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고 여겨지는 내 상태.
이런 기분은 느낄 때마다 생소하다.
화가 난 건지 우울한 건지 정의를 내릴 수 없는데, 지금 내 삶이 끝났으면 하는 생각이 맴돈다.
잘 버티다가. 잘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갑자기 온다.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그래도 그 아무것도 아닌 일은 나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한다.
하얀 백지 같은 머릿속은 차분하고 고요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지 않지만, 차분한 듯하면서 불규칙적이다.
한 번씩 통증이 온다.
통증은 아프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심장이 멎는듯한 느낌이 오면 동시에 시야가 살짝 흐려지며, 이대로 눈을 감고 안 뜨고 싶어 진다.
숨은 쉬고 있는 건지 인식조차 안된다.
아무도 모르게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싶다.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사치가 된다.
약을 먹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먹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이 상태가 제일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무언가 생각하려고 해도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 울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슬픈 생각을 해서 울면 시원해질까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치지만 그 슬픈 생각을 할 여유가 현재 내 머리엔 없다.
오로지 한 가지만 떠오른다. 이제 끝내고 싶다.
그래서 지금 이 상태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끊임없이 참아낸다.
그냥 무조건 참으면 어느 순간 조금 괜찮아진다.
괜찮아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아진다.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누군가 나에게 계속 말을 걸 때 들어주는 게 아무렇지 않은 날이 있는가 하면, 듣고 있는 자체가 힘겨울 때가 있다. 평소에 그냥 툭 던지는 말 한마디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힘들 때는 단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박힌다. 그 단어에 혼자만의 모든 상상을 이어 붙인다.
우울한 것은 어떤 정의 내릴 수 없는 모든 기분의 함축적인 느낌 같다.
내가 잘 해내지 못해 우울한 것과, 남이 나를 속여서 우울한 것은 다른 기분이다.
다른데 같은 말을 사용한다. 그래서 그 말 하나로는 담아낼 수 없다.
위로도 마찬가지다.
어떤 말을 들으면 힘이 될 수 있지만 어떤 말은 꼬아 듣게 되어 더 상처가 된다.
상대에게 정확하게 위로가 된다고 확신하고 말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어 버티는 중이다. 더 악화되는 가능성은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더 악화되더라도 또 다른 기댈 수 있는 희망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우울함이 극에 달할 때는 숨 쉬는 시간조차 버겁게 느껴진다.
코로 들이쉬고 내쉬는 공기가 무겁고 들어왔다 나가지만 속에 그 무거움이 잔뜩 쌓여간다.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괜찮아졌네 느끼는 시간이 온다.
새삼 느끼지만 시간은 많은 것을 치유해 준다.
끝이길 바라는 순간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말 그대로 끝나길 바라는 순간과 이번이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순간,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것과 완벽하게 했다는 것이 있다.
그리고 끝은 다른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나는 꽤 오래 우울증을 가지고 있던 것 같다.
늘 몸이 여기저기 아팠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이나 두통이 심했다.
고통이 아주 심할 때는 잠을 잘 수도 없고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어딘가 안 좋겠지 생각하고 병원을 가면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답답했다.
과거를 생각해 보면 우울감이 심해지면 어딘가 몸에 나타난 것 같다.
내 추측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 시간 가장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에 진학했지만 이혼한 부모님은 나를 도와주지 않았고, 오히려 나에게 기댔다. 부모님은 이혼하고 아빠는 연락을 하지 않았고 엄마는 나에게 모든 걸 의지했다.
이상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막 중학생이 된 동생도 있어서 책임감은 늘 내 어깨를 눌렀고, 그것은 내 인생이 불행하다고 여기고 자란 나한테 남은 작은 희망마저 없애버렸다.
그 뒤로 불행의 씨앗은 커져만 가고 주변을 탓하기 바빴다. 주변을 탓하다 보니 조금만 시간이나도 술을 마셨고 시간이 지날수록 술에 의지했다. 술에 의지하니 몸은 더 망가져 갔고 악순환이 되었지만, 나는 나아질 수 없다며 무기력하게 있었다. 꽤 오랜 시간 아슬아슬하게 버텼다.
우리는 풍선을 불면 풍선이 아주 커지게 공기를 넣는다. 크지만 욕심이 생겨 조금 더 크게 해도 되겠지 하고 계속 바람을 넣다 보면 어느 순간 풍선은 터진다. 터진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욕심을 놓지 못하고 조금만 더 크기를 바라며 바람을 넣는다.
나라는 풍선에 책임감을 불어넣으며 이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한 내가 나를 터트리고 만다.
터져서 조각난 나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조각을 모은다.
그렇게 나는 다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