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내 삼색볼펜은 파란색만 닳는가? ―
최애 볼펜이 있다.
실용적인 삼색볼펜이다.
비싼 것은 아니고, 다이소에서 2개에 천 원에 구입한 것이다.
초저점도심, 혹은 니들 심이라 불리는
바늘처럼 길고 뾰족한 0.7mm 볼펜이다.
한동안 니들 심처럼 생긴 녀석들은
발견하기만 하면 무조건 주워 담았더랬다.
그러다 다이소에서 이 볼펜을 발견했을 때
나는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아마 족히 다섯 개는 넘게 쟁여 두었을 것이다.
근무지 책상에 하나,
항상 들고 다니는 가방에 하나,
집 책상 위에 하나,
연필꽂이에도 상시 대기 중이다.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싶어
이름표까지 야무지게 붙여 두었다.
물건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손에 딱 맞는 필기구를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쉰이 넘은 인생을 살며 체득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최애 볼펜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삼색 중 유독 파란색 잉크만
눈에 띄게 빨리 닳아 있었다.
며칠 전, 직장에서 쓰던 삼색볼펜의
파란색 잉크가 완전히 소진되었다.
그런데 검은색과 붉은색은
거의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논술학원에서 근무하다 보니
첨삭할 때는 주로 파란색을 쓴다.
검은색은 눈에 띄지 않고,
붉은색은 왠지 섬뜩한 경고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이 정도 차이는 이상했다.
오늘은 가방에 늘 꽂아 두는 수첩을 펼쳐 보았다.
역시 파란색 잉크만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그래서 수첩을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 보았다.
아무리 대충 보아도
검은색 : 파란색 : 붉은색의 사용 빈도는
대략 5 : 2 : 1 정도였다.
(증거로 동영상까지 찍어 두었다.)
혹시 파란색 잉크의 성질이 다른 건 아닐까.
그런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궁금한 건 역시 챗GPT였다.
물어보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사용자의 사용 습관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지금도 검은색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말이다.
삼색볼펜은
볼펜 세 자루를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단번에 해결해 주는 효자템이다.
그런데 한 가지 색이 먼저 닳아 버리면
‘삼색볼펜’이라는 이름은
그 순간 의미를 잃는다.
그까짓 500원짜리 볼펜.
새로 사서 쓰면 그만이다.
사치스러운 낭비도 아니다.
그런데도
몹시 아끼던 반려동식물을
떠나보내야 할 때처럼
명치 끝이 묵직하다.
이 감정은
유난스러운 걸까.
다이소에 건의를 한 번 해 볼까 한다.
“사장님, 리필심도 판매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