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히 단단해지는 쪽을 선택했다.

단단한

by 은하연

단단-하다


「형용사」


「1」 어떤 힘을 받아도 쉽게 그 모양이 변하거나 부서지지 아니하는 상태에 있다.

「2」 연하거나 무르지 않고 야무지고 튼튼하다.

「3」 속이 차서 실속이 있다.

「4」 헐겁거나 느슨하지 아니하고 튼튼하다.

「5」 뜻이나 생각이 흔들림 없이 강하다.

< 국립표준어대사전 >









제주도 여행에서 비자림 방문은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계획은 우도 방문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비 예보도 있었지만 바람이 장난 아니었다. 제주도 바람이 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제 함덕해수욕장에서 얼굴을 때리는 모래바람을 맞고 보니 되도록 거센 바람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에 심상치 않은 바람을 보고

일정을 비자림 방문으로 변경했다.

단순히 제주도의 거친 바람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었다.


우리가 비자림을 방문했을 때는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비자림은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밀집해서 자생되고 있다.

과연 나무들의 줄기가 범상치 않았다. 겉 모양새만 보아도 몇 백 년을 한 자리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희귀한 비자나무들의 모양새에 발걸음을 멈추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조금씩 비자나무 숲으로 들어 갈수록 우리는 현실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비자나무를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기 시작했다.

한 자리에서 500년을 버텨 왔다면 그 뿌리는 얼마나 깊고 단단하게 내려졌을까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비자나무는 그 긴 시간들을 바람과 태풍에 흔들렸지만 뿌리는 뽑히지 않고 단단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참아냈던 날들이 떠올랐다. 직장에서 어느 날 나에 던져지는 화살들을 맞으면서 지냈던 하루하루가 생각났다. 그때는 정말 떠나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내일이라도 당장 사직서를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평소처럼 다음날도 일어나서 출근하는 내 모습을 만나게 되었다.


어떤 때는 이런 내 모습이 싫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지 못하며 사는 현실이 싫기도 했다. 그 모든 상염들을 가슴에 묻어 두고 나는 평소처럼 행동하고 일을 하였다. 그렇게 나는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단단한 사람은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단단한 사람은 상처를 받아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다.


단단하다는 건 아프지 않다는 것이 아니었다.

아파도 제자리에 서 있는 힘이었다.


사람들은 때로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상처를 받으면 흔들리는 사람도 있지만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사람도 있다.


단단하다는 것은 상처를 받아도 무너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말한다.


진짜 단단한 사람은 어떤 일에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티 내지도 않고,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다.






여러분께 고백하자면

나는 젊었을 때 작은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 상처에 마음이 흔들려서 직장을 그만두는 일도 많았다.

상처는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남아서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나서 다시 재취업을 했다.

다시 직장을 다니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았다.

특히 상대방이 던진 작은 말 한마디가 나를 힘들게 하는 날들이 흔들리기도 했다.

정말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예전 같으면 쉽게 던졌을 사직서를

지금 나는 그러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비자나무뿌리처럼 단단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여린 사람이다. 작은 말에도 상처를 받고, 사소한 일에도 오래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예전처럼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루를 살아내는 법을 알게 되었고, 흔들리면서도 자리를 지키는 법을 배웠다.

단단함이란 아프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아픔 속에서도 제 몫의 하루를 살아내는 힘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단단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내면서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강해지기보다, 조용히 단단해지는 쪽을 선택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