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게를 비워줘야 하는 기한까지 방을 얻지 못해, 은미네 빌라에서 잠시 살기로 했다. 엄마는 그런 내가 정말 한심 해서였는지! 앞가림 못하는 내게 속이 상해서였는지! 엄마는 나를 비추는 거울을 들고 나를 집요하게 비추는 존재로 한 번씩 나를 우울하게 했었다.
“용남아, 은정이 학교 퇴근하고 친정에 온대, 우리 집에서 한잔하자고 해서 오라고 했어.”
“코로나 때문에 학생 없는 학교, 선생들은 출근하는 모양이지?”
“온라인 수업을 학생 없는 교실에서 혼자 하나 봐.”
“매일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어린 신랑 같이 온대?”
“내일 토요일이라 남편은 시댁 가고, 은정이는 친정에 오기로 했대.”
은정이는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첫 발령지 남고에서 만난 지금의 신랑에게 공들이고 키워서 결혼했었다. 물론 은정이가 남자를 고르는 기준은 얼굴이었다. 은정이보다 여섯 살 아래 진태 씨는 고3 학생이었고, 잘생긴 이목구비에 남다른 스타일로 학교 연예인이었다. 은정이는 그런 진태 씨에게 한눈에 반했고, 대학에 뜻이 없었던 진태 씨를 재수까지 시켜가며 대학에 보냈었다. 대학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진태 씨를 대신해서 은정이가 리포트를 써서 내가며 겨우겨우 대학 졸업장을 얻을 수 있었지만, 진태 씨는 오토바이족으로 시내를 질주했고, 또래 여자애들과 어울려 클럽과 술집을 전전하는 방탕한 일상에 젖어 살았었다. 순수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은정이는 진태 씨 유흥비까지 대주며 인생 우울의 참맛을 대면한 듯 정말 힘들어했었다.
“용남아, 은미야, 내가 미쳤지? 그 나쁜 놈, 돈 이야기할 때 말고는 나 피해 다닌다니까… 내가 그 새끼한테 얼마나 공들이며 여기까지 왔는지, 너희들은 알잖아? 근데, 왜 그 나쁜 새끼가 포기가 안 되는 걸까? 그 새끼 그만 놔줘야 하는데… 머리로는 수천 번 헤어져야 한다고 외치는데... 마음은 무슨 미련이 이리도 많아 이렇게 괴로운 거야? 우리 오빠들 진태 잡히면 죽여버리겠다고 벼르고 있어.”
은정이 괴로움이 끝을 향해 갈 때쯤 진태 씨가 오토바이 사고로 병원 중환자실에 있게 되었고, 은정이는 혼수상태로 있던 진태 씨를 지극정성으로 돌봤었다. 우리는 그런 은정이에게 정신 차리라고 꽤 나 친구 노릇을 했었다.
“은정아, 미쳤냐?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그래, 용남이 말이 맞아, 너 헤어질 생각이었잖아? 지금이 그때야.”
“얘들아, 나는 지금 나쁘지 않아, 진태가 건강할 때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매일 조마조마하게 지냈는데, 지금은 언제든 진태 옆에 있을 수 있잖아. 진태도 아마 내가 정말 필요할 거야, 표현을 못 해서 그렇지... 나 괜찮아, 이렇게라도 살아 있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은정이 정성이 하늘을 감동하게 했는지! 의사들조차 희망이 없다던 진태 씨는 사고 3년 만에 기적같이 깨어났었다. 진태 씨는 지옥을 경험하고 온 사람처럼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둘은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커플이 되었다. 은정이 부모님의 새벽기도 눈물이 집안의 홍수가 될 정도로, 오빠들이 격렬하게 진태 씨와의 결혼을 반대하긴 했지만, 둘은 결혼했다. 비록 몸 상태가 여의찮아 둘 사이에 아이는 없지만, 은정이는 진태 씨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용남아, 은미하고 어떻게 같이 살 생각을 했어?”
“사실은 집 얻을 보증금 대출 좀 알아봤는데, 직장도 없고, 가진 것도 너무 없어서 어렵더라고”
“요즘은 복지가 예전보다 좋아져서, 시에서 하는 임대주택이나 1인 가구를 위한 대출 상품이 따로 있다던데?”
“내가 이번에 알았는데, 청년의 기준이 39세까지 더라고. 나 같은 싱글 사십 대는 청년도 장년도 아닌,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제쳐진 세대더라고.”
