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는 내가 빚어 놓은 여러 개의 술 항아리 병이 숨겨져 있는 안방 벽장을 열어 보였고, 나는 벽장 깊이 아껴놓은 더덕주 병을 꺼내 은정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는 오미자주 마시고, 더덕주는 아버지 가져다, 드릴래?”
“용남아, 은정이 아버지 교회 장로님이라 술 안 드시잖아. 코로나 확진돼서 병원에 계셨잖아? 퇴원하셨지?”
“응, 집에 계셔. 노인네라 그런지 기력이 확 떨어지셨어, 너희들 알다시피 우리 아버지 얼마나 건강하셨냐? 아버지 약해진 모습 보니까, 내가 진태 때문에 아버지 마음고생 시킨 게 생각나서 요즘 아버지 보면 마음이 더 안 좋아.”
“솔직히 너보다는 너희 큰 오빠하고 아버지 하고 많이 다투지 않았어?”
“응, 그랬지. 우리 큰오빠가 민주화운동 한다고 대학을 10년 가까이 다녔을 거야. 지금도 큰오빠는 민주화 운동권이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해서 아버지 하고 부딪칠 때가 많아. 용남이 너희 언니도 대학 다닐 때 민주화운동 했던 세대 아니야?”
“용남이 언니는 70년대생이라 민주화 운동권이라고 할 수도 없어. 민주화 세대도 IMF 세대에도 아닌 세대가 69년~70년생들이라잖아.”
“우리 아버지는 옛날 어른이라 큰오빠 민주화 운동권들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가질 수 있었던 세대잖아? 큰오빠 대학 다닐 때 툭하면 경찰서 유치장에 있다고 연락 오고, 아버지가 마음 졸이면서 오빠 찾으러 다니느라 마음고생 많이 했거든. 아직도 아버지는 민주화 운동권들을 부모 무시하는 배부른 지식인 집단이라고 생각해. 그런 아버지를 큰오빠가 좀 봐주면 좋겠는데, 얼굴만 마주치면 다퉈.”
“너희 큰 오빠 아버지한테 그러면 안 되지. 큰오빠 대학도 오래 다녔지만, 결혼 전에도 결혼하고도 직업이라는 거 가져본 적 없잖아? 운동권 활동이나 시민단체 운동한다고 돈 안 되는 일에 바빴지. 너희 건어물 장사할 때도, 서울에서 젓갈 집 할 때도 오빠 가게 일 한번 도와준 적 없지? 지금도 새언니가 직장 다니고 오빠는 별 직업 없이 이런저런 단체 일로 돈만 쓰고 다니잖아. 용남아, 생각나니? 내가 고등학교 때 은정이 큰 오빠 같은 남자 만나서 시집갈 거라고 했던 말.”
“맞아, 맞아, 터미널 앞 노점에서 떡볶이 하고 순대 먹고 있었는데, 오빠가 와서 돈 내주고 갔잖아. 그때 은미가 반했잖아. 친절한 키다리 아저씨 같다고.”
“그때는 오빠가 얼마나 멋있어 보이던지? 근데, 새언니 불평 안 해? ”
“부부 일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엄마가 그래도 큰아들이라고 아버지 몰래 새언니 눈치 안 볼만큼 생활비는 조금씩 주는 것 같아. 오빠가 아버지한테 좀 친절했으면 좋겠어.”
“서로 다른 세상을 대하는 유연성이 없어서 그럴 거야. 그래도 연세 드신 아버지에게 오빠가 져 드려야지. 옛날에는 아버지가 자식 못 이긴다고 생각하고 몸이라도 상할까 싶어 열심히 찾아다니셨을 텐데…. 그래도, 우리 언니같이 자기 공부에 방해될까 봐, 사회 문제에 관심조차 없는 인정머리 없는 인간보다는 오빠처럼 자기 실속은 없어도 세상의 변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이상주의자가 좀 더 인간적이지 않냐?”
“밖에서는 그렇게 인간적인 사람이 아버지한테는 왜 그렇게 참지를 못하는지 모르겠어. 나도 가끔 큰오빠 언행에서 민주화 운동권들에게 빚진 것 같은 죄의식을 강요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 그런 불편한 기분이 들면 운동권 세대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반감이 들어. 우리는 우리대로 IMF라는 힘든 시기를 살았는데, 우리가 살아낸 시간의 가치가 무색해지는 느낌이랄까? 민주화운동이 한창이었던 세상에 우리가 살아보지 않았는데,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일 뿐이잖아.”
