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같이 사니까 좋아?”
“내 형편이 이래서 은미한테 신세 지고 있는 거지. 내가 고맙지.”
“나는 용남이가 집에 같이 있어서 좋아, 한 번씩 와서 난리 치던 애들 아빠도 용남이가 같이 살면서부터는 쪽팔리는 건 아는지 뜸해졌어.”
은미는 남편이 아이들 양육비를 주지 않아 소송 중이었고, 남편은 자기도 동거녀에게 빌붙어 사는 처지라며 양육비 줄 상황이 안 된다고 했었다. 그런 남편이 시댁에 빼돌려 놓은 은닉재산을 은미가 찾아내 고발했고, 남편은 은미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곤 했었다.
“그놈은 제 새끼들 양육비를 왜 안 주겠다는 거야? 마누라 하고는 이혼하면 남이라지만, 자기 자식인데 양육은 못 할망정 애들 양육비만큼은 능력껏 줘야 아버지 아니야?”
“그런 생각하는 놈이 어린애 하고 집 안방에서 그런 짓하고 애들한테까지 손을 댔겠냐? 내가 있는지 모르고 문 두드리면서 쌍욕을 하길래, 내가 벌컥 문을 열었더니 놀랐는지 당황해서 그냥 가더라고.”
“하긴, 정신 제대로 박힌 놈이면 이런 상황까지... 애들은 아빠 찾지 않아?”
“내가 애들한테 툭하면 손찌검하는 거에 꼭지가 돌아 이혼 도장 찍었잖아.”
“나도 은미 한 번씩 얻어터지고 울 집 오면, 버릇 못 고치면 어쩔 거냐고? 은미한테 뭐라고 했지. 애들한테까지 손찌검한다는 말 듣고, 열이 뻗쳐서 당장 정리하고 했어.”
“그 인간한테 아무것도 기대 안 해, 애들도 아빠라고 여기 지도 않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대. 애들 양육비만 받아내면 우리 인생에서 삭제해 버릴 거야. 용남이 없었으면 그런 놈한테서 벗어날 용기 못 냈을 거야. 이혼 도장 찍고 애들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을 때, 용남이가 힘이 돼 줘서 꽃집 시작할 용기도 냈잖아. 용남이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그건 그렇고, 너희 학교 선생 중에 홀아비 없냐? 용남이 시간 있을 때 연애라도 한번 해 봐야 하지 않겠냐?”
나는 대학에서 만난 한 친구가 있었다. IMF 경제 위기에 그는 군에 입대했고, 나는 학교 자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었다. 그가 제대하고 다른 친구를 사귄다는 소식을 끝으로 나는 학교 친구들과도 모든 연락을 끊고 지냈었다. 터미널 매점 언니나, 분식점 사장이 소개팅을 주선한 적도 있었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다른 영업점 여직원들과 버스 기사들의 스캔들로 시끄러운 소문이 들릴 때마다, 매표소 여직원에 대한 평판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 회사에서는 표정 없는 여직원으로 유명했었다. 사는 것도 고단하고 피곤해 터미널과 집을 오가는 것이 전부였던 내 일상에서 이성과 연애는 사치스러운 감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은미야, 됐다. 너는 남편 때문에 그렇게 고생했으면서, 친구한테 남자 만나라는 말을 하고 싶냐?”
“좋은 남자 만나면 되지. 내가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 애들 아빠 같은 놈을 만나 고생한 거지.”
“좋은 나이 다 가고, 이제 와서 무슨 남자야? 누가 나 좋다는 사람이 있어도 감정 소모하는 것도 귀찮아.”
“좋은 사람 있어서 사랑하는 감정 생기면 얼마나 좋은데? 그런 감정을 소모한다, 생각하면 어쩌냐? 내가 어린 남편과 살아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이 늙은 생각이야.”
“삼십 대까지만 해도 표 끊어 주면서 괜찮은 남자 보면 다시 한번 보게 되고, 생각도 했던 것 같은데… 사십을 훌쩍 넘기고 아침에 거울 볼 때마다 좋은 시절 다 갔구나 싶어”
“용남아 매표소 있을 때, 표 끊으러 온 사람 중에서 관심 보이는 남자 없었어?”
