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대학원 다닐 때. 취업 준비로 온 신경이 곤두서있고, 한숨만 푹푹 쉬며 하루를 지낼 때다. 점심도 안 먹고 도서관에 멍하니 앉아있었지만, 배는 고프다. 한솥 도시락에 갔다. 치킨마요 덮밥을 시킨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주문 한 음식들을 기다리는 아주머니 네명이 나이 들어가는 아쉬움에 대해서 말하고 계신다. 40대가 되니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고. 젊었을 때가 좋다는 내용이다.
취업 준비로 하루하루 바쁘고 불안했던 시기였다. 젊었다고 좋은건 아닌데, 나도 힘는데...
자신들에겐 지나간 시간을 너무 쉽게 말하는 듯 했다.
배고파서 짜증나고, 덮밥 기다리는데 답답하고, 아주머니들 소리에 귀도 아팠기에 아무 생각없이 한마디가 불쑥 나왔다.
"20대도 시간은 빨리 흘러갑니다."
갑작스런 내 얘기에 아주머니들이 깔깔 웃으면서 학생 고생해 라면서 막 나온 음식들을 들고 가셨다. 드라마 보면 이럴때 도시락값은 계산해 주고 가던데...
큰아들이 9살이었을 때 을지로에 있는 롯데호텔 앞을 가족과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아들이 오뎅을 사달라고 했다. 사람도 많고, 갈 길이 바빴던 우리는 그냥 가자고 했다. 갑자기 큰아들이 소리를 버럭 지른다.
"내가 9년을 살아봤는데, 아빠,엄마는 오뎅을 제대로 사준 적이 없어!"
9년씩이나 살면서 오뎅도 제대로 못 먹었다니. 미안하고 웃겼다. 바로 멈춰서 아들에게 오뎅을 사주었다. '바로 이 맛이지.'라는 모습으로 오물오물 오뎅을 먹던 아들이 얼마나 귀엽던지.
나 역시 아들의 인생을 너무 쉽게 봤다. 우리에겐 아들의 9년이 짧은 시간이지만, 아들에겐 평생이었는데.
아들의 9년도 힘들었을거다. 좋아하던 타요 장난감도 할아버지,할머니가 한국에서 보내줘야 받을 수 있었기에 기다림의 고통을 느껴야 했을 거고, 학교에선 영어쓰고 집에선 한국말을 해야 하니 외국어 공부의 어려움에 힘들어 했다.
아빠의 40년이나 너의 9년이나 똑같은 평생인데, 아빠, 엄마가 아들의 인생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그런 아들이 벌써 14살이 되었다. 이런 일이 있었지만, 지금이라고 딱히 변한게 없는 아빠. 오늘도 핸드폰 그만해라라고 말하는 아빠. 나의 인생으로 또 너의 삶을 판단하고 있으니, 아들아. 니 인생도 참 쉽지 않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