은정이 아버지는 큰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서울 명문대 법대에 합격한 큰아들이 판검사가 되어 집안의 자랑이 될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오빠는 고시 시험도 고사하고, 번번이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였었다. 아버지는 큰아들이 늦게라도 철들어 국회의원이라도 될 줄 알았지만, 오빠는 도심 시민단체 집회를 주도해 몇 번의 수배령도 내려지곤 했었다.
“용남아, 우리 가게 옆에 약국 하는 언니 있잖아? 그 언니 오빠도 민주화 운동권이었는데, 진보 정당에서 일하고 있나 봐. 그 언니 큰언니는 공장 다녀서 남동생 뒷바라지했는데, 보수 정당 지지한다고 광화문 보수 집회에 매일 나간다지 뭐야. 약국 언니는 큰 언니 희생 없이 오빠가 대학 공부하면서 민주화운동을 했겠냐며, 근데 지금은 오빠라는 사람이 큰 언니는 무식해서 민주주의가 뭔지 모른다고 광화문 집회에 못 나가게 한다지 뭐야. 약국 언니에게는 자기와 같은 운동권 없이 지금 언니가 누리고 사는 세상이 있었겠냐며, 생색 아닌, 생색을 내는데... 약국 언니는 무릎 아파서 병원 다니면서까지 광화문에 나가는 큰 언니도 안타깝고, 고생하면서 자기 뒷바라지한 큰 언니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식한 반민주 세력이라고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는 오빠도 꼴 보기 싫다더라고. 언니도 큰 언니 표현의 방법이 옮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오빠의 언행은 더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 더 웃긴 거는? 오빠라는 사람이 미군 철수 피켓 시위하고, 미국이 강대국의 권위로 세계 경찰 노릇하며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고 매일 비판하면서 애들은 미국에 보내서 공부시킨다지 뭐야.”
“민주화 세대라서가 아니라, 운동권 중에서 민주화운동 이력을 기득권 자리 확보에 활용한 일부 운동권이 문제지. 우리나라 80년대까지만 해도 집안에 아들은 대학을 보내고, 딸들은 집안 건사한다고 학업보다는 공장이나 일터로 가야 했던 사회적 분위기도 사실이잖아.”
“맞아, 우리 동네만 해도 공장 간 언니들은 있었지만, 공장에 간다는, 혹은 갔다는 오빠들 말은 우리 때까지도 없었지.”
“아들 공부 시키겠다고 얼마나 많은 어머니가 딸들이 희생했던 시대였어? 운동권이라는 사람 중에서는 그 시대에 가족들 희생 없이 대학 공부하기 쉽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을 거야. 가족 누군가가 병들어있고, 빈곤에 몰려있는데, 대학 다니면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 수 있었겠어? 은정이 너희 큰 오빠 같은 경우도 너희 집이 좀 살만했으니까, 아버지가 그래도 오빠 찾으러 다닐 만큼 여유가 있었으니까, 오빠가 그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약국 언니네처럼 가족 구성원 누군가의 희생이 따랐기 때문에 대학에서 민주화를 외칠 수 있었던 일부의 가난한 집 대학생들도 있었을 거야. 공장 다니면서 살림에 보탬을 주었던 희생의 가치는 그냥 시대의 흐름이었고, 대학 울타리 안에서 자기들이 앞장선 민주화운동의 가치만이 인정받아야 하는 사회라면, 나는 그 사회 일원으로 사는 게 부끄러울 것 같아.”
“그래도, 운동권들의 투쟁이 없었으면 지금의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가 더뎌지지 않았을까? 우리 오빠 같은 사람이 있어서 그래도 좀 더 빨리 자리 잡지 않았을까?”
“좀 다른 역사가 쓰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운동권 중에서도 민주화운동을, 한 나라 국민으로 당연한 참여라 여겼던, 자기 역할이 다했을 때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한 시민으로 사는 사람들도 많아. 탄핵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탄핵 촛불을 들었던 이력을 내세워 평생 기득권으로 살려고 하는 시민은 없을 거야.”