“청년의 기준 나이가 있다는 말이야? 말도 안 돼. 나야 기혼자니 청년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요즘 중년의 독신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기준이 있다니.”
“시에서 하는 청년 주택 월세 지원도 청년의 기준이 39세까지고, 신혼부부를 위한 기금도 있고, 한부모 가정 지원, 장애인, 독거노인, 탈북민, 시설 출소자를 위한 복지는 있는데, 사오십 대 1인 가구 독립 지원 같은 것은 없더라고. 동사무소 가서 지원받을 수 있는 복지가 있는지 알아봤더니, 청년도 노년도 아닌,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사십 대가 무슨 나라 도움받으려고 하냐는 시선으로 볼뿐,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아무것도 없더라고….”
“사람이 살다 뜻하지 않은 질병이나 실업으로 공백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럴 때 나라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상황을 나라에 의지할 생각 말고, 개인이 미리미리 대비하라는 거지 뭐.”
“은정이 너는 공무원이라 어떤 상황이 생기면 휴직도 할 수 있고, 신분이 확실하니까, 대출도 어렵지 않았을 거야.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버스 회사에서 결혼하고 첫애 낳을 때까지 일했는데, 휴직은 꿈도 못 꿀 말이었어. ‘육아휴직’이라는 말도 없었던 세상이었고. 임신 중독으로 퉁퉁 부어서 회사에 나가도 누구 하나 신경 써 주는 사람도 없었고, 애 낳고 일주일 만에 회사 출근했었잖아.”
은미는 결혼과 출산 과정이 힘들었지만, 계속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어 했었다. 장거리 운행이 잦은 남편의 부재도 있었지만,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 돌봄 비용만큼은 남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했었다. 나 역시 오랜 직장 생활에 지치기도 했지만, 회사에서 퇴사했으면 하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근속 근무 기간이 길어지면서 임금 인상에 대한 부담이 사측에 있었고, 매표소 일은 전문적 기술을 요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바쁜 시간대에 고등학교 갓 졸업한 아르바이트생 두 명을 채용해도 내 임금보다 적은 액수로 사람을 쓸 수 있었다. 터미널에 버스표 자동 발권기가 설치되면서 사측 사람들은 느닷없이 내게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불평을 늘어놓고, 문제 삼기도 했었다.
나와 동갑인 부장은 내가 화장실이나 식사로 자리를 비울 때 잠깐씩 매표소 봐주는 것조차 짜증스러워하며 자기가 매표소에 들어왔을 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하지 않는다고 예의가 없다고 불평했다. 나보다 늦게 입사한 차장은 고객들에게 웃지 않는다고, 내게 고객에 대한 기본적 서비스 마인드가 없다고 했었다. 내가 일을 가르친 동료 매표원은 같은 근무 시간 같은 일을 하는데, 왜 임금 차별이 있냐는 문제 제기로 툴툴거리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었다. 급기야, ‘권고사직’이라는 말이 직원들 사이에 소문으로 떠돌고 있었고, 나는 내 직속상관에게 찾아가 권고사직하겠다는 의사를 직접 밝혀야 했었다.
“내가 회사 그만두고, 나라에서 받은 도움이라곤 실업급여 좀 받은 거야.”
“그래도 권고사직이라 실업급여 대상이 된 거지?”
“응”
“그래도 다행이다.”
“웃기는 건? 실업급여받는 동안 다른 일을 시작하면, 바로 끊어버리더라고. 꽃집 알바 소득 신고하니까, 가차 없었어.”
“내가 실업급여 나올 동안은 알바 소득 신고하지 말자고 했는데, 용남이가 한 달 정도 못 받는데, 그렇게까지 하기 싫다고 하잖아.”
“직장 잡기 힘든 현실에서 일시적으로 단순알바라도 하면서 직장을 알아봐야 하잖아? 근데, 아르바이트해서 수입이 생기면 받는 실업급여가 끊기니까, 실업급여보다 알바 수입이 적다 보니, 실업급여받을 동안 다른 일 구하는 게 손해라는 인식이 있어. 그런 상황 때문에 구직활동을 포기하는, 그냥 구직활동 하는 척하는 사람들도 많다더라고. 구직을 포기하고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 일할 의욕도 자신감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되는 거지.”
“맞아, 쉬다 보면 자신감이 없어져, 그게 문제야. 내가 애 낳고 쉬다 보니까, 내게 자존감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더라.”
