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작업 이야기
오늘은 작년 삽화 작업을 진행했던 다림 출판사의 <폭력,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일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흔히 폭력이라고 하면 가정 폭력, 학교 폭력, 성폭력, 조직 폭력 같은 개인간의 직접적인 폭력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폭력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습니다. 인터넷 댓글란을 통한 언어 폭력처럼 몸이 아닌 마음에 상처를 주는 폭력이 있는가하면, 개인과 개인 사이의 폭력이 아닌 개인에 대한 국가의 폭력, 국가와 국가간의 폭력도 존재합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이처럼 때로는 폭력으로 인식하지도 못했던 구조적인 폭력을 포함해 다양한 폭력의 모습을 그림을 통해 표현해야 했습니다.
저는 원고를 받으면 우선 전체 내용을 몇 번 읽어봅니다. 글 작가님이 글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특히 그림의 전체 분위기를 어떻게 가져가야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글의 내용과 취지에 잘 어울릴지를 중점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원고는 돈 많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폭력 - 돈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이익을 선점하는 행위 - 이나 학업 성적이 좋은 아이가 단지 성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반장이 되는 것과 같이 우리가 때로는 '폭력'이 아닌 '질서'나 '그냥 원래 그런 것'으로 인식하는 다양한 구조적인 폭력의 모습을 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감정적으로 폭력을 표현하기 보다는 이런 구조적인 폭력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폭력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가 가해자인 강자와 피해자인 약자를 대립시키는 것입니다. 학교 폭력이나 성폭행 등을 커다란 늑대가 조그맣고 귀여운 양을 잡아먹으려 하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 같은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표현 방식은 강자는 늘 거칠거나 물리적으로 힘이 센 사람, 덩치가 큰 사람이라는 고정 관념을 강화시키기도 합니다. 남성-여성 등 특정 성이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은연중에 가해자-피해자의 위치로 고정시킬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는 최대한 성이나 체격, 인종 등 그림 속 인물의 생물학적, 사회적 위치가 드러나지 않도록 캐릭터를 디자인 했습니다.
원고에는 '폭력은 권력과 같이 어울려 지내고 있고 가장 친하기 때문에 권력은 폭력마저도 정당한 것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이런 국가의 의한 '정당한' 폭력은 이에 대항하는 또다른 폭력을 낳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국가의 '합법적 폭력'이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나타났던 것이 쌍용자동차 사태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건의 발단 자체가 국가의 합법적 폭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 쌍용 자동차 공장 옥상에서의 시위 진압 보도 사진이 가지고 있는 느낌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얀 공장 지붕에 점점이 흩어져 저항하는 노동자를 곤봉으로 구타하고 있는 검은 옷을 입은 경찰의 모습을 찍은 보도 사진은 사진 자체의 색채 대비가 너무나 강해서 폭력이 자행되는 장면을 매우 생생하고 강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아래 링크의 사진입니다.
그래서 이 사진을 오마주한 삽화를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성폭력과 미투 운동, 전쟁과 같은 다른 형태의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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