“나도 죽은 우리 오빠 생각나서, 시기를 놓치면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가 묻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촛불 집회에 갔었잖아? 그냥 우리 옆에 사는, 길에서 만나는 서민들이 대부분이었어. 나도 그 사람들도 대통령 탄핵은 보기 힘든 광경이었고, 촛불 집회 참여한 것이 어떤 훈장인 것처럼 내세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거야. 그냥 나 같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를 이해받은 것으로 내 역할은 다했다고 여겼어.”
“민주주의 나라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국민의 권리지만, 그 권리가 어떤 특정 기관이나 단체, 어떤 인물에게만 특별한 신분이 되어, 자기 자리로 돌아온 평범한 시민들을 무력하게 하는 현상이 우려돼. 신문에서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이 뭐냐고? 묻는 물음에 세대, 노사, 빈부갈등보다, 이념 갈등이 앞선 결과로 나온 여론 조사가 있더라고. 좀 놀라웠어.”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세대 간 민주주의의 정의가 첨예하게 다르다 보니, 조직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어려움이 많아. 운동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민주주의 세상이 또렷했고, 우리 세대는 IMF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로 다른 목소리를 낼 만한 여유가 없었잖아? 근데, 밀레니엄 세대들에게 개인의 이익에 반하는 다수 민주주의가 의미가 있나 싶어?”
“나 역시 내가 살아보지 않은 민주화 운동권 세대를 내 기준으로 판단할 때도 있고, 역사적으로 그들이 흘린 피가 지금의 민주주의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 다만, 앞으로의 세대들을 과거의 고착된 인식으로 보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 싶어.”
“학교에서 학생이 내게 ‘민주주의 세대’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든 적이 있어. 아이 말은 지금 사는 세대는 민주주의 세대가 아니라는 말인지? 도대체 그런 말이 왜 특정 세대를 가리키는 표현이 되었냐고 묻더라고?”
“우리 애들만큼 그 학생 똘똘하네. 지금을 사는 자기도 민주주의 세대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런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란? 사전적 의미 말고,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의 기본은 표현의 자유가 아닐까! 생각해.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나라라면 어떤 가치를 찾고 만들어 갈 수 있겠어? 그 자유라는 광범위한 세계를 80년대 군부 세력을 상대했던 인식으로 지금의 세대를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대통령 탄핵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 다수가 탄핵을 원했기 때문에 동참했다, 여기지 않아.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자기 개인의 권리를 침해당했다, 여기는 한 사람 한 개인이 촛불을 들고 나와보니, 자신처럼 개인의 자격으로 모인 사람이 많았을 뿐이라 생각해.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전체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군부는 아닐까? 지금 정치권 사람들 대다수가 민주화 운동권 세대들이지만, 그들의 행태를 보면 괴물을 잡겠다고 투쟁했던 젊은이들이 괴물의 습성을 학습해 버린 추한 노년이 된 것 같아 안타까워.”
“용남이 네 말은 다수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개인의 자유가 민주주의에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야?”
“은정이 네 말은 밀레니엄 세대들의 지성을 무시하는 발언일 수 있어. 무분별한 불법적 행위는 법 테두리 안에서 관리되어야 하고, 내가 말하는 자유는 개인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이야. 자유가 보장된 다양한 표출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민주주의 사회의 도구가 되는 토론과 양보, 이해, 협상, 타협이 가능하겠어? 나와 다른 존재 자체가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허용하고 싶지 않은 일부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떤 모양인지 모르겠어.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반민주 세력, 극좌, 극우, 로 분리해 버리고 상대하지 않으려 하잖아. 우리는 IMF를 겪으며 자기 계발과 미래에 대한 꿈같은 것은 생각할 틈 없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온 세대야. 그런 우리가 개인 삶의 질이 중심이 되는 밀레니엄 세대를 인정하지 못해서 그들 인식이 불편하다고 상대하지 않으려 하면, 이 사회에서 같이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고 싶지 않다는 방증이 아닐까? 1999년 지구가 멸망할 거라는 어이없는 말을 하며 살았던 우리 세대가 2000년 밀레니엄 세상을 살아온 세대들에게 우리가 살았던 세상을 공감해 주길 기대할 수 있겠어? 그들은 살아보지 않은 1999년인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밀레니엄 세대가 좀 억울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 자기들이 경험해 보지 않은 1999년인데...”
