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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하다 Mar 02. 2020

폭력,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일까? (2)

삽화 작업 두 번째 이야기

© 음미하다 2019



작년 삽화 작업을 진행했던 다림 출판사의 <폭력,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에 다루었던 부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eummihada/58


지난번에는 주로 사회 구조적인 폭력에 대하여 다루었다면, 오늘은 성폭력에 대해 그렸던 삽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성범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성폭력의 경우만 보더라도, 지난 10년간 성폭력 횟수는 2배 가량 증가했고, 전체 형사 범죄에서 성범죄가 차지하는 비중도 1.5배 가량 증가했습니다. 비단 성폭력 뿐 아니라, 강도나 절도와 같은 범죄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반면 성폭력과 폭행은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면 앞으로 살아가며 폭력을 마주할 상황이 점점 더 많아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비단 성폭행 뿐 아니라 각종 영상 장비의 소형화, 대중화로 인해 핸드폰을 사용한 불법 촬영은 물론 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화장실, 숙박 시설 등 사생활이 노출되는 공간을 촬영하고, 이를 다양한 목적으로 온라인에 퍼트리는 등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유형의 성범죄도 만연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경찰청 통계



아동을 대상으로 한 책에서 폭력, 특히나 성폭력을 묘사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아동의 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 조차 금기시하는 문화의 문제도 있지만, 적나라하게 성폭력 범죄를 묘사하는 것 자체가 그들을 또다른 성폭력에 노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다 그럴 만 하니까 당하는 거야' 같은 식으로 되려 성폭력 피해자의 외모나 행동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사고 방식도 여전하기 때문에 자칫 그림을 통해 정형화 된 피해자의 성별이나 모습을 표현하는 것 자체도 이를 받아들이는 독자에게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예전에 수업에서 '가사일을 분담하는 남편'에 대한 일러스트를 그린 적이 있습니다. 남성의 앞치마에 키티를 그렸다가 "키티 앞치마를 하고 있는 남성이 과연 전체 남성을 대표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주제와는 별 관계없는 작은 부분이지만 자칫 키티 그림이 '보통 남자보다 더 여성적인 남성이 가사일을 분담한다'와 같은 선입견을 심어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제 입장에서는 큰 의미없이 표현한 것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나 암시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민감한 주제일수록 표현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도입부의 그림은 결과적으로 제가 성폭력과 성희롱을 표현한 삽화입니다. 고민 끝에 제가 생각한 것은 '폭력을 당하는 순간의 모습'이 아닌 '폭력에 대처하는 마음'을 표현해 보자는 것입니다. 성폭력의 피해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성폭력 피해자는 다른 폭력의 피해자와는 달리 그 원인을 자신에서 찾거나 피해를 당한 자신이 망가져버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폭력과 마찬가지로, 폭력의 1차적인 원인은 가해자에게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피해자로서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커다란 'NO'가 쓰여진 우산을 쓰고 폭력을 마주하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우산의 이미지는 홍콩의 우산 시위에서 모티브를 따 온 것이구요. 성폭력의 피해자가 대체로 물리적 힘이 약한 여성인 상황에서 때로는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단호하게 이를 뿌리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설령 폭력이 발생한 이후라도 폭력이 남긴 흔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만큼은 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당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그림에 담아 보았습니다.


최근의 미투 운동은 어쩌면 '당당한 피해자 되기'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에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리는 것조차 수치로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내가 피해자인 것을 알리는 것이 피해자인 자신이 아닌 가해자가 수치스러워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운동이 아닐까 합니다. 이는 결국 피해 사실을 알린 피해자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의 시선과 분위기의 문제이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미투 운동은 모두가 함께 우산을 잡고 함께 비를 피하는 모습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앞서 이미지의 우산과의 연결성도 염두에 두었구요.


© 음미하다 2019


이렇게 다림 출판사의 책 <폭력,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일까?> 의 삽화에 대해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올해 한우리 6월 6학년 필독서로 선정되어 보다 많은 독자를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네요. 어느덧 두 권의 아동 서적의 삽화를 그리게 되었고, 지금도 다른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매번 내용이 새롭기 때문인지 수월한 작업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책과 그림 이야기, 종종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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