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2차, 3차... 백신 접종 차수가 늘어갔지만, 코로나19는 종식되지 않았고, 마스크 착용이 필수화된 환경에서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19대 대통령은 5년의 임기를 마쳤고, 자신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결국 검찰총장 자리에서 내려와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22년 5월 10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9년 만에 거행되고 있었다.
은미와 나는 인터넷 주문을 받아, 행사나 기념일에 쓰이는 꽃과 화분을 곁들인 디저트 선물 제작하는 일을 시작했다. 은미는 서울로 케이크나 쿠키를 만드는 디저트 학원에 다니며, 선물 포장 기술을 알려주는 과정도 같이 들었다. 나는 일정 기간 컴퓨터 학원을 수강했고, 인터넷 전자상거래에 관한 공부를 했다. 컴퓨터 사용이 익숙해질 때까지 학원 선생님을 수시로 귀찮게 했었다. 나는 희귀 식물과 꽃을 찾아 식물과 꽃의 특징을 바탕으로 내 생각이 곁들여진 글을 작성해 블로그에 올렸고, 주문자들 사연을 듣고 적당한 꽃이나 식물을 추천해 주는, 받는 이에게 주문자의 마음이 담긴 편지 대필하는 서비스를 같이했다.
인디언들이 즐겨 먹었던 강인한 끈기를 상징하는 실유카.
잎은 뿌리에서 모여 나와 사방으로 퍼지고, 바소꼴 줄기 모양 길이는 30∼100cm, 너비 2cm이다. 빛깔은 청록색이고 가장자리가 실 모양으로 늘어진다. 꽃은 흰색이며 7∼8월에 걸쳐 많은 송이가 원추꽃차례로 밑을 향하여 달린다. 인디언들에게는 식량의 근원으로 불모지에서도 볼 수 있는 식물이다. 꽃자루는 다 자랐을 때 먹을 수 있으나, 꽃봉오리는 피기 전에만 먹을 수 있다. 꽃자루와 꽃잎은 요리에 사용하고 열매는 날것으로 먹는다. 뿌리로 연고나 찜질 약을 만든 것은 발목 삔 데 좋으며, 피부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잎으로는 바구니를 엮거나 섬유를 뽑아 로프를 만들기도 한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다, 어렵게 아기를 가진 예비 부모가 태몽으로 실유카 나무를 보았고, 태명으로 실유카라 붙이고 불렀다고 했다. 아내가 출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 맞춰, 발코니 미니 정원에 실유카 나무를 심어 놓고 아내와 아기를 맞이하고 싶다는 사연을 올려 주었다. 실유카꽃이 피는 종자나 포기를 구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주문해 왔다. 부부는 아이와 같이 자라날 실유카 나무에 꽃 피는 날 사진을 올리겠다 약속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의 찔레.
산에 오르다 보면 쭉 뻗어 멋있게 생긴 나무도 많지만, 가시덤불을 이루어 산행을 힘들게 하는 떨기나무도 있다. 그중 하나가 찔레나무다. 쓸모없는 귀찮은 나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찔레나무는 쓸모가 많은 나무다. 봄이 한창 무르익을 때쯤 하얀색 또는 연분홍 꽃이 피는데, 소박한 꽃에서 퍼지는 은은한 향이 좋다. 봄에 돋아나는 연한 찔레순은 보릿고개 시절 아이들의 요긴한 간식거리로, 비타민이나 각종 미량 원소가 듬뿍 들어 있어 아이들 성장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가을이 되면 팥알만 한 빨간 열매가 앙증맞게 달리는데, 이것을 영실(營實)이라 하여 약재로 썼다. 여자들의 생리통, 생리불순이나 신장염 치료에 효험이 있는데, 8~9월쯤 열매를 따서 그늘에 말려 두었다가 달여 먹거나 가루로 만들어 먹으면 된다. 찔레 뿌리는 산후통, 부종, 어혈, 관절염 치료에 좋고, 뿌리에 기생하는 찔레버섯은 어린아이 경기, 간질 치료에 최고의 묘약일 뿐 아니라 각종 암 발생을 억제하는 탁월한 효험이 있다고 한다. 또한 찔레순을 흑설탕이나 꿀과 함께 발효시켜 먹게 되면 성장 호르몬 분비가 원활하게 되고 혈액 순환이 좋아진다.
