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by 조은이

2016년 10월 한 방송사에서 발견한 태블릿은 걷잡을 수 없는 여론의 태풍이 되어 온 나라를 혼란으로 밀어 넣었다. 쪼개지고 갈라진 국민들은 분노했고, 진영싸움으로 한반도는 끊어 넘치는 양냄비 속 물 같았었다. 나랏일하는 위정자들은 서로를 탓했고, 언론은 들끓는 분노의 촛불에 부채질하느라 정신이 없었었다. 결국 임기 1년 남은 제18대 대통령은 국민의 솟구친 촛불 분노로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에 따라 이전까지 대통령직을 맡아 온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2017년 5월 조기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제19대 대통령은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취임사로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혔었다. 하지만, 2019년 9월 과정은 공정하지 않았고, 결과 또한 정의롭지 못한 법무부 장관 자녀입시 비리로 인해 각 대학 학생들과 입시를 앞둔 입시생들의 상실의 분노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법무부 장관은 한 달 만에 자리를 내놓았고, 피고인으로 기소되었다.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가족 비리를 수사하자, 대통령과 여당은 일제히 검찰총장을 배신자로 낙인찍었고, 검찰총장은 훗날 중대한 결심을 하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었다.


2020년 1월 20일 35세 중국인 여성 여행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로 확인되면서, 대한민국 내 첫 번째 확진자가 되었다. 각종 시위와 논쟁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던 대한민국은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확산으로 그나마 표면적으로는 조용해지고 있었다.


승천이는 공직 업무차 중국 출장길에 올랐다가 입국하자마자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병동으로 이동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대한민국 부도 IMF를 겪고, 위기에 처한 집안의 암울함에서 할머니와 아버지를 보내고 중학생이었던 승천이는 많이 힘들어했었다. 자기가 우리 집 업둥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할머니, 아버지 장례를 치를 때였다. 동네 어른들이 장례식에 와서 자기들끼리 주고받던 말을 승천이가 스쳐 듣게 되었고, 승천이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버려진 애야?”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엄마는 아들 물음에 애써 무심하게 대답했고, 승천이는 혼자 내내 속앓이를 했던 모양이었다.


장례가 끝나고 아버지가 남긴 빚은 모든 상속을 포기함으로 떠안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언니 집 살림을 살아 주고받는 얼마의 대가와 내 월급으로 집 월세를 감당하며 대학에 다니는 영미와 승천이를 데리고 생활해야 하는, 빈곤에서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엄마는 언니 집에 머물며 틈틈이 동네 식당 일이라도 찾아야겠다고 했지만, 언니는 자기가 좀 더 보태겠다며, 엄마를 놔주지 않았었다.

“병원 환자 보는 일도 쉽지 않아, 쉬는 날 되면 일어나질 못하고 종일 잠만 자더라고. 내가 다른 일 하러 나가면, 네 언니가 애들 챙겨야 하는데, 네 형부도 다른 일 안 했으면 하고... 어쩌겠어? 애들 좀 클 때까지 내가 네 언니 도와줘야지.”

그렇게 엄마는 조카들이 학교에 입학하고도, 성인이 될 때까지 언니와 함께 살아야 했고, 직장이 있는 내 이름으로 대출과 카드빚을 내가며 우리는 어렵게 겨우 살아갈 수 있었다.


승천이는 얼마 뒤 영미에게 다시 물었지만, 영미도 승천이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내게 어떻게 해야 하냐, 걱정했었다. 나는 승천이에게 진실을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엄마에게 의논했다.

“엄마, 승천이한테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우리가 별말 안 하면 그냥 아닌가 보다 하면 되지! 남자애가 뭔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보면, 네 아버지 성격을 승천이가 그대로 닮았다니까. 내 손으로 받았지만, 네 아버지 하고 하도 닮아서 업둥이라는 것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아무튼 내 입으로는 말 못 한다. 네가 알아서 해.”

영미와 나는 승천이와 마주 앉아 승천이가 남겨진 날에 대해 말해주었고, 진실을 대면한 승천이는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물었다.

“작은누나, 그럼 나 낳아준 엄마, 아빠는 어디 갔다는 거야?”