“은정아, 용남아,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앞 세대에게 자기들이 살아온 세상을 얼마나 강요받고 살았냐?”
“맞아, 우리 아버지는 큰오빠가 사는 세상을 부정했고, 우리 큰오빠는 자기가 사는 세상에 고착되어 다른 인식은 틀린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아.”
“우리 언니도 대학 다닐 때 박정희 독재하에 노동자들 피땀으로 만든 나라를 전두환 노태우 군부 세력이 민주주의를 짓밟았다고 떠들고 다녔어. 그런 독재를 군부 세력을 비난하면서, 본인은 부모의 희생과 동생의 수고를 당연하게 누리고 사는 우리 집 기득권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모르잖아. 자기 성찰이 없는 지식인은 자기 신념에 반하는 다른 성향의 동생도, 아들도 용납하지 않는, 신개념의 독재, 군부 계층은 아닐까? 말이 되는 소릿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의 이중성은 본성인 것 같아.”
“학교 선생들 사이에서도 운동권과 우리 같은 IMF 세대, 밀레니엄 세대들 간의 이념 차이로 어우러지기 힘든, 그런 직장 분위기 때문에 내가 직장을 다니는 이유가 생계가 아닌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우리도 나름대로 힘들게 살아온 세댄데, 위로는 운동권 눈치를 봐야 하고, 아래로는 개인 삶의 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들을 이해시켜 가며 일해야 하는 상황이 어려울 때가 많아. 거기다 어린 학생들 보면 머리는 영리한데, 가슴이 없는 것 같은, 점점 모든 관계가 삭막해지는 기분이야.”
임용고시 합격을 하고, 학교 발령을 기다릴 때, 은정이는 ‘교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 다짐하곤 했었다. 진태 씨를 만났을 때는 도서관 사서의 꿈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되어, 진태 씨를 만나기 위해 선생의 길로 온 거 같다는 말도 했었다. 진태 씨가 대학 진학을 하고 제자와 연인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어린 학생들로부터 집단린치에 가까운 공격을 받기도 했었지만, 병원에 있는 진태 씨 옆을 지켜냄으로 모든 공격으로부터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의심받지 않게 되었었다. 그런 은정이가 선생이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낀 것은 어린 후배 교사들과의 관계 어려움으로 사표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해 했었다고 토로했다.
“은정이 말에 나도 일부는 공감돼, 다 큰 애들 둘을 키우다 보니까, 애들이 똑똑하고 아는 게 많기는 하지만, 여러 상황에서 자기 개인의 이득이 우선시될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 양육비 소송도 애들이 알아보고 와서 시작한 거야. 혼자된 엄마 생각해서도 아니고, 어렵게 사는 우리 형편을 고려해서도 아닌, 오로지 자기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권리 주장이었어. 내 통장으로 양육비 입금되면 아이들 통장으로 정확하게 반반씩 송금해, 애들이 그렇게 요구하더라고. 처음에는 내 새끼들 똑똑하고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뭔가 좀 차가운 마음은 어쩔 수 없더라고. 그리고 우리 남편 나쁜 아빠지만, 아무리 나쁜 아빠라도 그런 모자란 아빠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어.”