길 잃은 아이가 성장해 어른이 되어 가족을 찾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어린 딸을 잃어버리고 평생 병을 앓다 돌아가셨고, 형제들과 유전자 검사를 통해 가족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어릴 적 자랐던 동네 뒷산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꽃나무, 어머니가 좋아했던 찔레나무 찔레꽃을 떠올렸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머니 산소에 고운 찔레꽃나무를 심어 주고 싶다는 고객의 사연이 뭉클했다.
백두산에서부터 내려오는 과꽃의 전설이 있다.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던 과부는 떠난 남편을 무척 그리워했고, 외로운 마음을 참지 못해 울다 잠이 들곤 했다. 어느 날 꿈에서 죽은 남편이 나타나 여인의 손을 꼭 잡고 이끌어 간 곳에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고 한다. 깨어난 여인은 꿈에서 본 장소를 찾았고, 그곳에 꿈에서 본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여인은 남편의 선물이라 여기고, 그 꽃을 집으로 옮겨와 남편을 돌보듯 가꾸었다. 과부의 아들은 시간이 흘러 장성하여 과거 급제하였고, 여인은 남편의 혼이 깃든 그 꽃 덕분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안구충혈에 탁월한 효능, 간 기능 개선, 광견병 치료에 도움을 준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아들을 키워낸 어머니는 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해 준 들꽃 이름을 알지 못했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과꽃을 보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듯 수줍은 미소를 머금었다고 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꽃병에서 얼마 동안 피었다 버리는 꽃이 아닌, 마당에 심을 수 있는 꽃나무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어떤 이를 그리워하고, 응원하고 싶어서, 자기 속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서...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사연을 부탁해 왔다. 나는 그들의 사연이 녹아 있는 짧은 글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글을 담아 보내주었다. 사람의 기억은 머리로 하지만, 사실은 가슴에 담는 것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것을 오래 기억하고, 머리에 있는 기억을 가슴에 담고 싶어 하는... 좋은 기분을,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픈 고객들에게 사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 꽃이나 화분, 디저트 선물을 추천하고 보내면서 고객들은 나를 ‘스토리 식물가’라 불렀다.
내가 인터넷 주문을 받고, 은미가 가격에 맞춰 제작하고 배달까지... 일반 꽃배달 서비스보다 비싼 비용이 지출됨에도 코로나 시대 특성 때문이었는지 주문은 꾸준히 늘고 있었다.
“작은누나 주말에 막내 누나 집에 가기로 했는데, 누나도 와라.”
“무슨 일 있어?”
“엄마가 막내 누나네 있다고 해서... 할 말도 좀 있고”
“혹시 여자 친구 데리고 오니?”
“아니야, 내가 여자 친구가 어디 있어? 다른 이야기야. 엄마하고 막내 누가하고 같이 들어.”
“그래, 알았어. 주말에 보자.”
나는 승천이가 은미 말대로 자기가 우리 집 업둥이라는 출생 때문에 여자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닐까! 염려는 되었지만, 주변 삼십 대들을 보면 결혼이라는 것에 매이기보다는 동거나 자기 계발에 집중하는 세태인 것 같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었다.
“엄마, 누나들, 나 회사 사표 냈어요.”
승천이 폭탄 발언에 엄마는 무척 놀랐고, 영미와 나도 좀 당황스러웠다.
“다들 공무원을 못 해서 난린데,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왜 그만둬?”
엄마는 내가 조금이라도 엄마 성질을 거슬리게 하면 내 등짝을 내려치고 큰 목소리로 일장 연설을 서슴지 않았었다. 하지만, 승천이가 엄마 화를 돋운 적도 거의 없었지만, 엄마는 승천이에게만큼은 크게 야단친 적도, 손을 댄 적도 없었다. 엄마가 잔뜩 화가 나서 서른 넘은 아들을 다그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직장 잘 다니다가, 무슨 일이야? 혹시 여자 생겼어? 그 여자가 공무원은 싫다던?”
“엄마, 그런 거 아니에요.”
“대체, 그럼 뭐 때문에?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면 다 망한다는 거 몰라? 니들 아버지도 다니던 회사만 잘 다녔더라도... 도대체 어쩌려고?”
“그동안 모아둔 돈하고 퇴직금 받으면 시골 가서 약초 농사지으려고요.”
