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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성원 Dec 26. 2018

평범한 개인의 부상

시민들이 만들어낸 마법 같은 여행

“전 독학한 엔지니어예요. 해커구요, 메이커이기도 하고, 전자제품에 열광하지요. 캘리포니아 롱비치 출신이고요.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아빠는 자동차 세일즈맨이시고, 엄마는 주부예요. 오랫동안 홈스쿨 했어요. 2010년에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갔고, 저널리즘을 전공으로 했어요.”


2010년 17살 때, 아버지의 차고 안에서 연구를 거듭하며 휴대성이 높은 가상현실(VR) 기기를 만든 1992년생의 젊은이 팔머 럭키는 유로게이머라는 이름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페이스북으로 23억 달러(2조6천억원)에 인수된 VR 제조사 오큘러스의 공동창업자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천재도 아니고, 틀에 박힌 괴상한 발명가도 아니고 은밀한 사람도 아니다. 권위있는 기관에서 배운 것도 아니다.


어찌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젊은이가 어떻게 VR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신기술을 발명했을까? 그 해답은 스마트폰에 있다. 애플이 2007년 1월9일 처음 선보인 스마트폰은 수많은 대중을 타깃으로 제품을 생산했고 대중화에 성공시켰다. 이에 따라 중력감지장치 등 이전까지는 가격이 비쌌던 주요 부품들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VR은 오래된 기술이다. 단지 휴대성을 확보하기 위한 부품 가격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었을 뿐이다. 럭키는 스마트폰의 기술을 VR기기에 적용시켰고, 이전까지 난제로 꼽혔던 휴대성을 해결하면서 단숨에 새로운 시장을 열어냈다. 이전까지 전문가들이 생각지 못했던 ‘융합'을 평범한 개인이 성공해냈다.


평범한 개인이 전문가를 넘어설 수 있는 시대. 스마트폰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혁명의 시대는 이른바 ‘롱테일'에 해당하는 개인의 시대를 열어 주고 있다. 팔머 럭키 같은 평범한 개인도 얼마든지 혁신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시대가 된 것이다.


평범했던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라는 놀라운 컴퓨팅 파워를 가진 기기를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며 언제든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의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이 새로운 대중의 등장은 놀라운 혁신을 가능케 했다. 뉴욕대 언론대학원 교수인 클레이 셔키는 저서 ‘많아지면 달라진다’에서 대중의 시간을 모두 더하며 “아무 대가 없이 창조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대중과 그들이 가진 1조 시간의 놀라운 변화”라고 강조했다.


1조 시간을 가진 대중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어떤 혁신이든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용어인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다. 3D 프린터도 바로 대중이 만들어낸 혁신의 한 사례다. 사실 3D프린팅은 1984년에 개발된 오래된 기술이다. 제품 모형이나 시제품 제작을 위한 도구로 꾸준히 사용돼 왔지만 그 외의 용도로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4년부터 시작된 렙랩 프로젝트와 2009년의 ME 방식의 특허권 만료는 새로운 시도를 배양하는 토대가 됐다. 그러다 보니 각종 개인용 제품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에서 뜨고 있는 ‘메이커봇’이나 네덜란드의 ‘얼티메이커’, 국내의 ‘오픈크리에이터즈’ 모두 렙랩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개인용 3D프린터를 만들어 상품으로 내놓은 사례들이다.


3D프린터와 무관했던 여러 업계에서도 이 기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구조를 쉽게 만들 수 있는 3D프린터의 특성을 활용해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 구조체를 개발해 가벼운 오토바이를 만드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제품이 나타났고, 의료계에서는 개개인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맞춤형 상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건설 자재를 싣고 가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우주 탐사 분야에서는 달이나 화성의 원료를 그대로 이용해 우주기지를 건설하는 시도가 시작됐다.


클레이 셔키가 주장하듯, 이전까지는 전문가들만이 접할 수 있던 기술을 평범한 개인도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 자체가 혁신의 토양이다. 소수의 전문가보다 수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더 뛰어날 때가 많다. 미국 항공우주국은 태양 입자와 관련해 35년간 풀지 못했던 난제를 대중에게 공개해 풀었다. 그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천체물리학계 인물이 아니라, 은퇴한 무선주파수 기술자였다. 구글도 기계학습을 위한 오픈소스 라이브러리인 ‘텐서플로우'를 대중에 공개했다. 그 이유는 “텐서플로우가 잠재적으로 선호하는 딥 러닝 프레임 워크가 되면 앞으로 인공지능 산업의 흐름을 선도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 때문이다. 전문가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개인의 혁신을 그대로 자신들의 플랫폼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남아프리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 특정 지역의 주민만 알고 있는 훌륭한 자원이 플랫폼에 올라오면서 전세계 누구든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출처=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 역시 대중이 가진 혁신에 기대 사업을 펼친다. 수많은 개인들은 자신의 지역과,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의 매력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소개할 기회가 없던 이들은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을 만나며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미국 말리부의 한 호스트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캠핑카를 숙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숲속에 나무로 지은 집은 이색적인 숙소를 찾는 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숙박업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혁신적 서비스가 지역 기반의 개인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그래서 자신을 설명하는 문구를 이렇게 내놓는다. “Magical travel powered by people (시민들이 만들어낸 마법 같은 여행)”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

*이 글은 2018년 11월27일 발행된 책 <팝업시티>의 일부 내용입니다. #팝업시티 #공유경제 #에어비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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