“예전에 이상한 남자 있었잖아? 용남아.”
2평 남짓한 매표소 안에서 유리 벽 밖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그들은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일곤 한다. 그들 중 누군가 내 유리 벽으로 다가오고 유리 벽 작은 구멍으로 돈을 밀어 넣는 손 등을 보면,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아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이 된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유리 벽 앞에서 내게 손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서울요.”
만 원짜리 한 장을 디밀며 당당하고 당연한 말투였다. 나는 다시 그의 돈을 밖으로 밀어주며 말했다.
“서울은 10,780원입니다.”
그는 멋쩍은 얼굴로 두리번거리더니, 유리 벽 위에 적힌 버스표 금액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버스값이 이렇게 비싸다고?”
그의 손은 남자 손치고는 가냘프고 여리기 그지없는 보드라움이 있었다. 그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저기, 정말 죄송한데요. 서울 가서 부족한 돈 송금해 주면 안 될까요? 지갑도 없고, 핸드폰도 잃어버려서…. 제가 꼭 보내드릴게요.”
얼굴도 손만큼이나 고생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인상이었고, 부잣집 도련님 같은 그가 내게 불쌍한 표정으로 부탁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부족한 금액은 내 개인 돈으로 빌려줄 테니, 서울에 도착해서 돈이 생기면 자선냄비에 넣어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얼마 뒤 그가 내 돈을 갚기 위해 왔었다.
“진짜? 그 남자 다시 왔다고?”
“그날, 용남이가 우리나라에 없는 브랜드 초콜릿 상자를 가지고 퇴근해서 우리 집에 왔길래? 내가 그런 초콜릿을 어디서 났냐고 했더니, 그 남자가 차비 갚으면서 주고 갔다고 하더라고.”
“용남아, 초콜릿 상자 안에 편지나 연락처는 없었어?”
“응 없었어. 빳빳한 만 원짜리 새 돈 한 장과 ‘고마웠습니다.’라는 단어만 적힌 하얀 메모지 한 장만 있었어. 내가 그날 초콜릿 상자를 유리 구멍으로 밀어 넣어 준 그 사람 손을 보고 기분이 이상더라고! 뭐랄까? 살아 있는 사람 손 같지 않고, 뭔가 좀 이상하더라고. 그 사람 얼굴을 좀 보려고 했는데, 순식간에 사람들 속으로 없어졌어.”
“은정아, 놀라지 마. 그 남자 죽은 사람이었어.”
“야, 너희들 장난하는 거지?”
나는 매표소 안에서의 한가한 시간대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날짜 지난 신문을 가져다 두고 틈틈이 보고 있었다. 그날도 매점 언니에게 여러 신문사 신문을 얻어 와서 읽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에 끌리듯 펼쳐본 지면에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다. 어제 내게 초콜릿 상자를 밀어 넣고 갔던 그 사람이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펼쳐본 신문 날짜는 초콜릿을 받은 날로부터 3일 전 신문이었다.
“우리 그 안에 들어 있던 만 원짜리, 은행 가서 진짜 돈 인지 확인까지 했다니까.”
“용남아, 진짜 귀신이 왔다 갔다는 거야?”
“내가 그날 그 사람 얼굴을 못 봤잖아? 내 생각에 손만 보고 그 남자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어.”
“근데, 그 남자 누군데 신문에까지 났다는 거야?”
“왜, 은정아 그 시기에 재벌가 막내아들 죽었다는 소식 있었잖아? 지병을 앓고 있어서 집에서만 지내다 죽었다고, 그 막내아들이 죽어서 형제들끼리 상속 문제가 복잡하다는 둥 그런 기사들 많이 났었잖아. 용남이가 가지고 온 초콜릿 맛있게 먹었는데, 찝찝하더라니까.”
“용남아, 진짜 그 사람 맞아?”
“응, 나는 아직도 돈이 부족하다고 사정하던 그 남자 얼굴 또렷하게 기억나.”
“너 정말 놀랐겠다.”