“그건 우리도 몰라. 승천아 분명한 건 네가 태어났을 때, 정말 우리 집 모든 식구가 난리였어. 영미야 그랬잖아, 그렇지?”

“응, 할머니는 쌍 용띠해에 네가 우리 집에서 태어났다고 우리 집에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했고, 용이 승천한다는 의미를 지닌 ‘승천’이라는 이름도 할머니가 지었잖아. 엄마도 얼마나 좋아했는데, 아버지는 너 소식 듣고 산골 집에서 내려와서 막내아들로 키우자며 보고 있으면 힘이 난다고 했었어.”

“작은누나, 막내 누나 말이 맞아?”

“진짜야, 네가 우리 집에 태어나고 큰 언니 대학도 잘 가고, 아버지 약초 농사도 잘돼서 가게까지 하게 됐잖아. 승천아, 우리는 한 번도 네가 우리하고 다르다 생각한 적 없어.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우리 지금까지처럼 지내자. 엄마는 네가 아버지 하고 제일 많이 닮아서 너 키우면서 그런 생각 다시 해본 적 없다더라.”

나는 새댁 언니와 삼촌이 짐가방을 들고 도망가던 날 밤의 영상이 스쳤지만,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승천이는 몇 주 그늘진 얼굴로 말이 없었지만, 차차 마음을 정리한 듯 특별한 일 없이 잘 넘어갔었다.


영미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초등학교 동창인 태현이와 결혼하겠다고 했다. 태현이가 군대 제대하고 복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다니고 있는 대학 공부를 마치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했지만, 둘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양가의 염려를 뒤로하고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영미가 졸업하면 직장을 잡아 내 카드빚이라도 같이 갚아주길 기대했었지만, 대학 4년 몸이 약해 아르바이트 하나 하지 않았던 영미는 태현이를 엄마와 나 대신 기댈 수 있는 대상으로 정한 것 같았었다. 시댁 도움을 받으며 태현이 자취방에서 시작한 신혼살림이었지만, 태현이가 졸업하고 바로 취직이 되어 그럭저럭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승천이는 ‘응용식물학과’에 진학해 산림청 식물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엄마는 승천이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내 의견을 물었었다.

“승천이 대학 뒷바라지하겠냐?”

“승천이가 대학 가겠다고 하면 보내야지. 엄마라는 사람이 무슨 말이야?”

“너는 대학도 못 다니고 지금까지 동생들 건사했는데, 승천이 이만큼 키워 놨으면 됐지? 더 이상 네가...”

엄마 속마음은 내 불평을 미리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새벽잠을 설치고 밤늦은 시간까지 좁은 공간에 갇혀 어디든 갈 수 있는 이들에게 표를 팔며 먹고살아야 하는, 매표원 일을 영미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승천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고생해 달라고 했었다. 승천이 대학 졸업까지 내게 대놓고 요구할 수 없는, 내 마음을 떠보고 싶은 엄마의 미안함은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승천이는 대학 입학금만으로 충분해했었다.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 가며 틈틈이 아르바이트로 내 부담을 들어주려는 노력이 기특하고, 고마웠었다. 대학 졸업 후 1년여간 신림동 좁은 고시원에서 공시생으로 고전분투한 끝에 산림청 공무원이 되어,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며 대학원과 박사과정까지 혼자 힘으로 해 낼만큼 승천이는 자기 선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갔었다.


나는 월세방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은미와 터미널 앞에서 꽃집을 시작했었다. 은미는 고속버스 운전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지만, 아이 둘을 낳고 남편의 외도와 폭력으로 이혼하고 홀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다. 꽃집을 시작하게 된 것은 은미가 틈틈이 꽃 가꾸는 일을 배워놓은 터였고, 나는 오랜 직장 생활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력감으로 집에서 하는 일 없이 뒹굴고 있었다. 남편 폭력을 피해 어린아이 둘과 우리 집을 찾은 은미 쇠약해진 몸을 보면서 내가 물었었다.

“은미야, 왜 그러고 사니?”

“그러게? 애들 데리고 뭘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해서 무턱대고 이혼도 못 하겠다.”

