배추도 보고 열매가 열리지 않은 여주도 봤다. 꽃나무도 종류별로 참 많았는데 여름이라 풀잎밖에 못 봤다. 그래도 그 꽃이 다 피면 어떨지 머릿속에 그려져 참 예뻤다.
앵두 가져갈래? 오이 줄까? 배 안 고파? 사과 깎아줄까? 껍데기는 바닥에 그냥 버려. 닭들이 와서 먹을거야. 한번은 내가 병아리 좀 보겠다고 가서 살짝 만졌는데 내가 해치는 줄 알고 어미 닭이 휙 날아와서 내 눈을 쪼았어. 병원을 3일이나 다녔어. 잡아먹어버리려고 했는데 마침 누가 사겠다고 해서 냅다 팔았어. 아이고, 나만 말하네. 미안해서 우째. 시골에는 말할 사람이 없어. 고양이를 키워? 고양이도 참 예쁘지. 나도 방에 들여놓고 키웠어. 도둑고양이가 몇 번 와서 밥을 줬는데 이놈들이 글쎄 한 번 밥을 주니까 마당을 안 나가고 새끼를 여덟 마리나 낳았어. 예뻤어. 그런데 큰아버지가 맨날 난리라 어디 전부 보내버렸어. 고양이 한 마리는 두 번이나 다시 집을 찾아왔어. 그 뒤로 도둑고양이는 밥을 안 줘.
우리 시어머니는, 그러니까 조카며느리한테는 시조모지, 나만 보면 소는 잘 크냐, 건강하게 크냐, 그랬어. 내가 자식이 없으니까 할 말이 그것밖에 없어서. 큰아버지는 동물 싫어해. 아니,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싫어해. 그래도 내가 좋아하니까 별 수 없지. 그래서 이것들 다 치워버리라고 맨날 싸워. 저기 묶인 개가 또 임신했는데 또 싸우게 생겼어. 아이고, 또 나만 말하네. 미안해서 우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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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제사를 지내러 시댁 큰집을 갔다. 어른들이 무슨 말 끝에 양평 큰어머님 댁 얘기를 했는데, 그 집에는 어디 앉을 자리가 없다며 불평했다. 개를 안에서 키우려면 아예 안에서 키우고 밖에서 키우려면 아예 밖에서 키워야 하는데 들락날락 마음대로 하게 둬서 집 안이 엉망이라고. 심지어 닭도 막 집으로 들어온다고. 그러면 되겠느냐고. 나는 엄마를 열심히 쫓아다니던 덜 큰 닭들과 문지방에 나른하게 누워 그 닭들을 바라보던 부시시한 개들이 생각나 혼자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