“뭐라고? 너 미쳤어? 네가 약초에 대해 뭘 안다고? 네 아버지 약초 농사짓다, 그런 변고 생긴 거 보고도 그런 생각을 했어? 제정신이 아니네, 정신 차려.”
엄마는 승천이가 아버지 귀신에 씌지 않고는 할 말이 아니라며 노발대발했다. 승천이는 우리 의견을 구하기 위해 말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기 결정을 알려주기 위해 왔을 뿐이었다. 서울 명문대를 지원할 수 있을 만한 성적이었지만 등록금이 저렴한 지방 국립대를 가겠다는 승천이에게 내가 물었었다.
“승천아, 서울로 갈 수 있는데, 왜 지방대를 가겠다는 거야? 혹 학비 때문에 그래?”
“누나, 학비도 학비지만, 내가 원하는 과가 이 대학에만 있어서 그래. 나는 명문대 나와서 큰 회사 다니는 인생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으면 좋겠어.”
대학 4 년 동안 쪼들리는 자기 빈곤을 한 번도 내색한 적 없는, 이십 대가 할만한 불평 한마디 입 밖으로 표현한 적 없는 속 깊은 아이였다. 승천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도 그저 승천이 생각과 선택을 믿었고, 시험에 합격한다면 승천이 적성에 맞는 직업이라 생각했었다. 승천이가 신림동 좁은 고시원에서 밥값을 아껴가며 공부하는 것을 보고, 나는 회사에 사표 내는 것을 보류하고 미뤘었다.
“승천아, 왜 그런 결정을 했어? 직장 생활이 힘들었어? 아니면 회사에서 누가 너 괴롭혀?”
어릴 때부터 승천이를 돌보고 데리고 다녔던 영미는 승천이가 요즘 뉴스에 나오는 직장 내 따돌림이나 부당한 업무 지시로 어떤 어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막내 누나, 직장에서는 아무런 문제없었어, 동료들과도 잘 지냈고...”
승천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반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학교생활도 교우관계도 좋았었다. 오히려 영미가 학교 친구들과의 사소한 문제로 어려웠을 때,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누나에게 영리한 지혜를 나누어 주었었다.
“승천아, 나는 네가 이미 한 결정에 대해서 더는 할 말 없고, 앞으로 하겠다는 일이 왜 하필이면 약초 농산지, 말해 줄 수 있어?”
“다른 말할 거 없어, 너 사표 수리됐는지 알아보고 수리 안 됐으면 회사로 돌아가. 사표 수리돼서 못 돌아가도 약초 농사 말고 회사 알아봐. 엄마가 보기에 너는 회사원이 네 적성에 딱 맞아 긴말할 거 없어.”
“엄마, 승천이가 애야? 서른 넘은 성인이야. 우리한테 와서 이야기 안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한들 어쩔 거야?”
“땅만 있으면 농사가 절로 되는 줄 알아? 네 아버지가 멀쩡한 직장 그만두고 그 산골에서 농사지으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알아?”
아버지가 농사 시작한 일을 후회했다는 말은 아버지 장례식에서 처음 들었었다.
이웃집에 사는 나이 지긋한 어른께서 아버지와 한 번씩 약주를 나누었고, 술이 거해진 아버지는 어르신에게 넋두리하곤 했었단다.
“너희들 아버지가 술만 좀 들어가면, 자기가 농사만 시작하지 않았어도, 집은 안 날렸을 거라고 하더라. 나이 많은 노모 산골에 모시고, 한창 공부하는 애들 단칸방 월세 살게 한 게 다 자기 탓이라고…. 그래도 너희들 아버지는 약초 냄새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약초 농사일을 후회한 게 아니라, 가게를 얻어 장사를 확장한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내가 아버지에게 왜 하필 약초 농사를 시작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약초 풀 냄새를 맡으면 든든한 밥을 배불리 먹은 것처럼, 세상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었다.
대구 어른댁에서 할머니는 갖은 고생을 했음에도 아버지에게 든든한 끼니를 먹일 수 있어 대구 어른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고 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당신 밥그릇 고봉밥과는 달리 어머니는 부엌 구석에서 어른댁 식구들이 남기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밥을 자주 남겨 어머니가 드실 수 있도록 했다고... 한창 성장기에 있었던 아버지는 온 집안에 널려있는 약초를 오며 가며 간식처럼 주워 먹었고, 늘 배고팠던 아버지는 그 덕에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고 했다.