“너 결혼하고도 한동안 회사 다녔잖아, 회사 알아보고 일 시작 하면 되지?”

“경력 단절녀, 어렵게 어디 취직이 된다고 해도 혼자 벌어서 커가는 애들 뒷받침이 되겠어? 요양원에 있는 엄마도 돌봐야잖아! 내가.”


은미 엄마는 한동안 괜찮았었지만, 2012년 ‘형제복지원’ 피해 진상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은미 오빠가 인권유린이 잔혹했던 그곳에서 오래전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미 엄마는 정신을 놔 버렸고, 은미는 어쩔 수 없이 엄마를 요양원으로 모셔야 했었다. 요양원 생활로 몸도 마음도 황폐하고 병약해진 엄마를 대할 때마다, 은미는 올림픽이라는 나라 잔치에 아무것도 모르고 희생된 어린 국민을 권력자들의 외면으로 평범한 소년의 죽음이 묻혀버렸고, 오빠의 실종과 죽음은 한 가정의 작별할 수 없는 짙은 그늘이 되었다고 울분을 참지 못했었다.


“너 회사 다닐 때 꽃 가꾸는 일 배워서 자격증 따지 않았어? 꽃집 해봐.”

“혼자 장사를 어떻게 하냐?”

“내가 도와줄게, 내가 꽃 만지는 건 못하지만 가게는 지킬게.”


은미는 끝내 남편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 도장을 찍었다. 나는 퇴직금과 월세방 보증금을 빼서 그동안 못 갚고 있었던 빚을 청산하고, 꽃가게에 딸린 작은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솔직히 꽃에 대한 상식도 관심도 없었지만, 가게를 지키며 소설책 읽는 것에 만족했었다.


“승천이 좀 어때?”

“응, 격리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는 핸드폰 통화라도 했는데, 중환자실에 있고부터는 알 수가 없어. 병원에서는 일단 기다려 달라는데….”

“승천이 건강하니까 회복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코로나가 잠잠해져야 우리 가게 문도 다시 열 텐데, 큰일이야.”


일시적일 거라 여겼던 코로나 사태는 진정국면이 보이지 않았고, 은미와 나는 언제 열지 모르는 가게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승천이는 다행히 회복되어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후유증으로 휴직계를 내고 쉬고 있었고, 나는 가겟방을 비우고 지낼만한 집을 찾아 나가야 했었다.


“너 어떻게 할 거야? 무슨 장사를 한다고 난리를 치다, 홀라당 망하고, 이제 어쩔 거야?”

“엄마, 엄마는 내가 한심해 죽겠지?”

“그래, 나이나 적냐고? 나이 사십이 훌쩍 넘어서 시집도 못 가고, 집 한 칸도 없어서, 어이구.”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다 내 탓이지?”

“그럼, 누구 탓이야?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이혼한 친구하고 장사를 왜 하냐고?”

“엄마는 내가 평생 매표소에 갇혀서 표나 팔다 죽었으면 좋겠어? 영미 승천이 학교 마쳤으면,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수 있잖아.”

“네 앞가림은 하고 살아야 할 거 아니야? 나는 네 언니한테 아무 말 못 한다. 요즘 네 언니도 작은 녀석이 속을 썩여서 심정이 말이 아니야. 네가 알아서 해.”

“언니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나 있었어? 어차피 내가 알아서 할 텐데? 왜 전화해서 사람 속을 긁어?”


언니는 시어른이 은퇴하고 시어른이 운영하던 병원을 형부와 같이 꾸려가면서 일상이 더 바빠졌고, 조카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 놓은 상태였다. 엄마가 언니를 대신해 미국을 오가며 조카들을 돌보고 양쪽 집 살림도 살아 주고 있었지만,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엄마의 미국 출입이 어려워졌다. 첫 조카 하은이는 미국 하버드에 진학해 언니와 집안 어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만, 2000년 백룡 띠 해에 미국 원정 출산으로 태어난 둘째 하빈이는 미국 생활도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자자란 사고를 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코로나로 학교생활이 원활하지 않은 하빈이는 결국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입국해 집에서 빈둥대고 있어 언니 속을 뒤집고 있는 것 같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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