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는 화려한 귀국을 했어요. 우리나라 행위 예술가로는 최초로 국제 예술가상을 받아 남편과 세 자녀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독일로 떠난 지 십오 년을 훌쩍 넘겨 돌아온 미나는 많은 인터뷰와 방송 출연을 했고, 미나의 책이 출간되어 서점에 진열되었어요. 동건이는 미나, 누나의 삶을 담은 책을 사 와서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나를 위해 틈틈이 읽어 주었어요.
- 미나 이야기 -
나는 세 분의 어머니를 두었어요.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나를 키우지 못하고, 나를 길러주신 양어머니 집으로 입양 보냈어요. 나는 내게 생명을 주신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그리움에서 만들어 낸 환상인지 알 수 없으나 가끔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것 같아요.
어린 내가 어머니 등에 업혀 밤하늘 무수한 별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어머니가 말씀하세요.
“아가야, 별은 어둡고 깜깜할수록 빛이 나고 자기 자리를 절대 잊어버리는 법이 없단다. 우리 아가도 세상살이가 어둡고 깜깜할수록 빛을 낼 수 있는 강한 아이가 되어 네 자리를 찾아 지켜 주련…”
내가 스산한 비가 내려 축축하다, 울면, 또 어머니는 말씀하세요.
“아가야, 구름 속에 비가 많이 담겨 있으면 무거워 구름이 갈 길을 더디 간단다. 눈물을 참고 고이게 해서 삶을 더디 가지 말아라. 비가 내려야 먼지도 씻기고 땅 마름을 해소할 수 있듯이 사람도 울고 싶을 때 울어야 마음의 응어리도 먼지도 씻기고 정신의 마름도 해소된단다.
찬 바람이 불어 또 울면 어머니는 업고 있던 포대기 속으로 내 얼굴과 손을 숨겨 여미고 이야기하세요
“아가야, 찬 바람이 불거든 세월도 화가 날 때가 있구나! 여기렴… 찬 바람이 한 번씩 불어야 자신을 보호하고 여미는 법을 배우지 않겠니? 살다 인생에 찬 바람이 닥쳤다 싶을 때는 잠시 포대기 속으로 피해 움츠리고 있으려무나…”
붉은 새벽 동트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며 소리 내어 웃었더니, 어머니도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아가야, 휴일 없이 뜨는 해는 고단한 인생 여정의 어두운 조각을 태워 준단다. 인생 속 해가 되어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볕을 선물할 수 있는 해를 입고 사는 사람이 되어다오…”
독일로 유학 오기 전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서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말을 걸었던 적이 있었어요. 아주 익숙한 음성이었는데… 나는 내 어머니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때 어머니는 말씀하셨어요. 세상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기대하고 기다린다고요…
양부모님은 제게 많은 것을 해 주셨어요. 아들만 둘 키우는 집에 딸아이의 입양은 온 식구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어요. 큰오빠는 모든 것을 내게 양보했고, 작은오빠는 나를 지키는 보디가드였죠. 아빠는 밥 먹을 때도 텔레비전을 볼 때도 나를 품에서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고, 무거운 것을 들게 하거나 힘든 것은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어요. 엄마는 나를 예쁜 여자 인형을 가꾸듯 입히고 다듬는 것을 즐거워했죠. 발레 콩쿠르에서 입상해 특목고에 입학했을 때, 나는 오빠들의 자랑거리였고, 아빠는 해외에 있는 발레로 유명한 학교를 알아보기도 했어요. 엄마는 내 발레복과 슈즈를 해외 브랜드에서 주문해 입혀 주었고, 온 가족이 내 체중 관리를 위해 내 식단에 맞추는 노력도 기꺼이 감당해 주었어요.
그 사건 이후로 가족들이 달라졌어요. 아빠는 내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았고, 엄마는 백화점 쇼핑도 운동도 같이하지 않았어요. 오빠들은 여동생이 그 사건과 관련 있다는 것을 숨기기에 급급했어요.
그런 가족의 달라진 모습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내게 일어난 불행한 일 때문에, 없었던 보기 불편한 상처 자국 때문이라 여기고 나는 유학길에 올랐어요. 양부모님은 한 번도 독일에 오지 않았고, 나를 다시 한국으로 부르지도 않았어요. 내가 어떤 공부를 하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언어도 생김새도 다른 낯선 곳에서 외로움이 짙고 깊어지면 질수록 낳아 주신 어머니 꿈을 자주 꾸었어요. 가족이 그리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을 때, 양어머니는 제 입양 사실을 털어놓았어요. 그리고, 이사를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들에게 딸이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어요. 더는 당신들 딸이 아니라는 것을 에둘러 말한 셈이죠. 저는 내 무의식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환경과 목소리가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제야 가족들의 달라진 모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나의 세 번째 어머니는 내 시어머니세요. 사실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은 시어머니 덕분이었어요. 나는 고등학교 때 성폭행을 당한 이후 장기간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어요. 내 입양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모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고립감으로 우울증 약도 먹지 않고 외로움에 허우적거리다, 두 번의 자살 시도 끝에서 만난 의사인 시어머니는 내 주치의이자 또 다른 내 어머니가 되어 주었어요.
