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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나나나 May 08. 2020

달리기

아침마다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틀에 한 번씩 일어나자마자 물을 한 잔 마시고 집을 나선다. 해가 점점 짧아지는 탓에 점점 아침이 어두워지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긴 하품을 하고, 엘리베이터에 타서 스트레칭을 하고, 이어폰을 꼽고, 달리기 어플을 재생하면 모든 준비가 끝났다.


몸이 덜 깨어난 탓에 건물을 나서면 참 춥다. 손을 소매 안으로 말아쥐고 천천히 걷기를 시작한다. 찬 바람이 뺨을 때린다. 뺨이 붉어지는 게 느껴진다. 목을 천천히 돌려보면 뚝뚝, 뼈가 끊어지는 소리가 난다. 아직 잠이 덜 깨 뻐근하다. 크게 숨을 들이 마쉰다. 찬 공기가 콧구멍을 타고 폐까지 순식간에 쓸려들어온다. 폐가 찬 바람으로 가득 차 빵빵해진다. 너무 차갑다. 오늘 공기가 유독 차다. 전날 밤 비가 내린 탓에 안개가 자욱하다. 


그 즈음 어플에서 이제 달리기를 시작하란 첫 명령이 떨어진다. 난 여전히 손을 소매 안에 말아쥔채로 달리기를 시작한다. 첫 달리기는 뻐근하다. 다리가 제대로 굽혀지는지, 발바닥이 땅바닥에 제대로 닿고 있는 건지 모르게 뛴다. 일단 뛰라니까 뛴다. 일 분 정도 뛰면 슬슬 몸에 열이 오르고 손은 슬금슬금 소매 밖으로 나와 찬 공기를 맞이한다. 다시 한 번 숨을 깊게 들이쉬면 상쾌하다. 옆에서 고요히 흐르는 강물은 오늘따라 유독 똥물이다. 칙칙한 하늘을 닮은 똥물. 저 강에 생명체가 살긴 할까. 몇 분 더 뛰다 보면 다시 걸으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난 천천히 속력을 낮추며 숨을 고른다. 첫 달리기를 무사히 마친 것만으로도 기분이 괜찮다. 별로 힘들지도 않다. 남은 달리기도 쉽게 마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찬 바람도 이젠 딱 적당하게 느껴진다. 달리기에 딱 좋은 날씨다. 


그 때 다시 뛰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이번엔 좀더 자세에 신경을 쓴다. 배에 힘을 주고, 떨어지는 발바닥의 면적에 신경쓰고, 보폭에 신경을 쓴다. 몸이 풀려 확실히 첫번째 달리기보다 가볍다. 슬슬 땀이 나기 시작한다. 오른쪽엔 예쁜 펍이 있다. 이제 문을 여는지 직원이 자물쇠를 달각거리며 열쇠를 끼워넣는다. 강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이 펍은 인테리어가 참 예쁘고, 술은 참 맛이 없다. 그래서 매일 아침 이렇게 지나치기만 한다.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족한 펍이다. 다시 걸으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이제 좀 번화가로 들어왔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한 둘 보이기 시작한다. 나처럼 조깅하는 사람도 한 둘 보이기 시작한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숨차게 팔을 흔들며 달린다. 다들 얼마나 달린 건지 숨소리가 거칠다. 내 이마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다시 뛰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아직 숨도 얼마 못 고르고 다시 뛴다. 세번째 달리기는 숨이 많이 찬다. 이 고비만 넘기면 되는데 항상 힘들다. 진짜 너무 힘들다. 할 수 있는 험한 생각이란 생각은 다 한다. 그러다보면 정말 번화가로 들어선다. 출근하는 사람들, 등교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지하철 역을 향해 걸어간다. 뭐가 그리 바쁜지 다들 웃음기가 하나도 없다. 그래도 나보단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겠지. 아침마다 무언가를 향해 저렇게 나아가다니. 난 매일 아침 목적없이 달리기를 하는데 따위의 생각을 한다. 참 쓸모 없다. 역을 지나, 맥도날드를 지나 다시 주택가로 향한다. 멀리 주택가가 보인다. 다시 걸으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이번 달리기는 진짜 정말 힘들었다. 더 거칠어진 숨을 천천히 내쉰다. 


난 알고 있다. 이 세번째 달리기 이후 달리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스스로 대견하다.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대견하다. 나혼자 신이 난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 완벽하다. 노래를 한 소절 흥얼거리면 다시 뛰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네번째 달리기다. 이제 몸과 뇌는 분리되었다. 뇌가 무엇을 하던 몸은 무조건 달린다. 자세에 신경쓰지 않아도 즉각적으로 알아서 움직인다. 뇌는 노래에 사로잡혀있다.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뇌는 마음대로 날뛴다. 생각도 마구 튄다. 이 생각했다 저 생각했다. 아무리 숨이 차도 생각은 멈출 줄을 모른다. 끝을 모르고 뇌는 움직인다. 몸도 움직인다. 다시 걸으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속도를 늦춘다. 하지만 몸은 더 달리고 싶다. 뇌는 아직 달리고 있다.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넌다. 배가 지나가면 열리는 도개교다. 살면서 딱 한 번 열리는 걸 봤다. 신기해서 사진도 찍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별 것 아닌 것 같다. 다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데 그 때는 왜 그리 유난을 떨었나 몰라. 자조적인 생각이 탁 열리고 나니 뇌가 조금 진정이 됐다. 


다시 달리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마지막 달리기다. 뛰다 보면 금새 잔디밭에 도착한다. 푹신하다. 발바닥이 착지하는 느낌이 좋다. 부드럽다. 축축한 잔디가 발바닥을 포근하게 감싼다. 아무리 뛰어도 이제 전혀 숨이 차지 않는다. 상쾌하다. 즐겁다. 행복하다. 극강의 상태로 기분이 좋아진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다. 손가락도 꿈틀거린다. 다시 걸으라는 마지막 명령이 떨어진다. 그리고 덧붙여 나오는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난 오늘도 달리느라 수고했다. 오늘도 난 달리기를 다 끝낼 줄 알았다. 이렇게 잘 해낼 줄 알았다. 깊은 숨을 내쉬고 다시 들이쉰다. 걸으며 하늘은 여전히 탁하다. 내 기분이, 머리가 맑아졌다. 마지막으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괜찮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마무리 걷기를 하다 보면 완전한 운동 종료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도 난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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