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의 눈물

주진형 前한화투자증권 대표

by 아혜

『경제 알아야 바꾼다』

주진형 지음 |메디치미디어 |2017년 04월


2016년 5월~2019년 5월까지, 나는 책 프로그램을 만드는 PD였다. 그렇다고 다독 가는 아니다.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이 쌓여 있는 모습에 더 뿌듯함을 느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워라벨(Work & life balance)보다는 워커홀릭(Workaholic)이 가까운 관계로 ‘강제 독서’를 숙명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지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난 언제나 워라벨을 꿈꾸는 직장인이다) 나는 매일 책을 만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방송에 담아내고 싶은 책과 저자를 찾아 헤맨다. 매주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한 권의 책에 색다른 시선을 더할 방법을 찾는다. 독자들의 손에 제대로 된 책 한 권을 쥐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서다. 지난 3년여 동안 100명이 넘는 저자를 만나 책과 함께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내가 만난 책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그 첫 주자로 前한화투자증권 주진형 대표의 <경제 알아야 바꾼다>이다.


책에도 첫인상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그 첫인상을 판단할까? 내가 보는 책의 첫인상은 표지 디자인, 제목, 저자의 저명도, 유명인들의 추천사 등이 아니다. 표지 안쪽에 적힌 <자기소개>다. 저자가 스스로를 담아낸 주진형의 자기소개는 단순, 명료했다.

‘본인 말에 따르면 앞뒤 안 보고 뛰어내리는 게 특기다!’

그 첫인상 때문에 이 책과 사람이 더 궁금해졌다. 주진형 대표의 섭외를 결심하며 걱정인형이 된 나에게 날아온 회사 선배의 직언!

‘그 까칠한 사람이 대담에 나오겠어, 인터뷰 안 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던데…’

‘출연하겠습니다.’ 섭외에 대한 그의 짧은 답문이 도착했다. 중간에서 섭외를 도와주었어야 할 출판사마저 ‘주 대표님을 어떻게 섭외했냐?’며 우리에게 되묻는, 좀 이상한 상황이 펼쳐졌다.


주진형! 드디어 그가 출연자 대기실에 들어섰다. ‘까칠남’, ‘최순실 청문회 사이다 발언’, ‘재벌은 조폭과 같다!’, ‘냉철한 경제학자’… 세상이 그에게 붙여준 온갖 수식어들이 그의 머리 위에서 자막처럼 떠다녔다. 뭐라고 인사를 할지 잠시 망설이는 동안 그는 인자하게 웃음 띤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놀랍게도 그 온화한 미소는 머리 위에 떠있던 모든 자막들을 일순간에 와장창 깨뜨렸다. 근래에 내가 만나본 중년 남자 중 가장 부드러운 섹시 가이라 칭할만했다. 그런데 훤칠한 키와 젠틀한 외모! 여유 있는 걸음으로 미소를 머금고 대기실로 들어오던 그가 잠시 멈칫했다. MC 진양혜 아나운서와 마주한 그는 갑자기 수줍은 중년 신사가 되어버렸다. 역시 미인 앞에선 까칠한 주진형도 무장해제되는구나. 앞으로 내 머릿속의 주진형은 ‘수줍은 꽃중년’ 정도로 남겨놔야지! 오늘 녹화 느낌이 좋다. 그는 과연 무슨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녹화가 시작됐다. MC로부터 이런 질문이 나갔다. “국정농단 청문회 당시, 바로 앞에 한화그룹 총수 김승연 회장을 바로 코앞에 두고 ‘조폭’ 발언을 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 재벌이 조폭과 같다는 발언도 앞뒤 안 보고 뛰어내린 것인가?”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의 질문에 평소 생각이 나온 것이다. 갑자기 대답을 하다 보니 부정확한 표현을 사용한 것 같다. 사실 원래 하려던 말은 조폭이 아니라 조직범죄 집단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세다. 조곤조곤 경제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끄덕여졌다. 그런데 순간, 나는 멈칫했다. 그는 경직된 표정과 격양된 억양으로 ‘연금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국민이란 이름이 붙은 연금-국민연금의 원리·목적을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 국민연금의 운영 원리는 건강보험과 같아요. 국민연금 제도의 포인트는 세대 간의 사회적 보험입니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 48.6% OECD 평균 노인 빈곤율 12.4%의 4배,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38%만이 국민연금을 수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OECD 회원국 중 노인 자살률 1위, 즉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10년 넘게 부동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인생 끝자락에서 만난 한국 노인의 슬픈 미래 속에서…”

그는 차마 말을 잊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본인도 당황한 듯 감정을 누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 이 이야기만 하면 감정적으로 돼요. 노인 자살률 문제 도외시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 필요한 사람들한테 국민연금을 제대로 써야 합니다! 실제 필요한 사람들한테 쓰지 않고 투자를 목적으로 쌓아둔 국민연금! 노후 보장이라는 본래 취지는 사라지고 돈벌이 수단이 된 국민연금! 이 때문에 빈곤의 대물림이라는 비극을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진심 어린 충고 속에서 스튜디오는 숙연해졌다.


맞다! 경제를 논하기 전에 ‘복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회라는 안전망에서 행복한 삶을 보호받을 권리. 그게 바로 복지다. 복지가 먼저 서야 워라벨도 가능하다. 아니 워라벨을 실현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와 관련된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분명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기초 복지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가 우선시돼야 하지 않을까? 사회 구성원들이 경제적 이유로 인간다운 삶을 포기해야 하는 또 다른 구성원의 삶을 보장해 주는 시스템, 서로의 삶을 조금씩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것, 그것이 바로 ‘복지’의 역할이다. 그래야 취업난에 시달리는 이 시대의 청년들은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자신의 미래를 꾸릴 수 있는 직장을 찾아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 시대의 노인들은 더 이상 나이 먹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고 안정된 노후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나만, 너만, 우리만 잘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오늘날의 모습을 보라. 그 속에서 나는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나, 너,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하지 않을까? 그 대답은 이 한 줄에 담겨있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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