“나는 은정이 너처럼 학교라는 구성원들 속에서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세대 갈등과 이념 대립으로 우리 사회가 늘 시끄러운 것 같아. 그리고 은미 너처럼 애들 키우는 부모도 아니지만, 애들은 대체로 어른들의 행태를 보고 듣고, 그런 상황을 영리한 머리로 생각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그런 아이를 독립된 존재로 여기기보다는 자기 아들, 딸, 자신에게 포함된 요소로 여기다 보면, 상처받는 쪽은 어른이겠지. 우리 언니도 하빈한테 열도 자기가 내고, 상처도 자기가 받더라니까.”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환경 단체 사람들과 어울려 환경 운동에 열을 내던 하빈이가 대학 진학을 미루고 모아둔 용돈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었다. 프랑스 여행 중 루브르 박물관 명화 테러에 동참하게 되었고, 미국 국적인 하빈이는 프랑스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추방되어 누나 하은이에게 연락이 오면서 형부와 언니가 알게 되었다. 형부와 언니는 하빈이를 한국 집으로 불러드려 모든 것을 통제했었다. 대학 졸업장 없이 세상에서 사람 구실하고 사는 줄 아냐며, 자기들 자식으로 태어난 이상 부모의 조력하에 있어야 한다고, 과외 선생을 붙여 한국에서 입시를 준비하게 했었다. 그런 언니에게 나는 하빈이 생각을 존중해 주고 시간을 주는 것도 방법이라 말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을 갖는다는 것, 학벌은 그 힘의 원천이고 시작이라며 내게 하빈이가 나처럼 살았으면 좋겠냐고 반문했었다. 엄마도 영미도 언니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며, 다수가 하는 생각이 옳을 때가 많다고, 행여나 하빈이와 통화라도 할 상황이 생기면 하빈이에게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었다. 자기 자식이라 별수 없는 건지! 하빈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이 어떤 세상이 될 줄 알고 자기들이 살아온 세상의 방식을 강요하는지? 다수의 고착된 인식을 소수에게 강요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라면, 나는 민주주의의 정의를 다시 해석하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내가 좀 전에도 말했지만, 학교 학생들 보면 하빈이 같이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분명한 아이 찾기 어려워.”
“내가 엄마로서 애가 환경운동 한다고 대학 안 가겠다고 하면 어이없긴 어이없을 것 같아. 대학 가서 환경운동 하면 되지 않아?”
“자기 생각이 또렷한 아이들의 특징이 멀리 넓게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우리 학교에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선발돼서 아이돌로 데뷔한 고3 학생이 있는데, 학교 자퇴하겠다고 했다나 봐.”
“졸업이 몇 달 남았다고? 우리 애들이 그 정도 능력 있는 애가 아니라 안심이 된다니까.”
“자기는 음악하고 살 건데, 돈, 시간 낭비하면서 학교를 왜 다녀야 하냐고? 대학에 굳이 가야 되냐고. 담임하고 엄마하고 겨우 설득해서 고등학교는 졸업하자고 달랬나 봐.”
“은미 너희 애들이 20년 뒤 50년 뒤에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회가 만들어져서 살고 있을지 어떻게 알아?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세상을 미래 세대에게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해.”
“용남아, 네가 그런 말 하니까 내가 우리 애들에게 너무 무력한 엄마인 것 같아. 지금도 경제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풍족하게 못 해줘서 늘 미안한데, 내가 모르는 애들 세상에 대해 공감조차 못 하는 엄마인 거 같다.”
“몰라서 공감하지 못하는 건 어쩔 수 없잖아. 다만 모르면서 자기가 살아온 과거 세상이 답인 듯, 강요는 말아야잖아.”
“맞아, 용남이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도 학교 애들에게 교육하고 강요하는 선생이 아니라, 미래를 기대하고 기다려 주는 선생 역할을 해야 하는데, 강요받는 사회에서 자격을 습득했으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학생들에게도 내가 살아온 과거를 플랜으로 제시하는 교육밖에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역시 용남이는 옛날에도 느낀 거지만, 뭔가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고 사는 애야. 그지 않냐? 은미야.”
“그래, 맞아. 근데, 어릴 때는 용남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때도 많았어.”
“아무튼 우리 힘든 시기를 살아온 세대야. 우리 세대가 겪은 IMF로 우리가 어디에 어떤 목소리라도 낼 수 있었냐?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현실에 치여 이 나이가 됐는데. 내가 살집 알아보면서 지금 청년의 기준이 39세라는 이미 대로 정해 놓은 선이, 나 같은 사십 대 싱글은 미씽 된 세대인 것 같아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 우리도 이 사회가 말하는 30대 청년 시절이 있었는데, 이 나라가, 이 사회가 IMF 세대인 우리 20대, 30대를 기억하지 않는 것 같아.”
우리는 오랜만에 늦은 밤까지 미씽 된 우리 청춘을 그리워했고, 오늘의 우리를 응원하며 오미자주와 더덕주 항아리를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