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緣) 자락

- 2

by 조은이

미영은 상희 소개로 방학 동안 상희가 일하는 섬유 공장 검사과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공부 잘하는 자사고 우등생이라, 공장 관리자가 미영에게는 실이 잘 감겨 나온 실타래를 검사하고 포장하는 검사과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주었었다. 40도가 넘는 온도에서 실을 뽑아내는 주 야근 3교대로,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는 환경에서 졸음을 참아가며 야근하는 상희를 보면서 미영은 새삼 두 살 많은 상희가 언니긴 언니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날도 미영은 상희와 구내식당에서 든든한 저녁을 먹고, 야간 근무를 위해 나란히 공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상희는 높은 온도가 이글거리는 현장으로, 미영은 작업 환경이 그나마 좋은 검사과로 이동했다. 새벽 12시부터 30여분 정도, 야식 먹을 때도 상희와 지나치며 퇴근할 때 아침을 먹고 가자며, 아침에 식당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스쳤다. 새벽 3시를 넘길 때쯤 공장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고, 모든 기계가 멈춰 섰다. 사람들이 상희가 일하는 현장으로 몰려들었고, 미영은 처음 보는 광경이라 얼떨떨한 두려움으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붉은 피로 물든 기계 속에 상희의 처참한 모습이 드러났다. 상희는 자기보다 몇 배나 큰 기계 속에서 수십 가닥의 가느다란 실이 감겨 나오면, 끊어진 곳을 찾아 이어주는 일을 했었다. 끊어진 실을 이어주는 작업을 하다, 잠깐 고개를 떨구고 조는 사이 머리카락이 기계에 얽혀 들어가면서 상희 머리통 전체가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하얀색 실타래는 검붉게 물들어 상희 목숨줄을 짓눌러 버렸다. 구급대원들이 들어와 하얀 천으로 상희 모습을 가리고서야 사람들은 처음 겪는 일이 아닌 듯,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미영은 넋이 나간 상태로 서서 상희 언니를 부르며 정신을 잃고 스러졌다.


상희 부모는 상희를 낳고 영재 집안의 소작농으로 마을에 들어와 살게 되어, 영재 도움으로 농사일과 더불어 약초 도매상을 하게 되었다. 상희는 그런 부모님을 대신해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었다. 부엌살림을 하며 동생까지 보살펴야 했고, 공부 잘하는 오빠를 위해 기꺼이 자기희생을 당연하다 여겼다.

상희 집 밥상은 출처를 알 수 없는 국과 찌개가 올라오곤 했었다. 어묵이 들어간 된장찌개, 라면 국물에 신김치를 잔뜩 넣은 김치찌개, 김칫국물만 넣은 뭇국. 다른 반찬이라고는 없이 밥만 수북이 담긴 밥그릇과 불분명한 정체의 찌개나 국 하나밖에 없는 밥상이 미영은 언제나 편안했었다. 밥을 먹다 말고 한참 수다를 떨고, 텔레비전을 보다 식은 국을 먹어도, 예의도 격식도 시간 제약도 없는 상희 집에서의 식탁은 느슨했었다. 그런 상희도 미영의 집에서 밥을 먹을 때는, 원래 밥을 조금만 먹는다며 평소에 먹을 기회가 없는 반찬이 즐비한 상 앞에서 몇 숟가락의 밥만 먹었었다. 미영이 물은 적이 있었다.

“밥 엄청 많이 먹으면서 우리 집에서 왜 그렇게 말해?”

“미영아, 나는 너희 집에서 아무리 맛있는 반찬 차려진 밥상이 앞에 있어도, 이상하게 밥이 안 넘어간다니까…. 집에 와서 자려고 누우면 밥상에 있던 맛있는 반찬이 떠 올라서 얼마나 후회하는데….”

그런 상희 마음을 알아차린 숙희는 상희가 놀다 갈 때마다, 오빠와 동생과 같이 먹으라며 반찬과 간식을 그득 싸 주곤 했었다. 미영은 상희 불행한 사고를 숙희에게 달려가 안겨 울고 싶었다. 유일한 친구 상희 언니가 처참한 모습으로 떠나 버렸다고…….


미영은 상희처럼 가까이 와 주는 친구가 아니면, 또래 아이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법을 알지 못했다. 친구들 틈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미영은 할 말이 없었다.

“오늘 아침에 언니하고 한판 했어, 옷 때문에.”

“우리 엄마는 아침부터 편식한다고 잔소리를 한 바가지 하더라니까.”

“오늘 시험 끝나면 새로 생긴 분식집 가자. 먹고, 롤러스케이트장에 가지 않을래?”