“엄마, 승천이 이야기 좀 들어보자. 승천아, 왜 약초 농사야?”
나는 승천이가 단시간 즉흥적으로 한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 같았지만, 왜? 아버지 실패를 떠 올리게 하는 약초 농사일을 시작하려 하는지 궁금했다.
“먼저 엄마, 누나들 오해가 없기를 바라. 내가 중학교 때 할머니 아버지 돌아가셨고, 내가 업둥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때 작은누나와 막내 누나가 내가 업둥이라 자기들과 다른 존재라 생각한 적 없다고 했고, 엄마 아버지도 내가 느끼기에 누나들하고 다르게 대했던 기억은 눈곱만큼도 없어.”
“그래 승천아, 엄마는 너를 한 번도 업둥이라고 누나들하고 차별한 적 없다. 누나들보다 아들인 너한테 더 공들여 키웠으면 키웠지.”
엄마의 말은 사실이었다. 언니가 서울로 하숙 나가면서 뭐든 좋은 것은 이쁜 짓만 하는 승천이 차지었다. 남자아이라 모든 것을 새것으로 사 입혔고, 좋은 반찬과 간식도 항상 승천이가 먼저였다. 아버지는 승천이를 ‘우리 아들’로, 할머니는 ‘내 손주’로, 동네 이웃들은 엄마를 승천이 엄마라고 불렀다. 영미와 내가 문턱에도 가 보지 않았던 유치원도 보냈고, 약재상이 망하기 전까지 시내 보습학원, 피아노, 미술, 태권도등... 승천이가 싫다고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해 주었었다.
어른이 된 승천이가 자기 입으로 ‘업둥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문득 든 생각은 영미와 내가 해보지 않은 것을 승천이에게 경험하게 했던 것이 승천이를 다른 존재로 여겼던 순간들은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업둥이인 내가 아버지 실패를 만회해서 어떤 은혜를 갚고 싶은 생각으로 약초 농사를 짓겠다는 게 아니라는 거 분명히 하고 싶어. 그리고 아버지가 실패한 것은 약초 농사가 아니라, 그 시대에 어쩔 수 없었던 IMF 경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공무원 생활 잘하다, 왜 이러는 거야? 승천아, 다시 생각해. 엄마 죽는 꼴 볼래?”
“엄마 가만히 좀 있어 봐. 승천아, 계속 말해.”
“내가 약초 농사를 짓겠다고 한 건? 내가 산림청 공무원으로 연구실에서 일해 보니까, 약초 농사가 앞으로 굉장한 비전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야. 엄마가 생각하는 옛날 아버지처럼 약초 농사를 지어서 한약방에 약초를 유통하는 그런 약재상 개념이 아닌, 신개념 스마트팜, 식물 사업을 해보고 싶어. 우리나라 전통 약재가 얼마나 유용하고 좋은 게 많은지….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은 달여 먹는 약재 재배에 그치지 않는, 건강에 좋은 약초 나물을 재배해서 유통하고, 약재 화초를 만들어서 실내에 화분처럼 두고 공기 정화나 호흡기에 도움이 되는 약초꽃 재배를 해 볼 생각이야.”
인간이 식물을 약용으로 쓴 것은 선사시대, 약 4800년 전 중국 신화에서 신농이 약으로 식물을 이용했다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약초는 대부분 독초이기도 하지만, 인체의 생리현상을 바꾸는 힘을 지닌 독을 희석하고 제어해 병을 고치는 것이 본초학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약초는 잡초 과에 속하는 풀이 대부분이고, 잡초는 민초(民草)들의 먹거리이었다고 했다. 가난하고 먹을 게 없었던 민중들이 산에서 들에서 채취해 온 약초 나물을 삶아 먹고 끓여 먹으면서 생계를 지탱해 온 고급 식량이었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환경을 좀 봐? 코로나를 겪다 보니,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각종 전기제품으로 전자파나 실내 공기에 취약해지면서 공기 정화 아이템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잖아? 하지만, 앞으로 환경 문제와 에너지 대란으로 집안에서 사용하는 필수품, 전기제품들이 외면당하게 될 거야. 에너지 낭비가 없는 자연 친화적인 공기 정화 상품을 선호하게 되는 세상이 이미 왔어. 내가 장담컨대, 집안에 약초꽃 넝쿨을 만들어 달라는 인테리어 아이템이나, 집안에서 식용 약초 재배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소비자가 생길 거야. 약초꽃을 실내에 두면 공기 정화에, 더 나아가 건강에도 좋은…. 약재를 달여 먹어서 몸 건강을 보살피는 것도 좋지만, 샐러드나 나물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먹거리로, 또는 우리 생활에 약초꽃을 두면 보기 좋은 꽃이 건강하게도 한다는…. 구체적인 사업 내용에 대해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이 사업 시작하려고 오래 공부하고 기획했어. 코로나로 병원에 있으면서 내 인생에 전환점이 왔다는, 세상의 위기가 내게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 내가 무모한 성격 아니라는 거 알 거야?”
