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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성원 Dec 26. 2018

공유경제는 도시적 현상이다

팝업시티

서울 연희동 궁동산 언덕 쪽에 있는 우리집에서는 카카오택시를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카카오택시 앱을 열어 목적지를 우리집 앞으로 설정하면, 어지간히 먼 거리가 아니면 불러도 잡히지 않는다. 택시 기사들이 우리집 위치를 확인한 뒤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밖에서 집으로 갈 때 택시를 이용할 일이 있으면 카카오택시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택시 운전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우리집 쪽으로 가봤자, 돌아나올 때는 빈 차로 나와야하기 때문이다.


우리집이 도심지에 있는 번화가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런 경우 목적지를 우리집으로 설정하면 아마도 손쉽게 택시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나올 때도 승객을 구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도시의 장점이다. 농촌에서는 카카오택시라든가 카풀을 이용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같은 목적지를 가진 이웃 주민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 밀도가 낮은 것이 그 이유다. 반면 도심지의 번화가는 수요와 공급이 한 데 몰리는 곳이기에 도시를 구성하는 각종 인프라 성격의 서비스를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그리고 이것은 공유경제의 작동 원리이기도 하다. 공유경제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충분히' 많아야 작동 가능하다. 내가 안 쓰는 자원을 남들이 사용하려면 수요자가 충분히 많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공유경제는 도시적 현상이다.


플랫폼으로 개인과 개인이 거래를 하려면 그 밑바탕에 무엇을 깔고 있어야 할까?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P2P(Peer to Peer, 개인 간 거래)에 필요한 것은 바로 무수히 많은 개인들이다. 그리고 그 개인이 충분히 모여있는 곳이 바로 도시다.


다양한 니즈를 가지고 있는 개인들을 플랫폼이라는 기술로 모아내는 것이 공유경제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그 특징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택시 기사가 우리집 쪽으로 가는 것을 꺼려하는 것은 우리집의 위치가 도시적 특성이 약한 곳이기 때문이다. 도심으로 인프라가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원래 지하철역이 있는 곳에 또 다른 지하철역이 생기고, 버스정류장도 모이게 된다.