미영은 옷 때문에 아옹다옹할 형제자매가 아닌, 돌봐야 하는 성씨가 다른 정아 이야기를 하려면 복잡한 가정사를 내어놓아야 했다.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하는 엄마가 아닌, 병든 은숙과 그리운 숙희를 떠 올려야 하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분식집과 빵집에서 친구들과 수다 떨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지만, 금전적인 결핍으로 다른 생각을 할 만한 형편도 되지 않았다. 친구들 틈에 앉아 듣고만 있으면 지루함이 몰려왔고, 미영은 학교에서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며 거의 혼자 있는 아이였다. 가끔 상희를 만나 그동안 하지 못했던 집안 이야기부터 상희는 알지도 못하는 학교 선생님 친구들 이야기까지, 말이 많은 미영을 상희는 무슨 이야기든 공감하고 들어주었었다.

상희는 언제나 언니다운 언니였다. 미영은 약방 집 언니들에 대한 괜한 미안함으로, 미안함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른 채, 그저 상희에게 언니라 부르지 못했었다. 상희를 보내고서야 미영은 깨달았다. 자신에게 언니는 상희 언니 단 한 명뿐이었음을….





미영은 늦은 밤 서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나와, 서점 멀찍이 보이는 기숙사 건물을 잠시 바라보았다. 늦은 시간이지만, 입시 학원이 밀집해 있는 거리에는 교복 입은 학생들과 부모들이 북적였다. 미영은 무리 속을 걷다, 인도(人道)에 입시 미술학원에서 꺼내 놓은 전시 그림 앞에 멈춰 섰다.

하얀 비너스 석고상에 검정 연필 터치가 수십 번 오가며, 선으로 면을 만들어 채워, 비너스 입체감을 생동감 있게 살려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테이블 위에 체크 원단을 대충 깔고, 여러 과일을 담아 채운 바구니 옆에 콜라병을 놓아, 스케치해서 수채화를 입혀 놓은 정물화는 사실에 이상(理想)을 입혀 놓은 듯 아련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미영은 자기도 모르게 미술학원으로 들어가 실기실에서 수업받고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 찾으러 왔나요?”

“아, 아니요. 그냥 그림 그리는 게 보고 싶어서….”

“사무실 안에 들어가면 다른 그림도 볼 수 있고, 원장 선생님이 미술 대학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실 거예요.”

대학생 막내 강사로 보이는 선생은 실기실 밖에서 기웃거리는 미영을 사무실로 안내했고, 사십 대쯤으로 보이는 학원 원장은 미영을 친근감 있게 대하며 원장실에 앉혀 말을 걸었다.

“그림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왔니?”

“......”

“어느 학교 학생?”

“사실은 학원 아래 길거리에 전시해 놓은 그림을 보고, 그냥 올라와 봤어요. 미술학원에 다니기 위해 온 게 아니에요.”

“그림은 그려 본 적 있고?”

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은 한쪽에 있는 나무 화판이 올려져 있는 이젤에, 흰 도화지를 화판에 올려 주고 연필을 주며 아무거나 그릴 수 있는 것을 한번 그려 보라고 했다.

미영은 원장실 책장 위에 올려져 있는, 한 번도 그려 보지 않았던 아그리파 석고상을 자기식대로 그려 보여 주었다. 그리고,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이름을 알려 주었을 때, 원장은 그림에 재능도 있고, 성적이 좋아서 조금만 다듬으면, 서울에 있는 미술 대학 진학에는 어려움이 없겠다고 했다.


미영은 기숙사에 돌아와 모두 잠든 방 안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화실 풍경을 다시 떠 올리고 있었다. 각자의 이젤 앞에 앉아, 화판에 놓인 하얀 종이 위를 연필이 스치며 스케치하는 소리와 물에 담근 붓에 물기를 털며, 색을 입히는 손놀림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오로지 자기만 들어갈 수 있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통로 같아 보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세상 이야기와 음악을 벗 삼는 학생들은 놀이기구 없는 놀이터에서 재미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미영은 상희 빈자리를 그림이 채워줄 것만 같았고, 자신이 원하는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줄 것만 같았다. 미영은 다음 날 학원 원장을 찾아가 말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하지만, 수강료를 낼 형편이 되지 않아요. 제가 마지막까지 남아서 화실 청소를 해 주면 안 될까요?”

원장은 미영의 당돌한 호소에 아무것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리고, 이른 아침 학교 가기 전에 와서 학원 청소를 하고, 학교 끝나면 와서 다른 아이들과 같이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화실을 다니면서 서점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게 되어,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아야 했지만, 미영은 화실에서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노라면, 고단한 현실도 혼자라는 고립감도 잊어버릴 수 있었다. 자기만의 공간 속에 들어와 있는 안락한 자유를 누리는 것 같은, 그렇게 상희를 보낸 외로움을 이겨가고 있을 때 정아가 찾아왔다.


