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경진년(庚辰年), 백룡(白龍)의 해가 시작되고 있었다.
영미는 어려운 형편으로 등록금이 저렴한 지방 국립대에 진학했고, 승천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방 두 개 월세방을 얻어 이사했다. 언니는 언니를 똑 닮은 첫딸에 이어 백룡 띠 둘째 아들을 출산했고, 엄마는 큰딸 집안 살림과 손녀, 손자를 돌본다는 핑계로 산골 집에 사는 아버지와 할머니를 등한시했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시집간 딸 집에 눌러살기로 했냐며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아버지 자신의 무능을 자책해서 나온 일시적 감정이 섞긴 말일뿐이었다. 나는 터미널 매표소 일에 익숙해졌고,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은정이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은미와 자주 어울렸었다.
“1999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니만, 2000년에 우리가 살고 있다니...”
나는 세월 가는 것이 우울했었다. 한 달 한 달 일하고 월급을 받아 월세를 내고 동생들 학비를 보태고, 생활비로 쓰고... 내 통장 잔고는 늘 비어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뭔지도 모르는, 그저 하루하루 날짜만 보내는 일상으로 솔직하게 나는 1999년도에 정말 지구가 멸망해 버렸으면 했었다.
“작년에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나는 정말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어.”
은미는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두어 달 뒤 할머니가 이유 없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고 할아버지를 따라가면서 세상이 끝난 것처럼 슬퍼했었다. 오빠를 찾겠다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던 부모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었던 터라, 늘 옆에서 자기를 보살펴줬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연이은 죽음은 은미에게 모든 것을 앗아가는 가혹한 슬픔이었다. 이상한 것은 은미 엄마는 시어른들 초상을 치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었다. 병명도 없이 시름시름 앓아누워만 있던 며느리를 위해 용하다는 무당까지 불러 굿도 하고, 찾지 못한 손자 천도재도 올렸지만, 아주머니 병세는 차도가 없었었다. 은미 말로는 엄마의 회생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저승에서 자기를 불쌍하게 여기고 엄마 병을 낫게 한 것 같다고 했었다.
“나 성형 수술하러 일본에 갔다 올까 봐.”
은정이 부모님은 건어물 가게를 접고 일본에 사는 친척댁을 오가며 서울에서 일본 직수입 젓갈 장사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은정이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오래 살았고 은정이 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했다. 한국에서 죽고 싶다는 할아버지 향수병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 정착해 살게 되었지만, 일본에는 할아버지 형제들과 사촌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은미는 결혼할 남자를 만나기 위해 무척 노력했지만, 대학 4년 동안 아무도 사귀지 못했었다. 학교 선생이 되면 남고에 발령받아 어린 남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여선생이 되는 게 목표였다.
“은정아, 성형도 바탕이 괜찮아야 빛을 본단다. 너는 예쁜 쪽으로 가지 말고 그냥 평범한 쪽으로 만족하면 남자 친구가 생길 거야.”
“용남아 왜 그래? 은정이도 희망을 품고 뭐 좀 하려고 하는데, 은정아 수술해. 수술해 보고 마음에 안 들면 원상 복구하면 되지 뭐.”
“내 얼굴이 도로 공사 구간이냐?”
“왜? 비포장도로 아스팔트 포장하면 매끈하고 예쁘잖아. 은정아, 성형하면 예쁠 거야.”
“코? 눈을 좀 할까?”
“은미야, 우리가 사춘기 여중생도 아니고, 은정이에게 친구로서 진실을 말해줘야 하지 않겠니?”
“얘들아, 내가 그렇게 얼굴이 아니야? 화장 기술을 좀 배워볼까? 화장을 예쁘게 못 해서 그렇지, 영~ 못 봐줄 얼굴은 아닌데...”
은정이는 늘 챙겨 다니는 거울을 꺼내 자기 얼굴을 보며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용남아, 너는 뭐든 너무 현실적이야. 사람이 자기 인식에 적당해야 사는 재미가 있지, 나는 은정이 수술하는 거 찬성.”
“용남이 말보다, 은미 네 말이 은근 더 기분을 이상하게 한다, 말이야.”
“그래? 미안, 미안”
우리는 단골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들이켰고, 터미널 근처 소주방에서 노가리를 씹으며, 하나 마나 한 수다를 떨곤 했었다. 그날도 나는 막차를 보내고 늦은 밤 소주방에서 기다리는 은정이와 은미를 찾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노가리 조각 하나를 입에 넣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네 아버지 집에 불나서 할머니 하고 아버지 병원에 있다고 연락 왔어.”
엄마의 젖은 음성이 떨렸고, 언니가 수화기를 건네받아 병원 위치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바로 승천이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 언니한테 연락받았어. 내가 지금 갈 테니까, 막내 누나하고 집 앞에 나와 있어.”
“응”
은미는 회사 걱정은 말라며 병원에 가서 연락 달라고 했고, 은정이는 집에 있는 작은 오빠에게 전화해 차를 몰고 오게 해서 동생들과 나를 태우고 병원으로 같이 가 주었다.