터미널 상점 문이 닫힌 새벽 시간이나, 늦은 밤 매표소 앞에서 유리 벽 안에 있는 매표원에게 시비를 거는 술주정뱅이도 있었고, 먹을 것을 구걸하는 노숙자, 표와 거스름돈을 밀어주는 내 손을 잡아 만지려는 변태도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처럼 문득문득 생각나는 고객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상한 사람이 꼬이고 그러냐? 용남아, 우리 아직 봐줄 만해. 요즘은 수명이 길어진 만큼 옛날 사십 대와는 달라. 너 남자 만날 생각 있으면 말해, 우리 신랑 주변으로 한번 알아볼게.”
“내게 남자 만날 기회가 있다면, 어린 친구보다는 나보다 위쪽으로 만나고 싶어. 중후한 멋이 있는 중년 남자. ‘뉴욕의 가을’ 영화에 나오는 리처드 기어 같은...”
“야, 리처드 기어 같은 남자는 ‘뉴욕의 가을’ 영화에 있는 남자야. 그런 남자는 위노나 라이더 같은 여자를 좋아하는, 영화에서만 있겠지. 은정아, 연하든, 연상이든, 남자 있으면 용남이한테 소개해 줘.”
“용남이 환상을 깨고 그러냐? 용남이 눈에 그런 남자로 보이면 그런 남자지. 내가 연상이든, 연하든, 남자 있으면 바로 들이대 볼게.”
어쩌면 은미 말대로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사춘기 때 읽고 울었던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슈타인 박사처럼 니나를 향한 초월적인 사랑을 하는 남자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은정아, 일단 용남이는 어디 가질 않아. 회사 다닐 때도 시간 나면 소설책 읽거나, 영화나 신작 개봉하면 족족히 찾아보지…. 우리 가끔 만나는 거 말고 용남이가 어디 사람 만나는 자리 가는 거 봤냐? 회사 회식도 안 갔던 애야.”
버스터미널 매표소 일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주말에는 쉴 수 없었고, 평일 쉬는 날이면 나는 혼자 오전에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이 내 유일한 취미이자 쉼이었다. 텅 빈 영화관 중앙에 앉아 커다란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내가 영화 속에 존재하는 환상에 빠질 때, 나는 내가 가보지 못한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기분 있었다. 형체 없는 창살과 같은 내 삶에 갇혀, 형체 없는 자유를 나는 영화 스크린 안에서 누리고 있었다.
“용남이가 우리 집 2층 책은 거의 다 읽었을 거야. 이제 영화야? 용남아, 보기만 하지 말고, 직접 시나리오를 써 보는 건 어때?”
“그래, 용남아, 네가 한번 써 봐.”
나는 늘 생각에 익사되어 사는 것 같았었다. 딱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내 머릿속은 갖가지의 생각들로 분주하고 정신이 없었다. 생각 안에 잠겨 꼴딱꼴딱 겨우 숨을 쉬는 것 같은 내 의식을 깨우는 것은 소설이었다. 글은 다른 세상으로의 안내판이었고, 글 속 이야기는 내 분주한 머릿속을 질서 정연하게 하는 백신 같았었다. 무수한 소설을 읽으며 사실 나도 이 정도 글은 쓸 수 있겠다, 여겼고, 틈틈이 글쓰기를 시작했었다. 처음에는 내 머릿속을 정리해 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고, 다음은 마술 같은 언어의 세계를 만날 수 있어 벅차오르기도 했었다. 1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못하고 여러 편의 소설을 완성했었다. 하지만, 공모전에서 한 번도 출판의 기회를 얻지 못했었다. 작가들의 열정과 영혼의 에너지가 녹아 있는 당선작들을 보면서 내 얕은 생각은 깊이 없는 오만에 불과한, 혹 내게 돈이 생기면 글쓰기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소망만 품고 있었다. 글쓰기에 좌절을 느낄 때쯤 영화를 만났었다.
“무식에 답이 없다고, 아는 게 없으니 주리 장창 보기만 하는 거야. 내가 무슨 글을? 시나리오? 우리 언니하고 국문과 나온 영미가 알면 무지한 용기라고 웃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