“집에 쌀이 없어. 언니”

정아 눈물은 정말 수도꼭지 같았다. 어디서 어떤 상황이든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정아가 울면 미영은 자신이 정아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상희는 그런 미영에게 한 번씩 언니처럼 걱정했었다.

“네 친동생도 아닌데, 네가 못 먹고 못 입으면서까지 그렇게 해야 돼? 그 집 식구들은 식구들끼리 살라고 해. 정아 걔도 참…. 어릴 때는 어려서라고 하지만, 중학생쯤 됐으면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상희 걱정보다 미영의 속마음은 더 모질었다. 석철에 대한 감정은 더 말할 것도 없었고, 은숙도 낳아 준 엄마라고 하지만, 은숙이 병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회복 불가능한 연명(延命)을 하는 것 같아, 차라리 빨리 생을 놓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아에 대한 감정은 이상하리만큼 외면하기 힘들었다. 미영은 정아가 자신을 의지할 때마다, 순득을 의지했던 어린 자기 모습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정아를 모른척하면 세상 모든 사람이 정아를 외면할 것만 같았다.


“알았어, 이거 언니가 가진 거 다야. 일단 이것 가지고 쌀 사서 집에 가. 언니가 요즘 아르바이트를 못 해서 돈이 없어. 다음 달 생활비 보내오면 몽땅 보내 줄게.”

미영은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정아에게 주고 화실로 들어왔다.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라디오가 켜져 있는 화실 실기실 이젤 앞에 앉아, 정아 눈물 가득 찬 얼굴을 떠올리며 라디오를 바라보았다. 또래 학생들의 이런저런 사연이 소개되고 신청한 노래를 틀어주는 라디오는 선물 상자 같았다. 정아도, 그 지옥 같은 집에서 울고 있지 말고, 라디오에 나오는 평범한 아이들처럼 학창시설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되었다. 라디오에 사연이 담긴 엽서를 보내 채택되면, 상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고, 상품은 대부분 중고등학생이 좋아하는 콘서트 티켓이나 MP3, 시디플레이어 같은 것이었다.


미영은 라디오 선물 상자에 예쁘고 개성 있는 엽서를 만들어 화실 소소한 일상을 사연으로 보냈고, 채택된 사연이 화실에 방송되었다. 친구들은 미영이 상품으로 받은 티켓을 현금으로 사 주었고, 엽서 대필을 부탁해 왔다. 그 일을 계기로 화실 친구들과 가까워졌고, 소문을 듣고 다른 학원 아이들까지 찾아와 부탁했다. 고3이었던 미영은 같은 학원에 다니는 중학생이나 고1 학생에게 시험 기간 교과 과목에 도움을 주게 되었고, 정식으로 과외비를 내고 과외를 해 달라는 아이도 있었다. 그런 미영 모습을 지켜보던 강사들은 화실 분위기를 우려해 원장에게 알렸고, 원장은 미영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있음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도울 방법을 고민했었다. 원장은 강사들에게 미영 상황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 실기 실력은 좋으나 학과 공부를 어려워하는 누구나 미영에게 도움받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단 실기 수업 전, 시간과 공간을 따로 하고, 과외비는 받지 않게 했다. 대신 학원에서 미영에게 일정 금액의 아르바이트비를 지급하고, 다른 학원에서 옮겨오는 학생들에게도 미영과 같은 자사고 우등생 장학생에게 학과 공부를 도움받을 수 있다는 홍보도 했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로 배려해 준 화실 원장의 후원으로 미영은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해 살라냈다. 수능 시험이 끝나고 학교 기숙사를 나와야 할 상황이 닥쳤고, 실기 시험을 치르기 위해 화실 수업을 계속 받아야 했지만, 딱히 지낼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위기에 직면할 때면, 미영은 상희가 그리웠다. 짐 가방을 챙겨 주말에 아르바이트했던 입시 종합학원 24시간 개방된 독서실 구석 자리에 자리 잡고 앉았다. 독서실 총무 언니에게 사정을 털어놓았고, 다행히 총무 언니는 아쉬운 대로 독서실에서 지내라는 허락을 해 주었다. 미영은 화실 원장을 비롯해, 화실 선생님들, 화실 친구들, 독서실 총무 언니까지... 상희가 하늘나라에서 자기를 위해 상희 같은 마음으로 자기를 도울 수 있는 이웃들을 보내준 것 같아, 현실적 빈곤에서 절망하지 않았다. 미영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 미술 관련 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이전 16화연(緣) 자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