할머니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었다. 갖가지 의료 기계 선에 얽혀 야윌 대로 야위어 병원 침대를 의지하고 있는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나는 깊은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내가 농고에 가서 아버지 옆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면, 어차피 끝까지 다닐 수 없는 대학이었는데,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더 열심히 가게 일을 도왔다면... 깊은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술에 의존하는 아버지에게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할머니와 아버지를 등한시한다고 엄마에게 잔소리만 늘어놓을 줄 알았지, 나 역시 산골 집에 무관심했었다. 나는 아버지 실패로 내 인생이 뭔가 큰 손해를 보고 있는 것 같은 피해자 코스프레라도 하듯, 동생들과 지내면서 영미와 승천이가 한 번씩 다녀오긴 했지만, 나는 한 번도 아버지에게 가지 않았었다. 아버지는 약초 농사와 약재상이 망하고 가족들이 흩어져 살게 된 것이 모두 자기 때문이라 자책했고, 알코올 의존증으로 스스로 허물어지고 있음을 알면서 자신을 돌보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동생들이 마지막으로 다니러 가서 찍어 온 사진이 번뜩 떠 올랐다.
“작은누나, 아버지 집 밭에 피어 있는 꽃인데 막내 누나가 찍어 달래서 찍었어. 꽃 예쁘지?”
“승천아, 이 꽃 무슨 꽃인데?”
“몰라, 아버지한테 물어봤더니, 그냥 약초꽃이라고 하던데...”
“영미야, 아버지 일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아?”
“응, 꽃인지 약촌지 키우는 것 같던데? 사실 아버지가 사진 찍지 말라고 했는데, 꽃이 너무 예뻐서 아버지 몰래 승천이한테 몇 장 찍어 달라고 했어.”
가냘픈 영미를 감싸고 있는 붉은 꽃의 정체는 양귀비꽃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영미에게 사진을 가지고 있느냐 물었고, 영미는 디지털카메라에 저장되어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언니에게 붉은 꽃의 정체가 양귀비꽃이 확실한 것 같다고 했고, 언니는 유리 벽 건너 멀찍이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아버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언니는 심란한 낯빛으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고, 엄마에게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 가는데?”
“아버지 집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갑자기 왜?”
“아무래도 아버지 불법으로 양귀비 재배한 것 같아, 양귀비 태워버리려다, 집에 불이 옮겨 붙은 게 아닌가 싶어.”
“그래서? 이 밤중에 가서 뭘 어쩌자고?”
“날이 밝으면 경찰 조사 시작될 거야.”
“불이 어떻게 났는지 알려면 당연히 조사해야지.”
“아버지 과실이 인정되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그래서?”
“조사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살펴봐야겠어.”
언니 예상대로 양귀비로 보이는 꽃밭은 모조리 타버렸고, 집도 홀라당 타서 잿더미였다. 나는 질퍽한 흙 땅에 어둠보다 검은 절망의 지옥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언니는 타다만 약재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고, 창고 철 캐비닛에서 작은 포대에 건조해 담아 둔 양귀비 샘플과 약재상 거래 전표가 담긴 상자를 찾아내 들고 나왔다.
“이게 뭐야?”
“차 트렁크나 열어.”
언니가 차 트렁크를 열고 증거인멸로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나는 아버지의 꿈이 녹아내린 늪에 빠져드는 듯,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 같아 괴로웠다. 차를 몰고 다시 병원으로 향할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 돌아가셨다.”
언니는 갓길에 차를 세워 핸들에 얼굴을 묻고 꿀꺽울꺽 소리를 눌러가며 한참을 울었다.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지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내 가슴속 큰 방 하나가 허물어 사라지는 것 같은, 어떤 표현으로도 표출되지 않는 상실감이 밀려들었다.
언니 증거인멸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양귀비 재배를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버지에게 불법 양귀비 재배를 부탁해 유통을 시도했던 약재상 주인은 자기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죽은 아버지 혼자 한 일이라고 우겼다. 하지만, 불이 나던 날 약재상 주인이 찾아와 말려놓은 양귀비를 요구했지만, 아버지는 죄책감 때문에 창고 캐비닛에 보관하고 있던 양귀비를 내주지 않았었다. 그러자 약재상 주인과 다툼이 생겼고,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가 말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언니가 화재 현장 약재 창고에서 가지고 나와 보관하고 있었던 약재 거래 명세서에 약재상 주인 각서가 발견되어, 아버지에게 덮어씌우려 했던 계획은 의미가 없어졌다. IMF 경제 위기로 빚더미에 올라 흩어진 가족을 보면서 아버지는 어떻게든 만회할 기회를 찾고 싶은 것은 아니었는지….
불이 났을 때 할머니와 아버지는 불길을 피해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인지! 나오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동네 이웃들은 집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소방차가 왔을 때도 불길을 잡고 난 뒤에서야 아버지와 할머니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밭에 불을 놓았고,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깨워보려 했지만, 불길에 휩싸인 집을 벗어날 시기를 놓쳤고, 아버지에게 겹겹의 이불을 덮어 놓고, 이불 더미 위에 고꾸라져 숨진 채 발견되었다.
전쟁 통에 남편과 큰아들의 행방을 모르고 홀로 아버지를 키운 할머니의 희망은 아버지였을 것이다. 그 희망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할머니는 죽음의 순간이 닥쳤을 때, 전쟁 통에서의 비극보다 더한 고통으로 죽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을까... 할머니와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며, 나는 눈에 보이는 어둠보다 훨씬 무거운 인생의 어둠을 본 것 같았었다. 언니와 찾았던 그날 밤 산골 집 어둠 속에 까맣게 타버린 아버지 희망이 소멸한 어두운 땅은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공포를 만들어내는 표상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