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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은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그냥 사진 보고 그리실 건가요?"

"아주 여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야죠 뭐. 아직 방향은 못 정했어요. 이 그림 거의 끝났으니까 조사 좀 해 보고 어느정도 파악되면 바로 들어갈 생각이에요."

윤은 멍군을 곁눈질로 한 번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거 제가 같이 알아봐 드리면 어떨까요? 안 그래도 특별한 물고기를 한 마리 구해야하는 참이었는데 딱 이거다 싶은 게 없었거든요. 말씀하시는 거 들으니까 산갈치면 좋겠다 싶네요. 제가 같이 알아보고 또 혹시 구하게 되면 직접 보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어때요?"

이건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멍군의 얼굴은 굳어버린 지점토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윤이 적극적으로 나서준다면 잡히지 않던 그림의 방향도 수월하게 정할 수 있을 듯 했고 변사장이 약속한 개인전도 정말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산갈치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윤에게 뭔가 답례를 해야만 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만 되면 전 너무 좋죠. 그런데 그럼 저도 뭔가 도움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제가 도울 일이 뭐가 있을지......"

윤은 빈 찻잔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다시 한 번 멍군을 흘깃거린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 말고 매일 같이 밥 먹는 정도요? 가끔은 직접 해 주시는 밥이면 더 좋고."

윤의 눈가 주름이 깊어지며 한 쪽 입 꼬리가 올라갔다. 순간 유연하게 굽어져 있던 멍군의 허리가 곧추세워졌다. 나의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공간이 생성되며 희미한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산갈치를 구해다 주면 지금 결혼이라도 하자 뭐 그런 말씀이세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멍군의 앙칼진 음성이 나와 윤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윤은 어딘지 자신에 찬 표정으로 멍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멍군의 흰자위에는 가느다란 실핏줄이 서렸다. 말 한마디로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게 결혼이라면 누구나 몇 번씩 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랬더라면 얼마전 통화에서 변사장이 결혼하면 아예 내 이름으로 된 전용 갤러리를 차려줄 수 있다고 했을 때 단숨에 OK하고 지금쯤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을 감상하면서 결혼하길 잘 했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윤의 말에 격하게 반응할 수록 그냥 툭 던진 그 말에는 힘이 생기고 어느 순간 진짜가 될지 모를 일이다. 역시 사업하는 분이라 통이 크시다고, 그렇게 제 그림을 좋아해주셔서 말씀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웃으며 그 때의 상황을 지나쳤던 것 처럼 지금도 그렇게 가볍게 정리하면 되는 문제였다. 나는 멍군의 등에 손바닥을 살짝 대고 윤에게 말했다.

"매일은 힘들지만 밥 먹는 거 뭐 어렵나요. 제가 솜씨가 없어서 직접 해 드릴 수는 없을 것 같고 맛있는 집 물색해서 근사하게 대접할게요. 집 사 달라, 차 사 달라 하실까봐 긴장했는데 다행이네요. 하하."

"그렇죠? 생각보다 쉽죠? 하하하."

윤의 검지는 아직도 찻잔을 규칙적인 리듬에 맞춰 건드리고 있었다.

"그거 나도 알아볼게!"

멍군은 그 리듬을 무시하는 듯 불쑥 소리쳤다.

"너도? 네가 왜? 신경 쓰지 마. 너처럼 바쁜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다고."

"뭘 세상까지 나오고 그래. 아니야. 나도 갑자기 산갈치가 대체 뭔지 궁금해졌어. 재밌는 소재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뭐 너 시나리오 쓰는데 도움이 된다면야 굳이 말리지 않겠다만 나 때문에 일부러 그러는 거면 그러지 마."

"나 한 번 꽂히면 죽 가잖아. 대신 내가 먼저 구해오면 그 밥 나랑 매일 먹는 걸로 하자."

멍군은 윤을 보며 말했다. 어느새 윤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한 발 물러나 있었다.

"그거야말로 결혼하자는 뜻인가 보죠? 아까 저한테 그러시더니."

윤의 목에 있던 혈관이 붉게 도드라졌다.

"원래도 자주 먹었어요. 그래. 두 세 번 먹던 거 한 번 더 먹는다고 뭐 달라지냐. 알았어. 좋은 소식 있으면 전해줘. 모레 애들 만나는 거 잊지 말고."

나는 급히 대화를 일단락 짓고 쉬지 않고 달려드는 불편한 기운을 쫒아버렸다. 집안 곳곳에는 다시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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