도시는 기득권을 중시한다. 한때 나는 도시가 너무 기득권 위주로 구성되는 경향이 강해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인프라가 한 장소에 집중되어야 사회적 편익이 극대화된다.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는 곳에 지하철 6호선을 연결해야 하고, 그 전철역을 보다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버스 노선이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효과는 도시의 장점을 한 차원 높게 끌어 올린다. 반면 기득권을 갖지 못한 도시라든가, 사람이 점점 모이지 않는 동네의 경우에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인프라 마저 빼앗길 우려가 있다. 인천에서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KTX 노선이 2018년 9월1일 자로 폐지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폐지된 이유는 이용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2017년 인천공항 KTX 노선(서울역-검암역-인천공항)의 좌석 점유율은 23%에 불과했다. 사람이 몰리지 않으면 인프라가 작동할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많아야 공유경제가 작동하는 것은 도시 인프라가 한 곳에 집중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공유경제도 도시에서는 하나의 인프라처럼 작동한다. 도시의 인프라와 함께 앞으로 계속 늘어날 공유경제 서비스가 한 데 몰리는 곳의 입지적 가치는 계속해서 높아질 것이라는 점은 공유경제의 시대에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도 예상할 수 있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많으면 자신과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중고나라에서 거래를 할 때는 홍대입구역 주변에서 ‘직거래’하겠다고 하면 다른 곳에서 거래하겠다고 할 때보다 손쉽게 거래가 이뤄진다. 중고나라 이용자는 주로 젊은 사람들인데 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 또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홍대입구역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서울에서 거래해야 중고 거래가 쉽게 이뤄진다. 서울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중고 물품을 올려도 직거래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밀도가 높은 곳에서 개인 간 연결이 보다 쉽게 이뤄진다. 차량공유 플랫폼을 이용해 카풀을 하려면 반드시 나와 비슷한 경로를 이용해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래야 N분의 1로 비용을 나눠 보다 싼 가격으로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사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수많은 개인이 모인 공간적 플랫폼이 바로 도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50만명 이상 이상이 모여 있는 곳을 메트로폴리탄 도시라 부른다. 다시 말해 도시의 특징은 많은 인구, 그리고 높은 밀도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높은 밀도로 모여 있는 공간이 바로 도시이며, 이를 위해 구축된 건물과 교통 등의 인프라와 물리적 특징, 경제 활동 등이 도시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이다. 이 같은 도시의 특징은 교통체증과 혼잡, 주거 문제 등과 같은 도시 문제를 불러 일으키는 한편 값싼 대중교통 체계, 효율적인 교류에 따른 혁신 등 도시만이 얻어낼 수 있는 뚜렷한 장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공유경제는 바로 이 도시적 장점에 기반해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개인과 개인을 효율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그 개인들이 가까운 곳에 서로 모여 활동을 하고 있어야 한다. 공급자와 소비자 군의 규모가 충분히 커야지만 플랫폼이 작동한다. 이와 관련해 네스터 데이비슨(Nestor M. Davidson)과 존 인프란카(John J. Infranca)는 미국 예일대의 법&정책 리뷰에 쓴 ‘도시적 현상으로서의 공유경제’라는 글에서 공유경제의 특징을 ‘장소 기반'이라는 데에서 찾았다. 그리고 관련 제도도 이 같은 장소 기반적 성격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두 저자는 미국의 예를 들며, “AT&T와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이전에 등장했던 혁신 기술 기업들이 주로 연방정부 수준에서의 규제 검토가 이뤄지는 기업들이었던 반면, 최근 등장하는 혁신기업들은 용도지역제(zoning codes)와 같은 도시 단위의 규제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공유경제의 특징이 도시 단위, 장소 기반으로 발현되다 보니, 관련 규제 역시 지방자치단체(도시) 단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연방'을 거론한다는 점에서 논문의 내용이 다소 ‘미국적'이어서 도시 별로 상이한 규제체계에 대해 설명해 한국의 상황과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공유경제가 ‘장소 기반'의 특징을 갖는다는 측면은 되새겨 볼 만 하다.


에어비앤비 여행객들은 특정 동네에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것처럼 여행하길 원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수요자들이 원하는 숙소가 ‘상업용'이 아니라 ‘주거용'이라는 뜻이다. 에어비앤비는 본질적으로 주거용으로 쓰는 주택을 잠시, 도시계획상의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플랫폼이다. 이처럼 공유경제의 대표적 상품인 에어비앤비는 도시계획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에어비앤비는 “도시적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 수요자와 공급자가 충분해야 우버가 작동 가능하다. 일자리 중개 플랫폼인 태스크래빗은 특수한 기술을 가진 개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원하는 회사를 찾아낼 수 있게 도와주는데, 역시 충분한 수요자와 공급자가 있다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서비스다. 우버 역시 도시적 현상이다.


밀도 높은 도시 공간에서 플랫폼을 이용해 서로의 니즈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면, 매우 전문화된 영역이 하나의 산업으로 떠오를 수도 있게 된다. 도시는 희귀한 서비스를 원하는 수요층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공유경제는 도시 친화적인 서비스일 수밖에 없다.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는 1950년 83개에서 2015년에는 500개로 늘었다. UN은 ‘세계 도시화 전망 2014’에서 2014년 현재 전 세계 인구의 54%가 도시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2050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66%가 도시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도시화 현상은 ‘뉴 노멀'로 자리 잡은 저성장과 더불어 공유경제의 시대를 불러 오는 중요한 토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도시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OECD 회원국들의 도시 인구 역시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인다. 자료=UN


두 저자는 도시 속에서 공유경제가 등장할 수밖에 없고, 도시에서 공유경제가 도시 문제를 푸는 중요한 해법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공유경제는 확실히 현실에 기반해, 장소에 기반한 방식으로 자산과 사람들을 다시 연결하고 있으며, 공유경제기업은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 지역에서의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혁신적인 방안을 제공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

*이 글은 지난 2018년 11월27일 발행된 <팝업시티>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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