“네가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고 해도, 엄마는 무조건 반대야.”
“나는 모르겠다. 나도 네가 무모한 성격이 아닌 것도 알고, 오래 준비했다는 것도 믿음이 가긴 하지만, 네 말대로 아버지가 약초 농사를 실패한 게 아니라, IMF 경기 때문인데, 요즘 코로나 사태로 잘 되던 사업도 접는 곳이 속출하고 있잖아. 용남 언니 꽃 가게도 안 돼서 문 닫고, 온라인으로 주문받고 있지만, 잘 되진 않잖아? 다들 어려운 시긴데...”
“작은누나는 어떻게 생각해?”
“승천아, 농사 시작하면 지역도 중요하고, 땅이며 시설비용도 많이 들 텐데, 감당되겠니? 잘못되면, 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제대로 된 실패를 맞닥뜨릴 거야. 아버지 생각하면, 오십 대 아버지가 실패의 감옥에 갇혀 나오지 못했던 모습이 떠올라. 네가 그런 아버지 같은 상황이 될까 봐 걱정돼.”
황폐해진 아버지 실패의 어둠을 만났던 그 날밤의 공포는 내 뇌리에 박혀 오랫동안 힘들게 했었다. 박차고 나가 자유라는 것을 꿈꿀 때마다, 어김없이 꿈에서 보이는 그날의 어둠은 나를 모든 것으로부터 주저앉히는 표상이 되어 나를 붙잡고 있었다.
“작은누나, 아버지 실패의 두려움 속에는 할머니, 엄마, 자식들을 제대로 건사할 수 없다는 불안의 무게도 같이 있었을 거야. 나는 내가 사십 대 실패를 경험한다 해도, 나 하나잖아? 내 실패는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되잖아. 정말 실패한다면, 혼자기 때문에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도 나 혼자 내면 되는 거잖아. 엄마는 서운하겠지만, 나는 아버지처럼 부양해야 하는 식솔이 있는 것도 나니고...”
“아들, 사업 성공할 때까지 장가도 안 가겠다는 거야? 엄마는 승천이 너한테 부담 줄 생각 조금도 없다마는, 네가 성공하는 것보다, 그냥 평범하게 직장 다니면서 장가가서 자식 놓고 사는 게 더 좋다. 용남이 누나 시집도 못 가고 혼자 친구 집에 얹혀사는 거 봐라. 뭐가 좋아 보이니?”
“엄마, 이 상황에서 내 이야기는 왜 나와? 승천아, 누나는 네가 그런 마음이라면 반대 안 해. 해봐.”
“동생이 엉뚱한 생각 하면 바른길을 알려 줘야지? 해보라고 등을 떠미냐?”
“엄마, 승천이가 애냐고? 우리한테 와서 이렇게 얘기해 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 해.”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농촌으로 귀농하는 청년들을 위한 혜택 알아보니 괜찮더라고요. 귀농하면 주택도 저렴하게 제공해 주고, 비닐하우스나 기술이 필요한 일에 대한 직업 훈련 과정도 있더라고요. 농사가 진행되면 금리 낮은 은행 대출 상품도 많고요. 일단 내가 가진 돈으로 최선을 다해서 시작해 보고 상황이 여의찮으면 대출도 받아야겠지만, 3년 안에 수익 낼 자신 있어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승천이는 단단한 동생이었다. 엄마는 이후로도 승천이를 여러 번 말렸고, 영미도 공무원이라는 평생직장을 등진 승천이를 걱정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승천이가 이름처럼 세상을 향해 승천할 수 있기를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