“우리 나이쯤 되면 현실에서 더는 버티기 힘든 한계를 맞닥뜨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충전을 위한 쉼을 갖지 못하고, 직장을 나오면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사오십 대들의 위기가 앞으로 사회적으로 큰 손해가 될 거야.”
“요즘 사오십 대 캥거루족들이 독립할 수 있는 출구가 없어서 큰일이야. 부모가 여유 있어서 같이 사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그냥 그렇게 사는 경우가 더 많다고 뉴스에도 나오더라.”
“그래도 부실한 비빌 언덕이라도 있는 늙은 싱글들은 당장 생존에 내몰리지는 않잖아. 의지할 가족 없이 혼자인 1인 세대가 급증한다잖아. 그런 사람들을 방치하면 고립에서 얻는 심리적인 질병이나 고독사가 사회 큰 문제가 될 거야.”
“용남아, 너 혹시 이상한 생각 하는 거 아니지? 우리 집에 계속 같이 살아도 되니까, 혼자라고 생각하면 안 돼, 알았지?”
“은미밖에 없네. 걱정하지 마, 내가 왜 이상한 생각을 해.”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집에서 뒹굴 때 사실 나는 죽고 싶다, 는 생각을 했었다. 이유가 딱히 있었다기보다는, 앞으로의 내 인생이 지금과 특별히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무력감이 지속되면서 나 스스로 지루한 날들을 멈춰야 한다는...
“장성한 자식 데리고 사는 어른들이 오히려 자식들에게 학대받는다는 뉴스 볼 때마다, 이미 사회 문제는 시작되었구나, 는 생각이 들어. 내 옆자리에 있는 우리 학교 선생 집에 시동생 피해서 시어른들이 와 계시는데, 미치겠다고 하더라. 혼자인 시동생이 장사하다 망해서 시어른 집에 들어와서 사는데,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려서 시어른들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단다.”
“눈뜨고 집을 뺏겨버렸네. 주거침입으로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애들 아빠 우리 집에 발만 디밀어도 경찰에 신고한다고 말하면 가거든.”
“시어른들은 술만 안 마시면 괜찮다고, 자식이라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지. 그 선생이 갑자기 시어른 모시게 생겼다고, 집에 들어가기 싫다더라고...”
“같이 데리고 살지 말고, 내보내서 자기 앞가림하게 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복지 제도가 없으니... 직업 교육 정도는 알아보면 있을 텐데.”
“용남이도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해서 배워보려고 컴퓨터 학원 쪽으로 나라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교육 알아보고 있잖아.”
“응, 나도 알아보고 있는데, 남자들도 배울만한 훈련 있던데... 2,30대들처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알아보면 있을 거야.”
"실패를 딛고 일어나야 한다는 자기 의지가 있는 사람 같으면, 부모한테 그렇게 하겠냐? 내 생각은 그래. 누구든 실패는 할 수 있지만, 실패를 대하는 자기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않을까?"
"은정이 네 말도 옮아. 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유년시절을 보냈는지 우리는 모르잖아. 결과로 보면 나도 실패한 40대잖아. 어떻게 일어나야 할지 막막해. 위기에 몰린 자아가 건강한 표출을 할 수 있을까?"
"용남이 너는 엄마에게 함부로 하지 않잖아."
"나도 엄마하고 통화하기만 하면 맨날 싸워. 싸우려고 전화하는 건 아닌데, 이야기하다 보면 싸우게 되더라니까. 스스로 두려울 때가 있어. 이러다 나도 엉망인 인간이 되어버릴까 봐."
"용남아 걱정하지 마. 너는 그런 사람과는 질 적으로 달라. 언어폭력이든 어떤 폭력에 익숙한 사람은 어떤 계기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그런 인간이라서 그런 거야."
"그래 용남아, 은미 말이 맞아. 그리고 너 아직 실패한 사람 아니야. 앞으로 할 수 있는 일 찾아서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그래 고맙다. 우리 30대에는 없었던 지원이나 혜택들을 우리가 30대를 보내고 생긴 것 같아 씁쓸하고, 우리 노년에 받을 수 있는 연금이 줄어든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우리가 서러운 세대구나 싶어. 보증금 저렴한 원룸 월세라도 알아볼까! 했는데, 은미가 같이 살자고 해서 당분간 여기서 지내기로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