파란 눈에 금발 머리카락의 그녀가 매일 찾아와 김치를 담가주고, 쌈장을 빵에 발라먹으며 내 우울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죠. 오히려 거침없는 말로 내 상처를 마구 쑤셔댔어요.
“내가 만난 입양아 대부분은 자기를 낳아 준 부모와 길러준 모든 부모를 원망만 하다 약물 중독에 빠지거나, 너처럼 죽을 궁리만 하지. 나는 그런 너희를 조금도 이해할 생각이 없어. 생명은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야,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진정한 참 자유를 얻었다는 거야. 그 자유를 왜 자신을 학대하고 죽이는 것에 빼앗기고 있는 거지? 부모는 세상에 생명을 보내기 위해 만든 통로일 뿐이야. 그 통로를 지나오면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자유롭게 누리고 즐기면 되는데… 왜 잠시 지나온 부모라는 통로 때문에 네 눈앞에 있는 이 멋진 세상을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거야? 네가 지나온 부모라는 통로는 그냥 통로일 뿐이야. 그 통로가 녹슬고 더럽던 황금으로 되어 있었던… 그냥 너를 세상에 보내준 통로일 뿐이라고, 너는 행운아야 첫 번째 통로가 미숙해서 다른 통로를 찾아 보냈잖아. 성인이 될 때까지 어찌 되었든 너는 보살핌을 받으며 왔잖아… 세상을 둘러봐 통로를 빠져나온 순간부터 방치되어 죽거나 보살핌을 받지 못해 병들어 가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 엄살 따위는 이제 그만 부려…”
처음에는 그녀가 오지 않았으면 했어요. 찾아와 먹을 것을 만들고 그 만든 음식을 혼자 먹으며 혼자 이야기하는 그녀가 오히려 환자 같았으니까요. 혼자 있고 싶었지만, 그녀가 찾아오면 나도 모르게 문을 열어 주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오지 않았어요. 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오던 그녀가 여러 날 오지 않았고, 그녀가 아닌 한국인 남자가 찾아왔어요. 그는 어머니가 학회 참석차 해외에 나갔다가 그곳에서 일이 생겨 귀국이 늦어져 자신에게 대신 가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다고 했어요. 프랑스인 어머니에게 한국인 아들이 있다는 것이 좀 놀라웠어요.
그렇게 남편과 첫 만남의 시작으로 우리는 사랑하게 되었고 부부가 되었어요.
남편은 햇볕이 뜨거운 여름 수십 명의 사람이 분비는 해수욕장에서 어머니가 자기 손을 놔 버렸다고 했어요. 남편은 놓쳐버린 것이 아닌, 놔 버린 손을 흔들며 급히 사라지는 어머니 뒷모습이 평생 악몽으로 따라다녔다고 했어요. 프랑스로 입양됐을 때도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절대 가지 않으려 했고, 두 번의 파양(罷養)을 통해 삶을 놓고 싶었다고 했어요. 지금의 어머니를 만나 자신의 존재는 누구의 영향 속에 어떤 환경의 영역 속에 갇혀 있을 필요 없는, 존재 자체로 자유를 허락받은 생명임을 깨달았고, 자기 자유를 누리는 방법을 찾았다고 했어요.
나는 그의 여자가 되어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가고 있어요. 나는 세 아이의 노모가 되겠지요. 이 모든 것은 내가 자유로운 생명을 얻었기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 같은 인생입니다. 내게 이 자유를 선물해 준 세 분의 어머니는 나의 소중한 통로입니다.
미나가 출간한 책과 방송 출연 장면, 잡지와 신문에 실린 미나의 모든 흔적을 수집하고 모아 보며 나는 참 많이도 울었네요. 미나는 여러 방면으로 나를 찾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미나 앞에 나아갈 자신이 없었어요.
나는 장롱문을 열고 이불이 겹겹이 싸여 있는 이불속으로 내 팔을 깊이 넣어, 보자기에 싸 놓은 상자 하나를 꺼내 방바닥에 내려놓았어요.
“어머니 이게 뭐예요?”
“미나와 네가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입힌 배냇저고리를 보관해 둔 상자란다.”
