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오십 즈음'이 된 아줌마의 이야기 -
— 지금은 ‘오십 즈음’이 된 아줌마의 이야기 —
2005년, 내 나이 스물아홉.
11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스무 살에 시집가는 것이 엄마의 소원이었다.
요즘 세대가 들으면 깜짝 놀라겠지만,
내가 결혼한 2005년만 해도 스무 살이 넘으면
은근히 ‘노처녀’라는 말이 따라붙던 시절이었다.
큰딸이 노처녀가 되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견딜 수 없다는 엄마의 불안함과,
스물아홉, 이십 대의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나의 착잡함과,
칠 남매 중 유일한 금쪽같은 막내아들이
이번 기회가 아니면 장가를 못 갈지도 모른다는
시부모님의 다급함이,
얽히고설켜 우리의 결혼식은 급행열차를 탔다.
결혼 과정을 풀어보자면 이렇다.
추석 무렵, 예비 시부모님이 일방적으로
광주 우리 집에 내려오셨다.
왕복 다섯 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였다.
그것이 상견례였다.
식사만 하시고 바로 강릉으로 올라가실 줄 알았는데,
그 길에 나를 데리고 가셨다.
“올라가서 바로 식장을 잡겠습니다.”
엄마도 나도 얼떨결에
“네, 네.” 하고 말해버렸다.
그렇게 예비 시부모님, 예비 신랑, 예비 신부인 내가
함께 강릉으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용하다는 어머님 단골 철학원으로 갔다.
“얼른 식을 올리고 싶어요.”
생년월일을 넣고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분이 말했다.
“그럼 다음 주에 하던가.”
깜짝 놀란 어머님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요.
준비할 시간은 있어야죠.”
“그럼 한 달이면 되나?”
그렇게 딱 한 달 뒤,
2005년 11월 12일로 날짜가 정해졌다.
그 길로 식장을 예약했고,
우리는 강릉 시내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번갯불에 콩 볶듯 결혼식을 치르고,
2005년 12월 31일.
내 스무 살의 마지막 날을
조그만 신혼집에서 남편과
소꿉놀이하듯 보내고,
서른을 맞이했다.
그리고 스무 해가 흘렀다.
나는 이제 ‘오십 즈음’이 되었다.
사람은 생애 주기마다
그 나이에 맞는 숙제를 하나씩 안고 산다.
막 태어난 아기는 뒤집어야 하고,
‘엄마’, ‘아빠’라는 감동적인 한마디를 내뱉어야 하며,
기어야 하고, 일어서 스스로 걸어야 한다.
열 살 즈음에는 처음으로 ‘학교’라는 사회에 던져져
규칙을 배우고,
지키길 강요받고,
“네 꿈이 뭐니?”라는 질문 앞에
꿈꾸기를 강요받는다.
스무 살 즈음에는
그토록 원하던 독립 앞에서
아직 준비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고,
처절하게 단련되며
혹독한 좌절을 맛본다.
서른 즈음이 되면,
‘나’라는 사람이 조금은 또렷해진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가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흔 즈음이 되면,
마침내 인정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다.
그래서 늘 등장하는
그 흔하디 흔한 질문.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내 대답은 분명하다.
No.
나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자신도 없고,
어쩌면 더 나쁜 악수를
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지금 ‘서른 즈음’에서 방황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해 주세요.
당신이 가지지 못한 그 어떤 것보다,
나는 당신의 ‘서른’이 부럽습니다.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서른’입니다.
명심하세요.
세상의 그 어떤 억만장자도, 재벌가 회장도
두 번은 가질 수 없는 시간이
바로 ‘서른’입니다.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는 서른입니다.
당신은 서른입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아름답고, 꽉 차 있는 당신의 ‘서른 즈음’을
마음껏 즐기세요.
만끽하세요.
그리고 감사하세요.
#서른 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