“예전에 집에 불났을 때 하나도 건진 게 없었잖아요.”
“그랬지, 민석이와 내가 입고 나온 옷가지 빼고는 하나도 없이 다 타버렸었지… 그 잿더미에서 이 양철 상자를 찾았단다. 이 상자가 양철 상자라 그을리고 약간 녹아내렸지만, 속에 있던 것은 하나도 상하지 않았더구나. 다른 상자로 바꾸어 보관하려다 불 속에서 살아남은 요 상자가 어쩐지 이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계속 지켜 줄 것 같더구나.”
오래되고 흉해진 상자 뚜껑을 열어 미나 하얀색 배냇저고리를 꺼내 펼쳤어요. 미나를 가졌을 때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 없어 백화점에서 하얀색 배냇저고리를 샀고, 동건이의 파란 배냇저고리는 막달이 되어 의사가 은근슬쩍 사내아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지요.
“어머니 이 촌스러워 보이는 양말은 뭐예요?”
“이 양말이 여기 있었구나! 내가 버려졌을 때, 내 두 다리에 끼워져 있었다고 하더구나 보육원 원장 선생님께서 보관하시다 내가 보육원을 나올 때 챙겨 주셨단다. 동건아 왜 너는 누나에게 가자는 말을 하지 않니?”
“저야 누나구나 하니 누나인가 보다 하지만, 어머니는 준비가 필요하신 것 같아서요.”
“이렇게 늙어 버린 어미를 알아보기나 할까?”
“어머니, 밤하늘의 별은 절대 그 자리를 잊어버리는 법이 없다면서요… 누나는 한 번도 어머니를 잊은 적이 없어요. 어머니의 음성이 누나를 일어나게 했고, 지금의 누나를 이끌고 있어요”
세종대왕이 앉아 있고, 이순신 장군이 지키고 있는 도심 속 광장 그곳에는 ‘여성 인권의 날’ 행사로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어요. 수백 명, 아니 수천 명…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내가 있어 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이 세상 이 땅에서 여자여서 고통과 슬픔으로 물들어 버린 미나, 혜진, 연주들이 모였고, 이 세상 아내와 엄마의 자리에서 생명을 지키려는 절규가 모였어요. 폭력과 억압에서 인내하는 어머니의 탄식 소리가, 세상살이에 떠밀려 노인이 되어 버린 세상을 견뎌낸 노모들이 모였지요. 미나의 행위 예술 공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건이와 함께 왔어요.
미나 몸에서는 광채가 빛났고, 무대 위에는 갈기갈기 찢겨 널브러져 죽어가는 여러 여자가 빛을 구하는 몸짓으로 고통스러움을 견디고 있었어요. 광채를 입은 미나가 여자에게 빛을 나누어 주었더니 미나 몸의 빛은 더 밝아졌고, 두려움에 떨고 굶주려 있는 여자아이에게 빛을 먹여 주었더니 미나의 빛은 더욱 투명해졌어요. 병든 노인에게 빛을 안겨 주었더니 미나의 몸에서는 빛이 분수처럼 터져 솟구쳐 올랐어요. 미나는 투명한 빛의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빛을 뿌리고 있었어요. 내 딸이 정말 인생 어둠의 조각을 태우는 빛을 입고 해를 담고 돌아왔어요.
모든 공연이 끝나고 인파 속에 밀려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내 앞에 내 딸 미나가 걸어오고 있었어요.
“어머니 저 돌아왔어요. 하늘에 떠올라 한 번에 어머니를 알아보았어요.”
공기는 매일 들이마셔도 줄어들 줄 모르고, 아침 해는 휴일도 없이 떠올라요. 밤하늘의 무수한 별은 자기 자리를 잊어버리는 법이 없고, 바람도 구름도 갈 곳이 정해진 것처럼 흘러가요.
내 인생살이도 줄어들지 않는 공기 같은 지속적인 일상이었고, 휴일 없이 떠오르는 해처럼 쉼이 없는 출렁거렸던 고단함의 연속이었어요. 바람과 구름이 정해진 곳으로 흘러가듯 내 인생은 멈춤 없이 흘러와 그 자리를 찾아들었고, 나는 이곳에 도달했어요.
나는 영희입니다.
내 딸, 미나는 ‘여자’ 당신과 같은 귀한 존재의 여자로 살았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도 있다 부정할 수 없지만, 어떤 존재로 자유로운 생명임을 증명해 보인 미나의 삶은 세상 속에 분출되는 불꽃같은 빛이었습니다. 나는 여자로 세상에 왔지만, 나는 그저 수천 개의 분자 사슬처럼 얽히고설킨 세상살이를 플라스틱처럼 살아 내야 했던, 플라스틱 여자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